검색

10년 진화한 아이폰, 아이폰X로 새 길에 들어섰다

“One more thing!”

 

아이폰8의 발표가 끝난 뒤, 팀 쿡 애플 CEO가 입을 열었다. 이미 스티브 잡스 극장 안에 자리 잡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가 어떤 이야기를 할 지 알고 있었다. 지독한 루머들 때문에 ‘서프라이즈’는 아니었지만 키노트의 전체적 흐름상 스티브 잡스 극장을 기념할 무엇인가로 ‘원 모어 띵’과 ‘아이폰’만한 것이 또 있을까. 그렇게 아이폰X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10년 진화한 아이폰, 아이폰X로 새

아이폰X의 ‘X’는 맥의 OS X에 붙었던 것처럼 10의 의미를 갖고 있다. 아이폰7S를 건너 뛰고 8이 나온 것도 의외고, 아이폰9 없이 10으로 넘어가는 것도 다소 이전의 패턴과 다르다. 올해는 아이폰이 10주년을 맞는 해다. 이를 상징할 무엇인가가 필요했고, X라는 이름은 10이라는 숫자 외에도 앞으로 10년을 바라봐야 하는 애플의 고민을 표현하기에 적절한 이름이 아닌가 싶다. 그럼에도 8과 10이 동시에 발표되는 장면은 낯설기 그지없다.

 

그래서 올해 아이폰의 세대 교체는 아이폰8이 맞을 것 같다. 그리고 아이폰X는 다음 10년을 연결하는 마중물의 역할을 맡는다. 시장이 200~300달러 더 비싼 아이폰X를 중심에 놓을지, 익숙함에서 오는 아이폰8의 경험을 중심에 놓을지는 지켜볼 일이다. 애플도 단숨에 기존 아이폰의 경험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기에는 부담스럽다. 그만큼 아이폰X의 변화는 아이폰으로서는 큰 변화다.

10년 진화한 아이폰, 아이폰X로 새

달라지는 출발점, 화면

아이폰X는 여느 애플 기기와 마찬가지로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기능 등을 쪼개서 설명하기 어렵다. 사실 그렇다면 제품에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현재로서는 스마트폰 업계의 변화로 바라볼 필요도 없다. 아이폰의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근본적인 변화의 출발점은 디스플레이다. 아이폰X의 화면은 전면을 가득 채운다. 수화기와 양 옆의 카메라 모듈을 빼고 나머지는 전부 디스플레이다. 테두리가 없는 ‘제로 베젤’에 대한 이야기는 오랫동안 이어져 왔지만 이만큼 화면을 가득 채운 제품은 없었다. 특히 테두리를 어느 정도 남겨 양쪽 끝의 오작동을 줄이는 데에 예민한 애플이기에 디자인 자체가 꽤 낯설다.

10년 진화한 아이폰, 아이폰X로 새

테두리를 얼마나 극단적으로 줄였는지는 네 귀퉁이의 곡면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둥그런 모서리를 따라 디스플레이도 같은 곡률로 깎아냈다. 이는 최근 스마트폰들의 유행이기도 하다.

 

앞을 가득 채우는 디자인은 단순한 디자인의 변화가 아니라 전체적인 아이폰의 사용자 경험을 바꾼다. 가장 큰 변화는 홈 버튼이다. 동그란 홈 버튼은 그 자체로 아이폰의 상징이기도 하다. 하지만 애플은 이를 과감히 지운다.

 

홈 버튼이 사라지는 것은 큰 사건이다. 홈 버튼의 역할은 앱을 닫고 메인 화면으로 나가는 스위치이자, 두 번 눌러 앱 사이를 오가는 통로 역할을 한다. 또한 기기를 켜면서 동시에 지문을 읽는 터치ID의 센서다. 아이폰 이용자들은 홈 버튼을 하루에도 수 백번씩 누르게 마련이다. 이를 없앤다는 것이다.

10년 진화한 아이폰, 아이폰X로 새

일단 아이폰X의 기본적인 홈 버튼 역할은 아래에서 위로 쓸어올리는 제스처에서 시작한다. 위로 휙 던지듯이 밀면 메인 화면으로 빠져 나오고, 손가락을 위로 올리다가 중간에서 멈추면 멀티태스킹 화면으로 넘어간다. 어색하다. 몇 번을 해도 어색함이 잘 가시지는 않는다. 머리로는 알겠는데, 낯선 아이폰을 만난 손가락은 당연히 10년을 눌러온 홈 버튼을 찾는다.

 

하지만 이미 애플은 이 제스처 기반의 UX를 이전부터 준비했고, 아이패드용 iOS11에서도 똑같지는 않더라도 비슷하게 사용했다. 홈 버튼의 역할 자체를 줄이는 것이다. 아직 이 UX를 평가하기는 이르다. 이해는 되지만 좋다 싫다를 떠나 낯설다에 가깝다. 하지만 앞으로 아이폰의 방향성은 물리 버튼의 역할을 최소화하는 데 있다. 사실 아이폰X는 아예 물리 버튼을 안 쓸 수도 있다. 화면을 켜는 것은 터치 스크린을 두드리면 되고, 음량은 제어센터로 만질 수 있다.

10년 진화한 아이폰, 아이폰X로 새

쉽지 않은 인터페이스의 변화, ‘홈 버튼을 어떻게 대체할까’

아래에서 위로 쓸어 올리는 것은 이제까지 제어센터를 불러오는 동작이었다. 이는 화면 오른쪽 위에서 아래로 쓸어 내리는 것으로 바뀌었다. 알림 센터는 왼쪽 위에서 아래로 내리면 된다. 이 부분은 그리 어색하지 않다.

10년 진화한 아이폰, 아이폰X로 새

낯설음의 대가는 꽤 달콤하다. 새 ‘수퍼 레티나 디스플레이’가 주는 경험 때문이다. 왠지 조금 우스운 이름이지만 충분히 왜 이런 이름이 붙었는지는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 5.8인치 OLED 디스플레이는 기대 이상이다. 애초 OLED에 대한 불안 요소들이 있었던 탓일까. 일단 2436×1125 픽셀 해상도는 만족스럽다. 픽셀 밀도는 458ppi로 점들이 도드라져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색 표현력이 좋다.

 

필립 실러 수석 부사장도 OLED 디스플레이의 강점으로 콘트라스트와 해상도, 두께 등을 들었지만 밝기와 색 표현력, 색 정확도 등이 기존 OLED의 걱정거리라고 말했다. 그리고 수퍼 레티나 디스플레이는 이 문제를 풀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 디스플레이는 색 표현이 아주 자연스럽다. OLED는 특히 초록색을 중심으로 형광 느낌이 나는 경우가 많고 이 때문에 색이 더 튀어 보이곤 한다. 근래 들어 이 문제는 거의 해결되고 있다. 애플도 이제 OLED를 써도 되겠다고 판단한 셈이다. 수퍼 레티나 디스플레이는 OLED라는 느낌이 거의 들지 않을 정도로 색 표현이 자연스럽다. 여기에 돌비 비전과 HDR10도 더해져서 영상의 품질도 좋다. 개인적으로 갖고 있던 OLED에 대한 부정적 인식 중 하나인 색 재현에 대한 우려는 내려놓게 됐다. 픽셀이 타는 번 인 문제는 다른 문제다.

10년 진화한 아이폰, 아이폰X로 새

화면이 가득 차면서 아이폰의 디자인은 크게 변화하게 됐다. 아이폰8이 소재나 질감이 새로워졌다고는 해도 아이폰6의 디자인 언어를 그대로 품고 있다. 그에 비해 아이폰X은 앞으로의 10년을 이야기할만큼 신선하다. 아이폰8처럼 앞 뒷면이 모두 유리인 것은 똑같고, 옆면은 그동안의 알루미늄 대신 스테인리스 스틸을 썼다. 아이폰4의 스테인리스 스틸은 아니고 애플워치의 그것과 비교하면 비슷하다.

 

손에 쥐었을 때 느낌도 소재의 특성을 그대로 탄다. 알루미늄이 조금 따뜻하게 잡히는 느낌이라면 매끈한 스테인리스 스틸은 차갑게 닿는다. 온도의 문제가 아니라 손에 닿는 질감이라 정확한 표현이 쉽지는 않다. 확실히 더 단단하고 꽉 차 있다는 느낌이 손으로 전해진다.

터치ID와 페이스ID

애플이 아이폰의 화면을 가득 채우면서 포기한 또 한 가지는 터치ID다. 터치ID는 개인적으로 지난 아이폰의 10년 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바꾼 기술 3가지 안에 꼽는다. 이용자들의 습관을 바탕으로 하면서 보안 장치를 거는 것이 그렇지 않은 것보다 더 편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 기술이다. 하지만 애플은 아이폰X으로 이를 과감하게 버린다.

 

터치ID를 대신하는 것은 잘 알려진대로 얼굴 인식 기술인 ‘페이스ID’다. 아이폰X의 앞면에는 카메라를 비롯해 적외선 센서, 투광기 등 얼굴을 3D로 스캔할 수 있는 8가지 장치가 있다. 애플은 이를 이용해 얼굴을 3만개의 폴리곤으로 쪼개서 얼굴을 입체적으로 읽어들인다. 단순히 이미지를 대조하는 데이터가 아니라 사람인지 확인하는 것부터 시작해 얼굴의 기본적인 생김새를 읽어낸다. 또한 이를 머신러닝으로 계속 학습해 나가면서 정확도를 높인다.

 

현장에서 페이스ID를 등록해봤다. 얼굴 등록은 터치ID처럼 보안 메뉴에서 할 수 있는데, 화면을 보면서 얼굴을 한 바퀴 돌려 입체적으로 인식하도록 한다. 이후에는 헤어 스타일을 바꾸거나 모자를 쓰고, 안경을 써도 잘 알아본다. 심지어 현장에서 썬글라스를 썼는데도 전혀 문제 없이 풀렸다.

10년 진화한 아이폰, 아이폰X로 새

애플은 얼굴 정보를 복제하는 것에 대한 대비로 여러가지 장치를 더했는데, 실제 얼굴을 본뜨고 메이크업까지 해서 똑같이 보이도록 해도 가짜라는 것을 잘 골라낸다. 터치ID가 5만분의 1의 확률로 풀릴 수 있는 것에 비해, 페이스ID는 100만분의 1 수준으로 보안이 향상됐다고 한다.

 

또한 페이스ID는 터치ID와 똑같이 서드파티 앱에서도 활용할 수 있다. 물론 그 데이터는 기기 안에만 보관되고 그 어떤 앱도 접근할 수 없다.

 

트루뎁스카메라와 페이스ID의 관계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페이스ID는 트루뎁스카메라를 이용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애플은 이를 이용한 두 가지 서비스를 더 덧붙였다. 하나는 애니모티콘(애니모지)이고, 다른 하나는 ‘인물사진’이다.

 

애니모티콘은 페이스ID처럼 실시간으로 사람의 표정을 인식해 캐릭터의 얼굴에 그대로 입히는 기술이다. 3D 스캔과 실시간 맵핑과 렌더링이 필요한데 A11 바이오닉 프로세서가 이를 처리하기에 충분한 성능을 갖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를 하나의 API로 만들어서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은 놀랍다고 표현하기에 아깝지 않다. 스냅챗은 곧장 이를 이용해 얼굴에 마스크를 씌우는 기능을 집어 넣었다. 얼굴을 이용하는 관련 앱들이 쉽게 나올 수 있다는 이야기다.

10년 진화한 아이폰, 아이폰X로 새

얼굴 읽는 카메라의 의미

인물 사진은 더 기가 막히다. 아이폰7플러스에서 처음 선보인 인물 사진 모드는 카메라 두 개를 이용해 사람과 배경의 초점을 다르게 맞춘 뒤 합성하는 방식이다. 아이폰X의 트루뎁스카메라는 광학 렌즈 하나로 이를 처리한다. 얼굴을 인식할 수 있기 때문에 이미지에서 얼굴을 정확히 따내고, 나머지 배경을 뿌옇게 처리하는 것이다.

 

이는 3D로 이미지를 해석하고, 머신러닝을 통해 사람과 배경을 구분할 수 있게 되면서 가능한 것이라고 한다. 그게 카메라 하나로 얼마나 잘 나누어질까 싶은데, 생각보다 깔끔하게 효과가 입혀진다. 필터와 분명 다른 기술이다. 애플은 얼굴을 골라내는 머신러닝 데이터들을 쌓았다고 하는데, 그게 전송되지 않고 기기 안에서 처리될 수 있는 기술을 다져가는 듯하다. 머신러닝이라고 하면 으레 데이터를 전송하고, 분석된 결과를 가져오는 방식이 우선시 되지만 애플은 전송하지 않는 분석 기술을 고집했다. 그리고 그 기술이 자리잡으면서 애플은 A11에 ‘바이오닉’이라는 이름을 붙이게 된 듯하다.

10년 진화한 아이폰, 아이폰X로 새

또 한가지 짚을 게 있다. 바로 애플의 GPU다. 애플은 그 동안 이매지네이션의 그래픽 프로세서를 가져다 썼다. 올해 두 회사는 계약을 끊었다. 이는 애플이 직접 GPU를 개발한다는 소식과 맞물렸다. 하지만 GPU 기술은 단숨에 완성할 수 있는 기술이 아니다. 애플의 GPU가 현실화되는 것은 조금 다른 일이라고 봤는데, 애플은 이를 상용화했다. 이름 붙이기 좋아하는 애플이 GPU에 별도의 이름을 달지 않은 것은 조금 의아한 일이긴 하다. 하지만 애플은 조용히 자체 GPU를 이야기했고, 성능도 좋다고 소개했다. 실제 성능은 테스트를 해 봐야겠지만 애플은 이미 이 프로세서를 iOS11과 맞물렸고, 메탈 API와 접목했다.

 

그리고 코어ML을 비롯해 트루뎁스카메라의 요소들을 통해 머신러닝 연산에서 작동하는 것에 대한 자랑도 잊지 않았다. A11 바이오닉 프로세서는 아이폰8에도 들어 있지만 아이폰X를 통해 이미지 분석이라는 점을 활용하는 것으로 그 존재감을 알렸다.

10년 진화한 아이폰, 아이폰X로 새

애플은 아이폰X로 무엇을 말하려 하나

아이폰X는 새로운 아이폰이다. 애플은 미래를 이야기했다. 지금 모든 스마트폰 업계의 고민은 기존 가치관을 넘어서는 새로운 경험의 스마트폰을 만드는 것이다. 쉽지 않은 일이다. 기술은 상향 평준화됐고, 시장은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는 데 숨이 차다. 아이폰X에서 보이는 기술들도 상당 부분은 다른 기업들이 조금 다른 방법으로 구현했던 기술이다. 애플의 고민과 그 결과물은 요즘 나오는 스마트폰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는 것이 그만큼 어렵다는 이야기다.

 

애플에 기대하는 것은 그 기술이 만들어내는 우리의 습관이다. 애플은 새로운 기술 그 자체를 만드는 것보다, 그 기술들을 적절히 조합하고 운영체제와 하드웨어를 통해 자연스럽게 사용자 경험에 녹이는 데에 탁월하다. 스마트폰의 발달도 초기에는 더 빠른 성능, 큰 화면에 쏠렸지만 이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다르다’는 것 뿐 아니라 ‘좋아졌다’는 경험을 전달하기 위한 기술들이 하나씩 나오고 있다. 애플은 가득 찬 화면으로 그 변화를 시작하려는 듯하다.

 

애플이 이날 키노트에서 몇 번이고 강조한 앞으로의 10년을 아이폰X 하나로 규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아이폰X는 지금 상황에서 충분히 이전 세대와 다음 세대를 구분하는 역할을 해낼 수 있다고 본다. 10 대신 X라는 이름을 급하게 꺼내 놓은 이유도 여기에 있을 듯하다. 어쨌든 올해 아이폰을 고르는 셈법은 복잡해졌다.

 

최호섭 기자 hs.choi@byline.network

오늘의 실시간
BEST
byline
채널명
바이라인 네트워크
소개글
IT 전문기자 심재석입니다.. IT가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탐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