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의 패배, 인간이 실망할 필요 없다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겼다. 3월 9일 서울에서 개최된 구글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바둑 시합에서 이세돌 9단은 186수 만에 돌을 던졌다.
어쩌면 역사가들은 이날을 인공지능 컴퓨터가 인간을 넘어서기 시작한 시점으로 기록할지도 모르겠다.
이세돌 9단의 패배 소식이 전해지자 소셜미디어의 분위기가 어두워졌다. 사람들은 왠지 모를 열패감에 빠진 듯 하다. 한 친구는 이세돌의 패배 때문에 기분이 안 좋다며 한잔 해야겠다고 한다. 스카이넷(영화 터미네이터에서 인간을 지배하는 슈퍼컴퓨터)이 나타난 듯한 기분이 드나보다.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에 상처를 받았다.
하지만 실망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알파고가 인간을 바둑에서 인간을 이길 것이라는 사실은 모두 알고 있었다. 다만 ‘이번에는 아니겠지’ 하는 기대가 있었는데, 예상보다 시점이 조금 빨라졌을 뿐이다. 이세돌 9단도 대국을 시작하기 전에 “언젠가는 컴퓨터가 인간을 이기겠지만, 아직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바둑은 경우의 수가 정해져 있는 게임이다.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10의 170제곱이라는 경우의 수가 나온다고 한다.
경우의 수가 정해진 게임은 언제나 컴퓨터가 유리하다. 인간은 직관에 의해 선정된 몇 가지의 경우의 수를 생각하면서 바둑을 두지만, 컴퓨터는 이론적으로 존재하는 모든 경우의 수를 계산할 수 있다.
사람들은 바둑의 경우의 수가 너무 많아서 컴퓨터가 정해진 시간 내에 그것들을 다 계산하지 못할 것이라고 봤다. 컴퓨터는 직관이 없기 때문에 불필요한 경우의 수까지 다 계산해야 하고, 불필요한 계산을 하다가 스스로 무너질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놓친 것은 클라우드 컴퓨팅이다. 알파고 뒤에는 클라우드 컴퓨팅이 있었다. IBM 딥블루가 체스 대회를 할 때처럼 하나의 컴퓨터에서 계산을 한다면 알파고는 절대로 이세돌을 이길 수 없을 것이다.
알파고는 한 대의 컴퓨터가 아니다. 클라우드 컴퓨팅은 알파고에게 거의 무한대의 계산 능력을 줬다. 아무리 많은 경우의 수가 있더라도 수만 대, 수십만 대의 컴퓨터로 병렬 처리하면 계산할 수 있다.
불필요한 경우의 수를 포함해 가능한 모든 경우의 수를 계산한다면, 어떠한 인간도 컴퓨터를 이길 수 없게 된다.
이런 점에서 이번 대국의 진정한 승자는 ‘구글 클라우드’다. 구글 클라우드는 뒤에서 알파고에게 거의 무한대의 컴퓨팅 파워를 제공했다. 무한대의 컴퓨팅 파워를 등에 없은 알파고가 경우의 수를 계산하는 것은 어쩌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일지도 모른다.
컴퓨터는 원래 계산을 빨리 하려고 만들어진 기계다. 사람이 컴퓨터보다 더 많은 계산을 못했다고, 더 빨리 계산하지 못했다고 자책할 필요 없다. 바둑을 ‘두’는 것이 아니라 ‘계산’하는 컴퓨터에 졌다고 자책할 필요는 없다.
다만 아쉬운 점은 앞으로 인간만의 흥미로운 두뇌, 심리 게임인 바둑에 대한 흥미가 떨어질 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다. 어차피 인간은 모든 경우의 수를 계산하지 못하기 때문에 각자의 직관을 가지고 대결을 했는데, 모든 경우의 수을 계산할 수 있는 시대가 되면 바둑에 대한 재미도 떨어질 것 같다.
심재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