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은 자유의 수호자인가
비유를 해봅시다. 한 범죄자가 있습니다. 범죄자를 잡아서 증거를 입수하려면 범죄자의 아파트를 압수수색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아파트 문이 열리지 않습니다. 범죄자는 열쇠를 숨겨두었고, 문은 도저히 열리지 않습니다. 범죄자는 문을 강제로 열려고 하면 안에 있는 모든 증거가 날아가도록 설계해 두었습니다. 그래서 문을 부술 수도 없습니다.
문을 열려고 고심하던 검찰은 아파트를 지은 건설사에 연락을 합니다. 문을 열 수 있는 마스터키를 만들어 달라고 합니다. 이 마스터키는 범죄자 아파트의 문을 열 수 있는 열쇠입니다. 하지만 범죄자의 아파트 문만 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건설사가 지은 전국의 모든 아파트의 문을 열 수 있는 마스터키입니다.
이 건설사는 검찰에 마스터키를 건내야 할까요, 말아야할까요? 건설사가 마스터키를 검찰에 넘겨준다면 범죄의 증거를 찾기는 쉬울 것입니다. 하지만 이 건설사의 아파트에 입주한 모든 주민들은 왠지 불안해질 것입니다. 혹시 이 마스터키가 유출이라도 된다고 생각하면 끔직한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이 아파트 마스터키 이야기는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애플 백도어 거부 사태에 대한 비유입니다.
애플 팀 쿡 CEO의 공개편지가 화제입니다. 팀 쿡 CEO는 이 편지에서 범죄에 사용된 아이폰의 잠금장치를 풀어줄 수 있는 백도어를 만들어 달라는 미 법원의 명령을 공개적으로 거부했습니다.
마스터키는 한 번 개발되고 나면 악용되거나 남용될 수 있고, 혹시 다른 정부기관이나 해커의 손에 넘어간다면 상상하기 힘든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팀 쿡 CEO가 “위험한 선례”라고 이야기 하는 이유입니다.
이는 애플뿐 아니라 어느 회사라도 들어주기 힘든 요구입니다. 이 때문에 미국 IT업계에서는 FBI가 무리한 요구를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미국 보안회사 맥아피는 자신들이 그 아이폰을 해킹해 줄 테니 무리한 요구 그만 하라고 FBI에 제안했다고 합니다.
인터넷에서는 국내 기업과 비교하며 애플에 찬사를 보내는 목소리가 큽니다. 국내 인터넷 기업들은 왜 애플같이 못하느냐며 국내 기업들은 이용자 프라이버시 보호에 적극적이지 않다고 비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번 사건만을 두고 그렇게 이렇게 비판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습니다. 애플이 법원의 명령을 거부했듯이 국내 인터넷 기업들도 법원의 수색영장, 감청영장이 발부된 경우라도 이에 응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을 좀 더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법원의 영장에 명시된 정보를 넘기는 것은 국내외 어느 기업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애플은 우리나라 인터넷 기업과 마찬가지로 수사기관에 협조해 왔습니다. 이번 팀 쿡 CEO에서도 애플이 기술적 자문을 제공했다고 나와있습니다. 다만 기술적으로 이용자에게만 통제권이 온전하게 부여된 현재 시스템에 반하는 백도어가 만들어질 경우 애플의 모든 보안 조치가 무력화 될 수 있기 때문에 마스터키 개발에는 협조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구글 순다 피차이 CEO도 18일(현지시간) 트위터를 통해 “우리는 고객의 정보를 안전하고 보호하며 유효한 법적 명령에 기반해 수사기관에 사용자의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애플의 팀 쿡 CEO가 미국 법을 어겨가면서 반대의사를 표했다는 것도 오해입니다. 이번과 같은 미국 법원의 명령(All Writs Act)은 원래 반박할 수 있습니다. 법원 명령의 수행에 비합리적인 부담이 들 경우, 기업은 5일 이내에 반박 신청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팀 쿡의 이번 공개편지도 합법적인 반박 신청절차를 염두해 두고 이뤄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사용자의 프라이버시를 지키기 위해 모든 불이익을 감수하고 법원의 명령을 일방적으로 거부한 것이라기보다는 정해진 체계 내에서 반박을 하고 있는 과정이라고 이해하면 될 듯 합니다.
애플이 법원의 명령을 거부한 이유는 마스터키를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수사기관이 마스터키를 가지게 되면 기업의 정보 통제권이 없어집니다. 언제든 마스터키를 가지고 고객의 정보를 열어볼 수 있고, 이것이 알려지면 고객들은 떠납니다.
국내 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국내 기업도 수사기관에 마스터키를 주지는 않습니다.
글. 심재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