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훈의 대체자 에셴바흐는 누구인가
브루크너 연주로 서울시향 구원투수 나서
크리스토프 에셴바흐가 9일 물러난 정명훈 지휘자를 대신해 서울시향 정기연주회에서 브루크너 교향곡 9번을 지휘한다. |
서울시향의 예술감독 정명훈이 서울시향의 지휘봉을 놓았다. 그가 재단법인으로 독립한 서울시향을 맡고 난 후, 서울시향은 지난 10년간 세계 최고의 음반사인 도이치 그라마폰과의 수많은 음반 제작과 BBC 프롬스를 비롯한 전 세계를 도는 연주여행 등을 통하여 세계적인 수준의 오케스트라로 도약하고 있던 터였다.
그가 서울시향을 떠나게 된 이유는 이미 많은 언론 매체에 의하여 접하셨을 터이니 여기서는 이야기하지 않겠다. 이미 작년 말부터 여러 언론에서 정명훈에 대한 옹호 내지는 비판적인 기사를 앞을 다투어 써내려가고 있고, 페이스북 등 SNS상에서도 서울시향 사태와 정명훈에 대한 각기 다른 생각들로 가득하다.
판단은 대중 스스로의 몫이다. 그리고 어쨌건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 유럽에서 조수미는 몰라도 정명훈은 안다 – 마에스트로 정명훈은 많은 음악 팬들의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명예롭지 못하게 서울시향을 떠났다. 그냥 이게 팩트다.
올해 이미 그와 함께 아홉 회의 정기연주회를 기획해 놓았던 서울시향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당장 1월 9일에, 그것도 브루크너를 연주할 정기연주회부터가 걱정이었다. 그런데, 여기에 뜻밖의 구원 투수가 등장했다.
그것도 이름값으로 정명훈에 결코 뒤지지 않는 마에스트로. 2005년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온 내한공연에서, 자신들을 초청한 금호그룹의 고 박성용 회장을 추모하기 위해 말러 5번의 아다지에토를 들려주었던(필자도 그 자리에 있었다) 지휘자. 바로 크리스토프 에셴바흐(Christoph Eschenbach)이다.
그는 1940년에 독일 브레슬라우에서 태어나 함부르크에서 성장했다. 그리고 정명훈과 마찬가지로 피아니스트로 먼저 성공했는데, 1965년에 클라라 하스킬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국제무대에 명성을 떨치기 시작한다.
특히 모차르트의 뛰어난 해석가로 유명했는데, 작년에 있었던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의 내한공연에서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3번을 직접 피아노를 치면서 협연과 지휘를 동시에 하여 청중과 언론의 극찬을 받은 바 있다.
하지만 그는 지휘자로 새로운 도전을 원했다. 그는 1969년에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를 이끌던 마에스트로 조지 셀과 함께 미국에서 피아니스트로 데뷔했는데, 이후 셀을 스승으로 삼고 따라다니며 악보 분석과 리허설 테크닉 등을 익혔다.
또한 라인스도르프, 스타인버그, 카라얀 등 세계적인 지휘자들과도 연주할 일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들을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는 최고의 기회를 얻기도 했다.
마침내 그는 1972년에 브루크너 교향곡 3번을 지휘하여 지휘자로 데뷔했다. 이후 라인란트-팔츠 국립 필하모니와 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 휴스턴 심포니의 음악감독을 거치게 되는데, 특히 휴스턴 심포니를 10년간 맡아 일약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면서 그의 지휘자로써의 명성도 국제적으로 올라가게 된다.
휴스턴에서의 생활이 끝난 후, 미국 생활에 지친 그는 다시 유럽으로 돌아가 자신의 고향과도 같은 함부르크의 북독일 방송교향악단과 파리 오케스트라의 수석 지휘자를 맡게 되었다.
그러나 2003년 볼프강 자발리쉬의 뒤를 이어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음악 감독으로 선출되게 되어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리고 2010년부터 워싱턴 내셔널 오케스트라와 케네디 센터의 음악감독으로 재직하고 있다.
그는 사실 세계적인 지휘자로써 명성을 자신의 음악적 재능과 피아니스트로써 가지고 있던 명성만으로 갑자기 얻게 된 것이 아니다. 지휘자에게 가장 중요한 ‘경험’과 그에 따르는 ‘노력’으로 인하여 서서히 자신의 지휘자로써의 지위를 높여 간 것이다.
그의 지휘 모습은 초기에 매우 뻣뻣하고 부자연스러워서 비음악적이었다고들 한다. 하지만 지금은 노년의 대가답게 여유있고 평온하다.
그는 음악을 매우 열린 마음으로 접근했으며, 특히 젊은 층을 음악회장으로 끌어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고전과 낭만, 현대 음악 가릴 것 없이 음악의 구조와 형식미를 명확하게 구현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으며, 여기에 그의 예리한 통찰력과 아이디어가 덧붙여져서 그의 음악을 듣는 청중에게 꽤 매력적이고 특별하게 들린다. 사실 이것 때문에 옛 대가들의 정통적인 사운드를 원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호불호가 갈리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걱정 붙들어 매시라. 이번에 그가 연주할 곡은 브루크너가 72세가 되던 해 작곡된 마지막 교향곡이다. 그가 지휘자로 데뷔한 곡도 브루크너였고, 말러와 더불어 그의 장기 중 하나로 꼽히는 곡도 브루크너이다.
결정적으로 그의 나이는 이 곡을 작곡할 당시 브루크너의 나이를 뛰어 넘은 75세이다. 천재적인 재능에 노력과 경험을 더하고 노년의 여유와 평온함을 덧붙인 매력적인 마에스트로 에셴바흐가 만들어내는 서울시향의 사운드를 기대해 봐도 좋을 듯하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덧붙인다. 음악인의 한 사람으로써, 적어도 아무 죄 없는 서울시향 단원들은 아무런 아픔이나 동요 없이 마음껏 음악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빨리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쨌건 천만 서울시민들을 대표하는, 그리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오케스트라로 꼽히는 서울시향의 음악적인 수준만큼은 그대로 유지되어야만 한다. 서울시향 단원들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김광현 | 777khkim@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