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BTI까지 만들어 1.2만 먹스타그램이 된 대학생
"제 돈BTI는 IDWC입니다!"
요즘 처음 만나면 공식처럼 물어보는 MBTI. 하지만 돈가스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MBTI보다 ‘돈BTI’가 최근 인기라고 한다.예를 들어 돈BTI가 'IDWC'라면 일식(I), 등심(D), 와사비(W), 사이드 카레(C)를 좋아하는 돈가스 러버란 뜻이다. (*미니박스 참조)
이 ‘돈비티아이’를 만든 주인공은 인스타그램에서 팔로워 1만 2000여 명을 보유한 돈가스 큐레이터 돈방구. 그는 쨍한 고화질 사진에 세네 줄의 설명이 들어가는 천편일률적인 먹스타그램들 사이에서 자신만의 아이디어로 채널 인지도를 높였다. 앞서 소개한 돈비티아이를 비롯해 돈가스 덕후들의 커뮤니티 '돈가방'과 한눈에 돈가스 맛집들을 확인할 수 있는 '대돈여지도'를 기획했고, 요즘엔 돈가스의 바삭함을 눈으로도 즐기기 위해 돈가스 후드티까지 구상 중이다.
더 놀라운 건 돈방구의 정체가 대학생이란 사실! 이 20대 청년은 어떻게 치열한 먹스타그램 신(scene)에서 돈가스 큐레이터로 자리매김했을까? 순수하게 돈까스가 좋아서 시작했다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미니박스: 당신의 돈가스 취향을 꿰뚫는 ‘돈비티아이’!
돈방구 팔로워들에게 핫한 반응을 얻은 ‘돈비티아이’. 좋아하는 돈가스 스타일부터 부위, 소스, 사이드 메뉴까지 선택하면 자신의 돈가스 취향을 한눈에 정리할 수 있다!
Q. 돈방구의 돈비티아이는 ‘IDWC’라고 들었는데, 각각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A.
I(일식): 사실 일식도, 경양식도 다 너무 좋아한다. 아주 조금 더 일식을 좋아할 뿐이다. 워낙 요즘엔 일식 돈가스집이 많다 보니 더 많이 먹게 되고, 경양식보다 일식이 ‘고기의 맛이 더 잘 느껴져서’ 택했다.
D(등심): 안심보다는 확실히 등심을 좋아한다. ‘오제제’처럼 안심이 특히 맛있는 가게가 아니면 거의 등심을 먹는 것 같다. 안심보다 등심이나 특등심쪽에 지방이 더 많아서 풍미가 짙은 편이다.
W(와사비): 소스류보다는 소금 혹은 와사비에 고기를 찍어 먹는 걸 더 좋아한다. 원래는 소금 VS. 소스로 하고 싶었는데, 모두 알파벳이 ‘S’라서 소금 대신 와사비의 ‘W’로 표기했다. 특히 일식 카츠에는 소스를 찍어 먹으면 고기의 맛이 잘 안 느껴지는 것 같다.
C(사이드 카레): 비교적 간단한 이유인데, 그저 카레에 돈까스를 찍어먹는 걸 개인적으로 좋아해서 골랐다. (웃음)
Q. 소금 혹은 와사비를 추천하는 부위가 있다면?
A. 가브리살이나 지방층이 있는 부위에는 와사비를 얹어서 먹으면 좋다. 와사비가 기름과 만나면 매운 맛은 중화되고 향은 더 좋아진다. 그래서 보통 등심은 소금에 찍어 먹고 가브리살 쪽이나 지방층 쪽은 와사비를 얹어 먹는다.
Q. 돈방구만의 돈가스 맛있게 먹는 꿀팁이 있다면?
A. 개인적으로 요즘엔 참기름에 찍어먹는 게 맛있다. 대표적으로 참기름을 주는 두 지점으로 ‘오제제’와 ‘기린아’가 있는데, 육향과 잘 어우러지고 감칠맛이 좋다. 계속 찾게되는 맛이랄까.
이름부터 돈가스 그 자체돈🐽+가스💨 = 돈방구!
전국 각지 어디든, 돈가스 맛집이라면 돈방구는 비행기를 타서라도 방문한다. 가브리살의 쫄깃함과 지방의 고소함이 가득한 ‘상등심(특로스) 카츠’는 한정 수량으로 판매하는 곳이 많기에 그에게 ‘오픈런’은 일상이다. 합정의 ‘크레이지 카츠’에서는 오픈 약 3시간 전 아침부터 대기해서 돈가스를 맛봤다. 자칫 하면 5시간까지 웨이팅을 해야 한다는 부산의 ‘톤쇼우’에서는 아침 9시부터 줄을 섰다. 아무리 웨이팅이 길어도, 그는 돈가스를 먹을 수 있다는 생각만 하면 기다리는 것도 행복하다고 말한다.
돈방구 인스타그램(@donbanggu)의 피드 |
매일, 그것도 하루에 여러 번 돈가스를 먹으면 질리진 않냐는 질문에 ‘점심에 경양식 돈가스를 먹는다면 저녁에는 일식 돈가스를 먹는 식으로 번갈아 먹으면 괜찮다’고 말하는 돈방구. 그의 하늘 아래, 똑같은 돈가스는 없다. 어떤 고기에 어떤 빵가루를 쓰는지, 어떤 온도에서 어떻게 튀기는지, 어떤 조합으로 먹는지에 따라서 돈가스 맛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모든 가게마다 저마다의 특색이 있다고 한다.
(좌) 돈방구가 직접 읽었던 도서들 (우) 그의 후기 글 |
이런 돈가스에 대한 진심 때문일까. 그의 후기엔 단순히 돈가스를 좋아하는 마음을 넘어 깊은 고찰이 느껴진다. 사실 어떤 음식이든 맛있게 먹기 위해선 역사부터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돈가스의 탄생’이라는 책부터 꺼내들었다는 돈방구. 그렇게 유래부터 시작해 부위별 맛과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노하우 등을 알아보고자 끊임없이 공부했다. 새로운 돈가스 책이 나올 때마다 사서 읽고, 또 읽었기 때문에 그는 고기의 텍스쳐부터 육즙이 스며든 정도, 특정 부위의 지방과 소금의 조화까지 담은 ‘전문가 뺨치는 후기’를 쓸 수 있었다.
인스타 피드 말고 다른 소통 창구는 없을까?
인스타그램만에 게시물을 올리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게시물을 자주 올려도 팔로워들은 저장하거나 간단한 댓글만 작성할 뿐, 그들과 꾸준히 대화를 이어갈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누구나 자신의 돈가스 덕력을 뽐낼 수 있고, 서로의 맛집을 공유할 수 있는 소통 창구를 고민하다가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이 떠올랐다. 매일 사용하는 플랫폼인 만큼 일상 속에서 돈가스, 그리고 돈방구를 떠올리게 만드는 데도 용이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실제 '돈가방'의 대화 캡쳐본 |
예상은 적중했다. 커뮤니티까지 팔로워들이 유입될 수 있을까 우려했지만 초기 접속 멤버 수가 100명을 거뜬히 넘겼다. 맛집 공유방이란 콘셉트가 돈가스 맛집을 알고 싶다는 팔로워들의 기존 니즈와도 부합했던 것이다. “인천 쪽 경양식 돈가스 잘하는 곳 몇 군데만 추천받을 수 있을까요?”라는 한마디만 보내면 순식간에 관련 맛집이 쌓인다. 지역별 돈가스 맛집 관련 질문은 물론 돈가스 후기, 요즘 돈가스 취향까지 ‘돈가스’ 관련 이야기라면 무엇이든 환영받는다. 광화문과 신용산, 강남 등에 지점을 둔 ‘오제제’나 합정의 ‘돈까스광명’처럼 웬만큼 유명한 맛집은 일상 용어처럼 사용된다. 유명 맛집이 폐업된다는 소식에 돈가방 멤버들은 우르르 그곳을 방문하기도 한다. 오로지 순수하게 돈가스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들은 하나가 된다.
여느 때처럼 활발히 돈가스에 대한 대화를 나누던 중, ‘진짜 맛집만 한눈에 다 볼 순 없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시작된 지금의 돈가스 맛집 저장소, ‘대돈여지도’. 여기에는 2023년 11월 기준 돈방구의 검증은 물론, 주변 돈가스 덕후들의 의견까지 철저히 반영된 국내 돈가스 맛집 215곳이 추가돼 있다. 돈방구 기준 엄격한 심사를 거쳐 “이 정도면 사람들이 만족하고 가겠다” 싶은 호불호 안 갈리는 대중적인 입맛의 돈가스 맛집들로만 구성했다고 한다.
'대돈여지도'와 '대돈여지도 확장판' |
이젠 해외 돈가스 맛집까지 추가한 구글맵 대돈여지도 ‘확장판’도 운영 중이다. 기존의 지도가 국내 맛집들로만 한정된 것에 아쉬움을 느껴, 직접 돈방구가 일본의 돈가스 덕후에게 자료 협조를 받아서 맛집을 추가했다. 많은 사람들이 맛있는 돈가스를 먹었으면 좋겠다는 그의 열정을 몸소 느낄 수 있다.
"대돈여지도에 올렸던 곳들을 다른 분들이 가주실 때 제일 뿌듯해요. 제가 간 걸 보고 따라가서 맛있었다고 말해주시거나 사진을 보내주실 때 정말 행복해요."
이젠 ‘패션’으로도 즐기는 돈가스
돈방구가 직접 디자인한 돈가스 후드티와 반팔 티셔츠 |
돈가스 큐레이터로 활동하며 그가 늘 지니고 있던 생각, ‘돈가스의 바삭함을 입이 아닌 눈으로도 즐길 수는 없을까’? 이에 ‘돈가스 굿즈’를 만들어 돈가스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즐기면 재밌을 것 같아 자체 제작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됐다는 돈방구. 그 첫 주자인 ‘돈가스 티셔츠’는 돈방구가 손수 디자인한 것은 물론 샘플 착용, 자문 요청까지 일 년 동안 혼자서 준비해왔다고 한다. 다가오는 12월 1일, 그의 돈방구의 인스타그램 계정에서 돈가스 후드티와 반팔 티셔츠를 만나볼 수 있다. 이후엔 돈가스 양말과 돈가스 달력까지, 돈가스 굿즈의 영역을 넓혀갈 계획이라고 한다.
돈가스 큐레이터로서 이루고 싶은 꿈이 있냐는 물음에, 국내를 넘어 돈가스로 세계일주를 해보고 싶다고 한 돈방구. 여러 지역을 방문해보며 다방면으로 돈가스 경험을 쌓고 싶은 게 그가 가장 원하는 꿈이자 목표다. 사실 원래는 어딘가로 잘 떠나는 편이 아니었지만 돈가스 덕분에 여행도 자주 다니고, 새로운 사람도 만나며 용기를 얻었다고 한다.
돈방구의 최애 돈가스 맛집 중 하나인 '오제제'와 '나리쿠라'의 팝업 현장 사진 |
“저에게 돈가스란 ‘친구’인 것 같아요. 언제 봐도 어색하지 않고, 자주 보면 더 좋고. 아마 가장 친한 베스트 프렌드가 아닐까요? 생각해보니 돈가스 먹으려고 처음으로 비행기도 타봤고, 이곳저곳 여행도 많이 다니게 됐어요. 어떻게 보면 돈가스가 용기를 준 거죠.”
누군가에겐 그저 한 끼 때우기 좋은 평범한 음식이, 또 누군가에게는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친구가 된다. 돈방구에게 돈가스는 많은 변화와 용기를 준 특별한 친구다. 돈가스에 대해서라면 누구보다도 반짝이는 눈으로 진심을 다해 이야기하던 돈방구. 이 같은 돈가스를 향한 진심에 남다른 아이디어를 더해 1만 2000여 명을 군침 돌게 하는 돈까스 전문 계정으로 거듭났다. 앞으로 이 돈가스 큐레이터가 어떤 따끈따끈한 활약을 펼칠지 기대해보자.
에디터 안채원 | 사진 돈방구(@donbangg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