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카드공제 폐지?… 1000만명 ‘딥빡’
인사이드 스토리
자영업자 소득파악 당초 설계목표 달성 정부, 때만되면 폐지 언급하는 정례행사 24조 규모에 근로자 반발도 커 ‘넘사벽’ [비즈니스워치] 이상원 기자 lsw@bizwatch.co.kr
직장인들의 연말정산 필수항목으로 꼽히는 신용카드 소득공제가 또 도마에 올랐습니다. 얼마 전 세금제도 설계 최고책임을 지고 있는 경제부총리의 입에서 신용카드 소득공제 폐지설이 튀어나왔기 때문인데요. 당장 1000만 근로자들이 들썩이기 시작했습니다.
세금을 줄여주는 제도가 사라진다고 하니 유리지갑 주인들의 눈에 쌍심지가 켜지지 않을 수 없거든요. 게다가 부총리의 발언은 직장인들이 연말정산을 끝낸 지 불과 며칠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에 나왔습니다. 이번 월급날에 생각보다 적은 환급액을 손에 쥐었거나 세금을 토해낸 직장인들의 분노는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직장인들은 작년에도, 또 몇 년 전에도 똑같은 뉴스를 보고 광분했던 적이 있습니다. 단지 시간이 지나 기억을 못 할 뿐이죠. 신용카드 소득공제는 정부가 때만 되면 없애겠다고 팔을 걷어붙이는 항목이거든요.
하지만 그 때마다 제도는 없어지지 않고 연장돼 왔습니다. 정부 의지만으로 제도를 없애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이죠. 신용카드 소득공제에는 어떤 문제들이 얽혀 있는 것일까요.
# 정부 목적은 달성
신용카드 소득공제는 1999년 9월 자영업자의 과표 양성화를 꾀하기 위해 도입됐습니다. 근로자의 근로소득세는 원천징수로 매달 월급에서 알아서 떼가니까 일명 유리지갑처럼 투명하게 관리됐지만, 자영업자들은 얼마를 벌고 쓰는지 정확하게 파악이 안 되고 있었거든요.
1994년 기준 자영업자 소득파악률이 실제 수입의 50% 미만인 것으로 추정됐고, 특히 음식점이나 숙박업종, 소매업의 경우 소득파악률이 30%대에 그친다는 연구결과도 있었습니다. 자영업자의 소득 절반 이상은 세금을 계산조차 못 했다는 것인데요. 근로소득자의 소득파악률이 95% 수준으로 꾸준히 높은 것과 비교하면 조세불평등이 심각했죠.
당시 정부는 자영업자 소득파악을 위해 근로소득자를 활용하는 묘수를 꺼내 들었습니다. 자영업자의 매출은 상당부분 소비자인 근로소득자들이 일으키고 있으니 근로소득자들에게 세금을 줄여주는 소득공제라는 당근을 주면서 현금보다 신용카드를 더 많이 쓰도록 유도한 것이죠.
신용카드 사용명세는 신용카드사를 통해 자료를 자동으로 수집할 수 있었고, 신용카드 매출이 늘수록 자영업자의 소득파악률도 올라갔습니다. 20년 뒤인 2014년에는 소득파악률을 73%까지 끌어올려 졌죠.
2005년 현금영수증제도까지 도입됐고, 신용카드 등 사용액 소득공제라는 이름으로 신용카드, 직불(체크카드), 현금영수증 사용액까지 사실상의 모든 자영업자의 매출이 파악이 되면서 자영업자들이 빠져나갈 구멍이 더욱 좁아졌습니다. 자영업자간 거래내역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전자세금계산서 의무화 등 다른 제도까지 가세했죠.
결국, 정부가 신용카드 소득공제 폐지를 시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자영업자 소득파악이라는 제도 설계 당시의 목표가 달성됐다는 데 있습니다. 이제는 근로소득자에게 굳이 당근을 주지 않더라도 자영업자 소득 파악에 문제가 없다는 판단이 선 것이죠. 더구나 신용카드는 소득공제가 아니더라도 이미 소비에 필수적인 결제수단이 됐으니까요.
# 해소되지 않는 부작용
정부가 신용카드 소득공제 폐지를 외치는 또 하나의 이유는 부작용입니다. 제도 설계의 목적이 자영업자 소득파악에만 있다 보니 단순히 신용카드를 많이 쓰는 사람에게 혜택이 쏠렸거든요.
신용카드 소득공제는 근로소득자가 총급여의 일정액을 초과해서 쓴 신용카드 사용액에 일정비율을 곱해서 소득공제를 해주는 방식인데요. 그동안 공제문턱과 공제율, 공제한도에 변화가 있었지만, 단순히 사용액에 비례해 일괄적으로 계산하는 방식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상대적으로 신용카드를 사용할 경제적 여력이 많은 사람, 혹은 단순히 소득 대비 소비지출이 많은 사람들이 세금혜택을 많이 받는 구조여서 근로소득자 내에서의 또 다른 조세불평등이 생겨난 것이죠.
2017년에 와서야 총급여 7000만원 이하(공제한도 300만원)인 경우와 7000만원 이상~1억2000만원 이하(공제한도 250만원), 1억2000만원 초과(공제한도 200만원) 등 소득구간에 따라 공제한도를 차등 적용한 것이 그나마 이러한 부작용을 해소한 첫 시도였는데요. 소득 재분배라는 조세제도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은 계속됐습니다. 단순히 소비가 많은 사람에게 세금혜택이 쏠리는 부분도 해소되지 못했고요.
실제 전체 신용카드 소득공제 대상의 1인당 소득공제액과 총급여소득 상위 10%의 1인당 신용카드 소득공제액은 약 50만원의 격차가 꾸준히 발생했습니다. 전체 평균 공제액이 200만원이면, 상위 10%의 공제액은 250만원 정도였습니다. 소득 상위 10%가 더 많은 공제를 받는 구조죠. 2017년부터 총급여 구간에 따라 공제한도를 차별화했지만 큰 변화는 없었습니다.
# 1000만명 업은 정치적 영향력
자영업자 소득 양성화라는 목표도 달성했고, 부작용도 해소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정부는 꾸준히 신용카드 소득공제를 폐지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폐지라는 방향과 달리 매번 결과는 약간의 손질에 그쳤습니다. 신용카드 소득공제의 영향력이 너무 커져 버린 탓이죠.
실제 전체 신용카드 소득공제액은 2007년 9조650억원으로 10조원을 채 넘기지 않았지만, 2017년에는 그 갑절이 넘는 23조9346억원으로 불어났습니다. 공제대상 근로소득자 수도 같은 기간 539만명에서 968만명으로 늘어났고요. 이제 신용카드 소득공제를 폐지하려면 1000만 근로자의 공감대가 필요한 상황이 됐습니다. 무려 24조원 근로소득의 세금이 좌우되는 문제죠.
자연히 국회 벽을 넘기는 더욱더 어려운 상황입니다. 세금혜택을 주는 세법조항은 보통 3년이나 2년을 기준으로 한시적으로 시행되고 기한이 끝나면 알아서 폐지되도록 제도 일몰이 설계되는데요. 신용카드 소득공제는 1999년 이후 일몰 기한이 올 때마다 계속해서 연장되기만 했습니다. 지난해까지 일몰이 찾아온 8차례 모두 제도가 연장됐죠.
정부는 일몰기한이 돌아온 해에 별다른 관련 입법안을 내지 않습니다. 자연스럽게 폐지되길 바라는 것이죠. 하지만 정치인들이 가만히 있질 않았습니다. 매번 신용카드 소득공제 시행을 연장하는 법안을 제출하고 또 통과시켰습니다. 정치적으로 주목받기 딱 좋은 입법안이거든요.
지난해에는 정부의 입김이 좀 먹혀들기는 했는데요. 그동안에는 3년이나 2년을 연장하는 법이 통과됐는데, 1년만 더 연장하는 것으로 법을 개정했거든요. 덕분에 1년 만에 또 신용카드 소득공제의 존폐문제로 시끄럽게 된 것이기도 하고요.
# 더 늘어난 숟가락들
하지만 올 연말에도 신용카드 소득공제가 자연스럽게 폐지되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제도 폐지를 어렵게 하고 있는 또 다른 이유가 있거든요. 바로 특정 소비에 대한 예외규정이 많아졌다는 점입니다.
종전에는 단순히 신용카드와 직불(체크)카드, 현금영수증 사용액에 대해 일정 공제율과 공제한도를 적용했었는데요. 최근에는 여러가지 세금 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신용카드 소득공제 제도를 활용하면서 공제항목이 복잡하게 덧붙여지기 시작했습니다.
2012년의 경우 영업시간 제한 등 대형마트 규제가 강화되면서 전통시장 활성화를 지원한다며 전통시장에서 쓴 신용카드 등 사용액은 공제율도 높게 적용하고, 공제한도도 100만원을 더 얹어주는 내용이 추가됐습니다.
2014년부터는 교통문제 해결책으로 대중교통 사용액에 대해 공제한도 100만원을 더해주기로 했고요. 2017년에는 전통시장과 대중교통 사용분의 공제율을 종전 30%에서 40%까지 올리는 내용으로 혜택을 차별화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2018년에는 문화생활을 장려한다며 도서구입비와 공연관람료를 30% 공제율로 100만원까지 더 공제해주기로 했고, 올해부터는 박물관과 미술관 관람료까지 이 추가공제 대상에 포함됐습니다.
세금이 다른 정책의 보조수단으로 활용된 것인데요. 새로운 기능이 추가되면서 신용카드 소득공제를 폐지하려는 정책방향은 달성하기가 더 어려워지게 됐습니다. 이제 신용카드 소득공제의 이해관계자는 1000만 근로자를 넘어 전통시장, 대중교통, 출판, 문화예술계까지 늘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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