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해지 환급형① 보험료가 더 저렴한 이유
사이다보험
무해지, 표준형 대비 보험료 싸지만 중도환급금 없어
만기 전 해지 '소비자 불리'-만기 후엔 '보험사 불리'
보험사, 보험료 더 낮추고 만기환급금 확 줄인 상품도 내놔
최근 '무해지 환급형' 보험상품이 늘어나고 있다. 건강보험, 암보험, 종신보험을 비롯해 어린이보험, 유병자를 위한 간편보험 등 다양한 상품에 적용되고 있고, 보험사들은 낮은 보험료를 강조하면서 가격경쟁에 불을 붙이고 있다.
무해지 환급형 보험상품은 보험료를 납입하는 동안 보험을 해지하면 해지환급금이 아예 없는 상품이다. 이름 그대로 무(無) 해지 환급이다. 일반적인 건강보험의 납입기간이 평균 20년 정도인데 이 기간 중에 해지하면 그때까지 낸 보험료를 돌려받지 못한다는 얘기다.
20년 가까이 보험료를 냈는데 한푼도 돌려받지 못한다는 것은 환급금을 돌려받는 것에 익숙해진 국내 보험가입자들에게는 속 쓰린 일이다.
그럼에도 무해지 상품이 최근 인기를 끄는 것은 기존 상품대비 보험료가 20~30% 정도 저렴하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소비자들이 보험가입할때 '보험금이 얼마인가'를 중요하게 생각했다면, 보험상품 비교가 가능해 지면서 지금은 가격, 즉 보험료에 더 민감해진 상황을 반영한 것이다. 보험사들이 '더 저렴한 보험료'를 내세우며 마케팅에 열을 올리는 이유다.
그렇다면 무해지 상품이 기존 상품에 비해 다른 점은 무엇일까? 보험사는 왜 무해지 상품 판매에 열을 올릴까? 보험사가 말하는 '더 저렴한 보험료'에 숨겨진 내용이 무언지 지금부터 속 시원히 알아보자.
"같은 보장인데 보험료는 더 저렴합니다"…보험사, 신규·갈아타기 영업 중
보험사 입장에서 무해지 상품은 신규 가입자를 유치하는 동시에 저렴한 보험료로 동일한 보장 혹은 더 많은 보장을 한다는 점을 내세워 기존 가입자들에게도 접근이 가능한 상품이다. 보험에 이미 가입한 고객을 대상으로 부족한 보장을 분석해 추가로 보험가입을 유도하는 이른바 업셀링(Up-selling) 판매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보험사들은 "매달 15만원을 내야하는 기존 보험을 같은 보장으로 10만원만 내면 되니 이 상품을 추가로 가입해 보장을 더 늘리거나 혹은 이 상품으로 갈아타는 것이 훨씬 이득"이라며 보험을 판매한다.
보험시장 포화로 새로운 계약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보험사들에게는 신규수익을 창출하고 중도 해지시 환급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돼 부담을 더는 1석2조 상품인 셈이다.
보험사-소비자 시소게임… 중도해지때 소비자 무조건 불리
반대로 소비자에게는 보험료를 납입하는 기간 동안 보험을 해지하면 이에 따른 패널티가 큰 상품이다. 지금까지 낸 보험료를 전혀 돌려받지 못하는 것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해지 상품에 가입하기 전에는 반드시 꼭 필요한 상품인지, 납입기간 동안 유지할 수 있는 상품인지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마치 시소처럼 보험사에 유리한 상품일수록 보험소비자에게는 불리하다. 그러나 무해지 상품은 납입기간이 지나면 보험사는 불리하고 고객은 유리해 상황이 역전된다.
납입기간까지 보험을 해지하지 않은 가입자는 표준형(무해지가 아닌 상품)에 가입한 고객보다 보험료는 20~30% 덜 내고 동일한 환급금과 보장을 받게 된다. 납입완료 시점이 되면 보험사는 더 낮은 보험료를 받고 동일한 환급금과 보험금을 지급해야 하는 것이다. 보험을 유지하는 고객이 많을수록 보험사의 부담은 커지게 된다.
일반적인 보험상품(표준형)은 만들 당시 고객이 만기까지 보험계약을 유지할 것을 가정해 보험료를 책정했다. 중간에 보험을 해지할 것을 염두하지 않고 보험료를 매긴 것이다.
무해지 상품은 이러한 유지율(혹은 해지율)을 적용해 보험료를 산정한 것으로 기존에는 없던 방식이다. 만약 보험사가 무해지 상품을 만들면서 예상했던 것보다 '보험을 해지하지 않고 납입을 완료한 고객 비율이 높아지면' 보험사는 손실을 입게 된다. 보험료 납입완료 시점이 돌아오는 10, 20년후 대량의 손실을 입을 가능성을 안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위험부담에도 보험사들이 무해지 상품판매에 집중하는 무엇일까?
시장포화와 경쟁심화로 보험사 매출(수입보험료)이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더 낮은 보험료를 내세우며 가격경쟁에 골몰하는 이유는 단순 명료하다. '팔리는 상품'이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은 보험상품 비교를 통해 '더 저렴한 보험상품'을 원한다. 이미 너무 많은 사람들이 보험에 가입했기 때문에 보험사는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고객들의 니즈(needs)에 더 기민하게 반응 할 수 밖에 없다.
보험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2018년 가구당 보험가입률은 98.4%다. 또 가구당 생명보험 가입건수는 3.7건, 손해보험 역시 3.7건이다. 4인 가족을 기준으로 해도 한명당 두건 정도의 보험에 가입돼 있는 셈이다.
무해지 보험의 진화…보험료 더 싸지만 만기환급금 작아
그러나 모든 기업이 그러하듯 보험사 역시 손해 볼 것이 확실한 상품을 만들지 않는다. 예상했던 만큼의 해지율이 발생하지 않으면 손실을 보기 때문에 이러한 손실을 줄이기 위해 다양한 버전의 상품을 내놓고 있는 것이다.
최근의 무해지 상품들은 ▲50%형 ▲10%형 ▲슬라이드형 등 납입완료 이후 지급할 환급금을 줄여 보험료를 더 낮추는 선택지를 제공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주계약 이외 담보에 '갱신형'을 도입한 상품들도 속속 선보이고 있다. 무해지 중에서도 보험료를 더 낮출 수 있는 상품들을 출시해 가입을 유도하는 것이다. 물론 보험료는 저렴하지만 환급금은 크게 줄기 때문에 소비자가 시소의 위에 자리할 수 있는 역전의 기회는 거의 없는 상품이다.
50%형은 납입완료 후 환급금이 표준형과 동일해지는 것이 아니라 50%만 지급하고 10%형은 10%만 지급한다. 10%형의 경우 일반적인 무해지 환급형(100%) 대비 보험료가 최대 40% 가까이 저렴하지만 20년간 2000만원 가량의 보험료를 내고 해지시 200만원 정도만 돌려받는다.
슬라이드형은 표준형과 동일한 환급금을 지급하지만, 납입완료 이후 시점부터 매년 환급률을 5%씩 체증하는 구조다. 납입을 완전히 완료한 후에도 표준형과 환급금이 동일해지려면 20년이 지나야 한다. 납입완료후 해지할 경우 환급금은 체증된 만큼만 지급한다. 20년간 보험료를 다 내고 21년째 보험을 해지했을 경우 환급받는 금액은 납입한 금액의 5%다.
50% 슬라이드형은 매년 5%씩 10년간 체증해 환급금을 표준형 대비 50%만 지급하는 상품이다.
이 상품들은 표준형 상품대비 저렴한 무해지 상품과 비교해서도 보험료가 더 저렴하다. 그러나 그만큼 납입완료 후 표준형과 동일하게 적용받던 환급금 혜택이 크게 줄어든다는 점을 반드시 인식해야 한다.
김미리내 기자 pannil@bizwatch.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