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개월 주입 물 1만t에 단층 뒤틀려… 학계도 놀라게 한 포항지진
해외에선 지열발전 물 부을 때 규모 4.0 미만의 지진만 발생
포항은 물 주입에 수압 누적되며 5.4 지진 촉발… 이례적 현상
한반도에서 지진이 과학적으로 측정되기 시작한 것은 1978년이다. 이후 가장 큰 지진은 2016년 발생한 규모 5.8의 경주 지진이다. 지각판들의 충돌에 의해 발생했다고 설명된다. 그다음 규모는 2017년 11월 발생한 5.4의 포항 지진이다. 그런데 이 지진은 지열발전소를 만들다 생긴 지진인 것으로 20일 밝혀졌다. 과학계도 인위적인 요인으로 이렇게 큰 지진이 발생했다는 점에 놀라고 있다. 지금까지 해외에서 지열발전이 원인으로 지목됐던 지진은 전부 규모 4.0 미만이었다. 포항 지진이 전 세계 지진 교과서를 바꾸게 된 것이다.
이번 조사는 해외 과학자도 참여해 국제적 공신력을 확보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단 과학계 일부에서는 여전히 정부 조사단의 결과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앞으로 손해배상을 두고 벌일 법정 다툼에서도 과학적 논란이 계속될 여지가 남아 있다.
소형 지진이 단층면에 집중
정부 조사연구단은 2017년 포항 지진이 자연 지진이 아니라는 첫째 근거로 당시 지하에서 지진이 발생한 위치인 진원(震源)의 깊이와 지열발전소에서 지하에 물을 주입한 구멍의 깊이가 일치한다는 사실을 들었다. 연구단장인 이강근(대한지질학회장) 서울대 교수는 "땅 위에서 주입한 수백t의 물에 의해 발생한 높은 압력이 지진이 일어난 단층면에 소규모의 미소(微小) 지진들을 순차적으로 일어나게 했다"며 "이로 인해 대형 지진이 촉발됐다"고 했다.
연구진은 미소 지진의 진원 위치를 3차원으로 분석했다. 이를 통해 진원들이 분포한 평면이 포항 지진의 단층면과 일치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연구진은 지열발전소가 2016년 1월 말부터 2017년 9월까지 대량의 물을 주입할 때마다 강한 수압이 촉발한 지진파 자료를 확보해 분석했다. 이를 이용해 미소 지진이 일어난 지점을 정확하게 확인했다.
또 지하 3800m 부근에서 시추한 암석 파편을 분석한 결과 단층 활동에서만 발견되는 형태의 점토(흙)가 발견됐다. 암석은 지진에 의해 압력을 받으면 바스러지거나 변형된다. 또 지하 구멍 4000m 이후부터는 내부 촬영이 안 됐다는 점을 근거로 이 지점이 지진에 의해 손상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열발전소 내부 자료가 스모킹건
지열발전소 내부 자료도 포항 지진이 인재(人災)임을 뒷받침했다. 지열발전소가 산업통상자원부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 말 시험 가동을 시작하며 주기적으로 수백t 이상의 물을 땅속에 주입했는데 그때마다 지진이 발생한 것이다. 발전소는 2016년 12월 15일부터 일주일 동안 지하 4000m 깊이까지 굴착한 구멍에 총 3681t의 물을 주입했다. 이후 23일 포항 북구에서 규모 2.2 지진이 발생했다. 사흘 후 재개한 물 주입 이후에도 비슷한 곳에서 지진이 관측됐다. 발전소는 4개월간 물 주입을 중단했다가 2017년 3월 16일부터 한 달가량 2800t의 물을 주입했는데 이때도 같은 곳에서 규모 3.1 지진이 일어났다.
조사연구단이 미소 지진들의 진원을 확인한 근거가 된 지진파 자료도 지열발전소에서 나왔다. 이진한 고려대 교수(지구환경과학과)는 "지열발전소 개발에 참여한 스위스 업체가 땅속 깊은 곳에 지진계를 설치했는데 여기서 소규모 미소 지진들의 정확한 발생 위치가 확인됐다"며 "지열발전소가 포항 지진을 촉발했다는 결정적 증거가 발전소 내부에서 나온 셈"이라고 말했다.
일부선 증거 불충분하다는 목소리도
정부 조사연구단의 발표에 대해 일부 과학자는 반론을 제기했다. 포항 지진이 해외 지열발전소에서 발생한 지진들보다 규모가 훨씬 컸던 이유를 아직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홍태경 연세대 교수(지구시스템과학과)는 "물 주입이 지진의 직접적 원인이라기보다 동일본 대지진과 경주 지진의 여파로 응력(應力·물질을 변형시키는 힘)이 쌓일 대로 쌓인 단층을 최종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방아쇠 역할을 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말했다.
이영완 과학전문기자(ywlee@chosun.com);최인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