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세포 없애 회춘? 사상 첫 환자 임상시험 통해 입증
영화에 등장하는 좀비는 공포 그 자체다. 죽어도 다시 일어나 의식도 없이 산 사람을 쫓는다. 우리 몸에도 좀비가 있다. 바로 세포분열을 멈춘 노화세포다. 신체 기능이 정상일 때는 면역 시스템이 바로 제거하지만 질병이나 노화로 인해 공격망을 벗어나면 온몸을 떠돌면서 각종 질병을 유발한다. 과학자들은 좀비세포를 박멸하면 질병 치료는 물론, 노화를 막고 회춘(回春)까지 가능하다고 본다.
◇좀비세포 제거, 중증 환자의 노화 억제
미국 메이오 병원의 제임스 커클랜드 박사 연구진은 지난 7일 국제학술지 '이바이오메디슨'에 "고령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소규모 임상시험에서 약물로 노화세포를 제거할 수 있음을 처음으로 입증했다"고 밝혔다.
노화세포는 나이가 들면서 정상 기능을 잃어버렸지만 면역 시스템이 미처 제거하지 못한 세포들이다. 죽지도 않고 일도 하지 않고 그냥 인체 속을 떠다닌다고 좀비세포라고도 부른다. 과학자들은 좀비세포가 골다공증·골관절염·근육손실 같은 각종 노화 현상의 원인임을 동물실험을 통해 규명했다. 최근에는 알츠하이머나 파킨슨병 같은 퇴행성 뇌질환도 유발한다고 알려졌다.
이번 연구는 실제 환자의 좀비세포를 제거한 첫 임상시험이다. 연구진은 평균 나이 70세의 환자 14명에게 3주간 백혈병 치료제로 허가받은 '다사티닙'과 포도와 양파·녹차·사과·딸기·은행나무 등에 포함된 식물 색소인 '케르세틴'을 복용시켰다. 임상시험은 원래 목적인 약물의 안전성을 확인했다.
더불어 약효도 일부 확인했다. 약물 복용 후 환자들은 6분 안에 21m를 더 걸을 수 있었으며, 의자에서 일어나는 시간이 2초 빨라졌다. 환자들은 모두 폐섬유화증을 앓고 있어 임상시험 전에 신체 기능이 약해질 대로 약해진 상태였다. 이 병은 호흡을 어렵게 하고 근육과 관절 통증, 극심한 피로를 유발한다. 진단을 받으면 6~8년 후 대부분 사망한다.
과학자들은 지난 20년 동안 인체세포와 동물 실험을 통해 좀비세포를 제거하는 약물들을 속속 개발했다. 이들은 노화(senescence) 세포를 분해하는(lytic) 약이라고 해서 '세놀리틱(senolytic)' 약물이라고 불린다. 지금까지 10여 종의 세놀리틱 약물이 개발됐다. 노화세포는 면역반응을 유발하는 물질을 분비해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데, 비정상적인 노화세포는 이를 피하고 주변 세포들까지 좀비 상태로 만들었다. 커클랜드 교수는 좀비세포가 면역반응을 회피하는 경로를 찾아 이를 억제하는 세놀리틱 약물들을 개발했다.
◇치매, 우울증 등 뇌질환 치료도 기대
과학자들은 신체 곳곳에서 좀비세포를 제거해 생쥐의 운동기능을 향상시키고 털에 다시 윤기가 흐르게 했다. 신장과 폐, 연골의 손상도 치료됐다. 수명도 25% 늘어났다. 최근에는 뇌질환 치료에도 효과를 보이고 있다.
지난 3일 커클랜드 박사 연구진은 국제학술지 '셀 메타볼리즘'에 생쥐의 뇌에서 좀비세포를 없애 비만으로 인한 불안증을 치료했다고 발표했다. 고지방 사료를 먹고 살이 찐 생쥐는 넓은 곳을 피하고 벽과 구석진 곳으로만 다녔다. 미로(迷路) 찾기 시험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전형적인 불안 증세였다. 예상대로 비만 쥐의 뇌에는 노화세포들이 쌓여 있었다. 연구진은 쥐에게 세놀리틱 약물을 먹여 뇌의 노화세포를 제거했다. 그러자 쥐의 불안증이 사라졌다. 뇌에 쌓인 지방도 줄고 신경세포들이 정상적으로 성장했다.
알츠하이머도 좀비세포 제거로 치료할 수 있다. 지난해 '네이처'에는 알츠하이머 증세를 보이도록 유전자를 조작한 쥐는 인지기능을 맡은 뇌 해마에 좀비세포가 축적돼 있다는 연구 결과가 실렸다. 유전자를 바꿔 좀비세포가 사라지게 하자 알츠하이머를 유발하는 타우 단백질 덩어리가 사라지고 기억력이 회복됐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노화세포를 무조건 없애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노화세포는 원래 상처나 질병이 퍼지지 않도록 손상된 세포가 스스로 세포 분열을 멈춘 형태다. 좀비가 되면서 제때 제거되지 못해 문제이지 원래 정상적인 생명 현상이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쥐 실험에서 좀비세포 제거 약물이 상처 치료를 지연시켰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좀비와 싸우면서 동시에 착한 좀비도 가려내야 한다는 말이다. 커클랜드 박사도 "인체 대상 연구가 이제 막 시작했기 때문에 누구도 세놀리틱 약물들을 임의로 복용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영완 과학전문기자(yw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