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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 계정으로 위장하면 4분의1 헐값"… VPN에 신음하는 콘텐츠업계

스팀, VPN 통한 게임 구매 늘자 하룻밤새 판매가 4배 올렸다가 비난

구글・타이달, 우회 가입하는 VPN 사용자에 골머리 "막을 방법 없어"


전 세계에 게임, 동영상, 음원 서비스를 제공하는 글로벌 기업들이 VPN(가상사설망)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VPN 기능을 이용해 저소득 국가의 계정으로 위장해 콘텐츠를 저렴하게 구매하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어서다. 일부 콘텐츠 기업들은 이를 막기 위해 전 세계 콘텐츠 가격을 균일화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지만, 일부 국가 소비자들은 이에 대해 반발하는 상태다.


7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세계 최대 게임 플랫폼 중 하나인 스팀(Steam)은 인기 게임인 '호라이즌제로던'을 사전 출시한 상황에서 일부 사용자들이 VPN을 사용해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게임이 출시된 아르헨티나, 멕시코, 브라질 등의 국가 계정으로 위장해 게임을 구매하는 경우가 늘자 해당 국가에서 하루만에 게임 가격을 4배 수준으로 올렸다.

조선비즈

게릴라 게임즈가 개발한 인기 게임 ‘호라이즌 제로던’ 스팀 판매창. / 스팀 홈페이지 캡처

통상 세계 각국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글로벌 콘텐츠 기업의 경우 각 국가의 소득 수준을 감안해 제품 가격을 설정한다. 미국, 유럽, 한국, 일본 등지에서는 정상 출고가격을 책정하지만, 멕시코나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남미와 일부 아시아 지역, 러시아, 중국 인도 등에는 가격을 이보다는 저렴하게 책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번에 논란이 된 게릴라 게임즈의 호라이즌제로던의 경우 미국, 한국 등지에서는 한화로 5만1000원에 출시가 됐지만, 아르헨티나의 경우 다른 국가들에 비해 낮은 539페소(약 1만3000원 수준)으로 출시했다. 일부 유저들이 VPN을 이용해 아르헨티나 계정을 만들어 게임을 구입하는 것이 급속도로 확산됐다.


VPN이란 인터넷 네트워크와 암호화 기술을 이용한 자체 통신 시스템 구축을 말한다. 개방형 네트워크에 대한 공격자들의 경로 추적을 무위로 돌릴 수 있는 주된 방법이다. 즉 두 지점 간 송수신된 모든 데이터를 암호화하는 소프트웨어를 기반으로 한다. 가령 사용자가 서울에서 미국 소재 기업의 서버에 접속해도 서울이 아니라 미국이나 다른 국가에서 접속한 것으로 위장할 수 있다. 인터넷기업이나 정부가 사용자의 온라인 활동을 모니터할 수 없기 때문에 훌륭한 개인정보 보호 기능을 제공하지만, 이처럼 악용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소비자들이 VPN을 이용해 낮은 가격에 콘텐츠를 구입하는 일은 이번뿐만이 아니다. 초고음질 음원 서비스로 유명한 미국의 타이달(Tidal) 역시 미국, 유럽 등지의 구독료와 남미 지역 구독료에 차등을 두고 있다. 미국 뿐만 아니라 다른 아시아 국가 소비자들도 VPN으로 아르헨티나 등의 계정을 만들어 서비스를 구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구글 유튜브 역시 마찬가지다. 광고 없이 유튜브를 볼 수 있는 유튜브 프리미엄의 경우 국내 한달 구독 가격은 8800원 수준이지만 인도 등 일부 국가에서는 2100원 수준으로 4배 가량 저렴하다. 유튜브는 약관을 통해 VPN을 이용해 타국 계정으로 위장하는 것은 불법임을 명시하고 있지만, 정작 VPN을 사용한 사용자를 찾아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네이버 블로그에는 VPN을 이용해 인도 유튜브 프리미엄 우회 가입하는 방법을 안내하는 글이 적지 않다.


VPN 사용을 기술적으로 차단하기 어려운 일부 글로벌 기업들은 출시가격을 인상하는 방식으로 대응에 나서고 있지만 이는 거센 소비자들의 저항에 맞닥뜨리고 있다. 스팀의 경우 문제가 된 호라이즌제로던의 아르헨티나 출시가격을 하룻밤 사이에 가격을 4배 수준인 2100페소(약 5만원)로 올리는 강수를 뒀지만, 이는 해당 국가의 소득 수준을 감안하면 지나치게 높은 수준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국내 IT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기업들의 특성상 콘텐츠 서비스 가격은 해당 국가의 소비자 수준에 맞춰서 조정할 수 밖에 없는데 최근 소비자들 사이에서 일반화된 VPN 기술을 사실상 막을 방법이 없다"며 "남미나 아프리카, 일부 아시아 국가 등에서 미국이나 유럽 선진국과 같은 가격을 책정할 경우 또다른 불평등을 만들게 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황민규 기자(durchman@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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