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수의 인터스텔라] "임영웅 신곡 좋아...성취하려면 좋은 욕심 부려야" 조영수
10년간 저작권료 가장 많이 받은 스타 작곡가
품격과 예의 갖춘 심사로 ‘미스터 트롯' 마스터 眞
"임영웅을 위한 신곡엔 이야기도 버라이어티도 있어"
"말하는 소리와 노래하는 목소리 같으면, 국민 가수"
"발라드 가수들도 트로트 변신, 열풍 최소 3년 갈듯"
"성장하려면 좋은 욕심 내고 빨리 피드백 받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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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 예술은 언제 대박 날까. 날씨처럼 주가처럼 예측이 불가해 보여도, 사실은 단순하다. 많은 사람이 찾는 것, 흔한 것, 내 이야기 같은 것.
지금 대세는 트로트다. 초등학교 졸업식에선 어린아이와 학부모가 유산슬의 ‘사랑의 재개발'을 합창하고, 트로트 진선미(眞善美)를 뽑는 대국민 투표에선 서버가 폭발할 정도로 문자가 몰린다. 오디션 프로그램 ‘미스터 트롯'이 시청률 35.7%대를 기록하며 트로트 열풍의 발화점이 됐다.
쇼의 플롯은 간단하다. 비녀 팔고 고구마 팔면서도 ‘자기 노래 만큼은 못 팔았던' 방방곡곡의 트로트 명수들이 한자리에 모여 기량을 펼치면, 심사위원석들은 심혈을 기울여 옥석을 가려낸다. 회가 거듭될수록 경쟁은 치열해지고 생존자들은 환골탈태하며 고난도의 미션을 수행한다. 시청자는 참가자의 좌절과 승리에 분노하고 안도하며, 한숨과 탄성을 오간다. 마침내 최종 라운드까지 올라간 가수들은 과거의 설움을 딛고 빛나는 스타가 된다.
오디션은 점점 가수와 심사위원, 시청자가 함께 벌이는 뜨거운 삼각 게임이 된다.
‘미스터 트롯'에서는 경연 내내 당겨진 활시위 같은 몸으로 비옥한 목소리를 뽑아냈던 임영웅, 순무 같은 얼굴로 칼칼하게 꺾고 시원스레 내지른 이찬원, 빈틈없이 완벽에 가까운 곡 소화력을 보여준 영탁, 베틀에 무명 짜듯 슬픔을 밀어내던 정동원을 보며 빠져들다가도, 무대가 끝나면 사람들은 정신을 차리고 마스터 석의 조영수를 바라보았다.
이 노래는 왜 마음을 울리는지, 왜 어떤 목소리는 고음에도 평범해지는지, 저 가수의 클라이맥스는 어디인지... 조영수의 족집게 해설에 맞춰 장면이 리플레이 되면, 그제서야 노래가 끝난 것 같은 포만감이 들곤 했다. 조영수의 전문성은 이 치열한 쇼에서 가수들이 어디로 갈지를 제시하는 정확한 나침반이었다. 그 자신, 최선을 다해 경청했고, 가창의 짜임새에 관해 구체적으로 논평 했다.
예능 방송의 역할을 수행한다기보다, 피드백에 목마른 참가자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나은 가르침을 주고 싶어 하는 전문가의 순수함이 온 몸에 밑간처럼 배어있었다. R&B부터 발라드까지, 컨츄리부터 트로트까지,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다양한 장르의 히트곡을 가진 힘있는 작곡가임에도 그 태도에 우월감이나 위계가 보이지 않았다.
이 경연 우승자의 가장 큰 특전은 조영수의 곡을 받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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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권위자 조영수에게 만남을 청했다. 공정성과 투명성이 화두인 시대, 짜릿한 독설도 감언이설도 없는 그의 실용적인 화법은 시대가 원하는 진정성과 잘 맞았다. 그는 2003년에 작곡가로 데뷔했고, 10년간 국내에서 저작권료를 가장 많이 받은 톱 작곡가로 꼽혔다. SG워너비의 R&B부터 홍진영의 트로트까지, 대중이 원하는 것을 파고들며 17년간 660여 곡을 써냈다.
단정하게 깎은 버섯 머리에 동그란 안경테, 습자지처럼 희고 투명한 얼굴에는 겸손하고 예민한 심성이 물처럼 배어 나왔다. 인터뷰가 있기 하루 전날, ‘미스터 트롯'에 진을 차지한 임영웅에게 줄 곡을 완성했다고 했다.
-만족스러운 곡이 나왔습니까?
"(활짝 웃으며)네. 영웅 씨의 목소리를 생각하면서 썼어요. 그가 잘 내는 음역대의 멜로디를 분석해서 작업했죠. 김이나 작사가도 신이 나서 술술 노랫말을 썼대요. 어머니, 연인, 아내… 소중한 사람에게 잘하고 싶은 마음을 담은 담백한 노래죠. 제목은 ‘이제 나만 믿어요'. 이야기하듯 노래하다 고음부에서 폭발하는 버라이어티한 곡입니다. 작곡가, 작사가가 가수에게 영감을 받았으니 곡이 안 좋을 수가 없어요(웃음)."
-지금 대중들은 트로트에 울고 웃고 환호합니다. BTS의 아미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송가인에서 임영웅으로 이어지는 팬덤의 확장성이 대단해요. 혹시 예상했나요?
"저도 놀라워요. 80년대까지 트로트는 60대 이상의 어르신들만 즐기는 옛노래였어요. 90년대는 댄스와 발라드의 시대였고, 2000년대엔 장윤정, 홍진영 정도만 특이점으로 주목받았죠. 확실히 오디션 프로그램이 발화점이 됐어요. ‘미스 트롯' 이후 송가인, 홍자 등 스타 플레이어에 열광하는 중년층이 생겼고, 이후 ‘미스터 트롯'이 20대까지 흡수해 버렸어요. 앞으로 최소 2~3년은 이 열기가 더 이어질 거라고 봐요."
-지나가는 유행이 아니라는 거지요?
"아닙니다. 트로트가 메인 장르가 되고, 스타 탄생의 관문이 됐어요. 많은 발라드 가수들이 트로트로 전향하고 있어요. 길이 크게 열린 거죠. 아이돌만큼 쉽지는 않겠지만, 유튜브가 있으니 글로벌 트렌드도 내다볼 수 있어요. EDM 사운드가 가미된 김연자의 ‘아모르파티'처럼 힙합, 비트박스 같은 타 장르와 협연하면 무궁무진하게 확장될 거예요."
-오디션을 보면서 당신만의 심사 기준이 궁금했어요.
"경연은 잘 올리는 것만큼 잘 떨어뜨리는 것도 중요해요. 중간에 누가 떨어지는 게 합당한가를 결정해줘야 했어요. 가령 팀으로 나온 무대에서 그 팀에 한 명이라도 실력이 떨어지는 사람이 있으면, 저는 ‘하트(통과)’를 안 눌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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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슈퍼스타K’를 심사했던 이승철 씨를 만나 심사 기준을 물은 적이 있어요. ‘음악의 룰은 음정 박자인데, 룰을 지키면서도 룰처럼 보이지 않게 부르면 좋았다'더군요. 특별히 트로트를 잘 부른다는 건 어떤 의미죠?
"튼튼한 기본기로 실수 없이 부르면 제일 좋아요. 다만 트로트는 표현력의 차이가 있어요. 슬픈 트로트는 발라드보다 더 슬프게 관객을 울려요. 흥겨운 트로트는 댄스곡보다 더 빨리 춤추게 하죠. 크고 즉각적으로 감정을 움직여요. 트로트 가수라면 그런 반응을 일으켜야죠."
-트로트는 세계 평화를 설득하기보다, 오로지 내 한과 흥에 집중하니 울림이 강해요. 작년에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흥행했을 때, 퀸의 ‘We Are The Champions'이 방방곡곡에 울렸던 것과도 묘하게 비슷하죠. 트로트 가사는 직접적이고 개인적이라 더 전파력이 크겠지요?
"그렇죠. 제가 작곡한 ‘사랑의 배터리'나 ‘사랑의 재개발' 같은 곡도 일반 발라드에서는 안 쓰는 센 언어를 썼잖아요. 시원하기도 하고, 독창적인 맛도 있죠."
-가사를 어떻게 발성하고 전달하는가에 따라, 노래의 맛이 확확 달라지더군요. 임영웅, 영탁, 이찬원의 가창력을 어떻게 평하시나요?
"임영웅의 목소리는 빠져들 수밖에 없어요. 이야기하듯 노래하는 건 연습만으로는 안됩니다. 타고난 거죠. 매력적인 목소리에, 힘 있고 안정적인 고음이 뒷받침돼야 하죠. 이런 스타일이 후반부로 갈수록 지루할 수 있는데, 임영웅은 강약을 기가 막히게 조절해요.
영탁은 곡을 쓰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작곡가의 메시지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입체적으로 불러요. ‘막걸리 한 잔' 같은 곡은 왜 이 멜로디가 여기 쓰였는지, 노래뿐 아니라 연기까지 곁들여 표현합니다.
이찬원이 노래할 땐 그 밝은 에너지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어요. 순수해 보여도 엄청나게 똑똑해서 무대에서 어떤 제스처로 관객을 사로잡을지 계획이 다 있어요(웃음). 투박함과 섬세함이 공존하죠. 꺾는 음도 한 음절씩 잘라 들으면 더 정확하고, 호흡의 들고 남도 좋아요. 앞으로 슬픈 노래도 발라드 가수 이상으로 잘할 거예요."
어떤 순간에, 그들은 노래를 부르는 게 아니라 창자에 저장된 리듬과 이야기를 몸으로 꾹꾹 밀어내는 것처럼 보였다. 그럴 땐 트로트 가수의 몸은, 아코디언을 메고 유랑하는 동유럽 집시나 전장의 나팔수 같았다. 오래 음악에 젖어 노래가 뼈가 되고 근육이 되고 눈동자가 된 사람들. 그 시끌벅적하고도 고독한 무대에서 조영수는 가수의 몸과 마음을 다 헤아리고 판독하는 유능한 의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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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살 소년 정동원이 ‘희망가'를 부를 땐 눈물이 났어요. 57회 칸에서 ‘아무도 모른다'는 작품으로 14살에 남우주연상을 받은 야기라 유야가 떠올랐습니다. 편견도 꾸밈도 없는 감정의 깊이가 어른의 슬픔을 능가한달까요.
"참 감사한 게 정동원은 어른 흉내를 안내요. 깨끗하게 부르는 노래가 주는 감동이 있어요. 프로듀서 입장에선 안 좋은 버릇이 든 상태로 노래를 잘하는 사람이 제일 가르치기 힘들거든요. 정동원은 잘 보이려고 멋을 안 부려요. 지금은 변성기가 잘 지나가도록 기도하는 마음이에요."
-가수 이적은 ‘못 배운 목소리'가 가장 좋다고 하더군요. 훈련되지 않은 목소리가 주는 매력이 그만큼 큰 거죠. 그런데 가수의 가장 큰 힘은 뭘까요? 목소리, 선곡, 진정성? 인간적인 매력?
"경연에선 선곡이 50%죠. 좋은 가수라면 그 곡의 메시지를 청중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해야 해요. 슬픔은 슬픔대로, 기쁨은 기쁨대로. 여기서 음정, 박자, 고음 처리… 기술은 노력으로 다 되는데 타고난 목소리만큼은 바꿀 수가 없어요. 가수의 가장 큰 힘은 말하는 목소리로 노래할 때에요."
-목소리가 가장 중요하군요.
"오래 사랑받는 가수들을 보세요. 국민가수들은 말하는 목소리와 노래하는 목소리가 같아요. 신승훈, 이승철처럼요. 신기하죠."
-조용필, 이문세, 심수봉, 이미자 씨도 그렇네요. 혹시 좋은 목소리에 대한 로망이 있습니까? 학창 시절부터 지금까지 보이즈투맨을 가장 좋아했던 거로 압니다.
"17살 때 보이즈투맨을 처음 들었어요. 클래식과 가요만 듣다가 흑인 음악에 푹 빠졌죠. 보이즈투맨의 모든 곡을 다 외우고 피아노로 쳤어요. 아카펠라 그룹을 결성해서 별 밤 뽐내기 대회도 나갔죠(웃음). 보이즈투맨은 목소리, 창법, R&B 스타일의 기교… 모든 게 훌륭했어요.
나얼이나 SG워너비가 보이즈투맨의 메인 보컬인 와냐 모리스를 동경하면서 자란 친구들이죠. 저는 프로듀서인 베이비페이스, 그의 스승 격인 퀸시 존스까지 올라가면서 흑인 음악의 뿌리를 찾았어요. 감히 그들 때문에 제가 지금 대중음악을 할 수 있는 거죠."
-힘 있게 찍어 부르는 창법보다는 밀고 당기는 창법을 선호하겠군요.
"하하. ‘록 & 소울’이라고 하면 저는 힘을 가지고 노는 후자 쪽이에요. 김호중이 성악 창법으로 힘있게 밀어 올리는 스타일이라면, 임영웅 같은 친구가 힘을 빼고 간질간질하게 밀당을 잘하는 친구죠(웃음). 저는 블루스 스타일을 선호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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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받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팬덤이 생긴 가수를 평가한다는 건 사실 쉽지 않아요. 잘해도 못해도 뒷말이 많아 부담이 컸을 텐데요.
"저는 딱 가수만 보고했어요. 좋은 책임감이랄까요. 녹음실에서 후배 가수 프로듀싱할 때처럼 대했죠. 사실 말재주가 없어요. ‘슈퍼스타K’나 ‘위대한 탄생' 의뢰가 왔을 때도 거절했어요. 윤일상, 방시혁, 주영훈, 김형석… 달변이셨던 예전 작곡가들과 비교해 보세요. 저는 민폐예요(웃음). 그런데 재미보다 정확한 음악적 평가를 해달라니까, 제 영역에서만큼은 정직하니까 용기를 냈어요. "
-다행히 박진영의 독설과 유희열의 따스함을 동시에 갖췄다,는 평가를 들었습니다(웃음).
"그분들은 언변도 음악적 재능도 뛰어나시죠. 저는 무조건 가수의 눈만 봤어요(웃음). 저도 모르게 걱정스러운 표정도 짓고, ‘소름 끼치게 잘한다’고 혼잣말도 했죠. 나중에 그렇게 우연히 잡힌 멘트조차 가수들이 귀담아듣고 배운다는 걸 알고 깜짝 놀랐어요."
-전문가의 진단은 그만큼 소중한 기회니까요. 시청자도 쾌감이 있더군요. 왜 저 가사가 귀에 꽂히는지, 왜 저 무대가 흥분되는지… 레시피를 알고 음식을 즐기는 기분이랄까요.
"신인 작곡가 시절에 가수들이 녹음실에서 스트레스받는 걸 자주 봤어요. 이유도 모른 채 계속 다시 부르라고 하니, 얼마나 답답했겠어요. 저는 왜 다시 해야 하는지, 뭐가 부족한지 이유를 알려주려고 많이 노력해요. 좀 못해도 제가 시범을 보여요. 비브라토나 음정의 느낌이 왜 아쉬운지를 설명하면서. 이번에도 꾸미지 않고 아주 구체적으로 디렉팅을 했어요."
-오히려 예능스럽지 않게 정색하며 진지하게 말하는 화법이, 상업적인 쇼에 권위를 만들어 줬어요. 마스터들의 흥겨운 분위기에 휩쓸릴 법도 한데, 한 치의 양보가 없더군요.
"그래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엄청난 욕을 먹었어요(웃음). 송가인 씨가 김연자의 ‘영동블루스'를 불렀을 때였어요. 워낙 우등생이지만, 오늘은 원곡이 어려워 90점만 주겠다고 했죠. 작곡가이다 보니 단점이 정확하게 들려요. 악평은 아니었어요. 워낙 잘하지만, 오늘은 좀 덜 잘했다, 정도. 그런데 김연자 씨가 "200점"이라고 평하니, 온라인에서는 난리가 났죠(웃음). 워낙 거짓말을 못 해요. 쓴소리 해야 하면 에둘러 가다가도 결국 쏟아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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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비판과 칭찬에는 허수가 없었다. 기준이 확고할수록 신뢰도는 높아졌다. 조영수는 음악을 정식으로 공부한 적이 없다. 피아노에 재능을 보였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연세대 생명공학과에 입학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음악을 향한 간절함이 커졌고 음대 수업을 청강하는 일이 많았다. 1996년 친구들과 대학가요제에 나갔고 자신이 만든 곡으로 대상을 받았다. 이후 어머니가 사준 신시사이저로 본격적인 작곡을 시작했다.
2003년 옥주현의 앨범에 곡이 실리면서 데뷔했다. 클래식과 화성악을 기반으로 한 그의 작업은 장르를 변주해가며 무서운 기세로 대중의 귀를 파고들었다. 2007년 한해는 1위부터 5위까지 대중가요 순위에 오른 노래가 모두 조영수의 곡인 적도 있었다. SG워너비 ‘내사람’, 티아라 ‘너 때문에 미쳐’, 김종국 ‘제자리걸음’, 이기찬 ‘미인’, 오렌지 캬라멜 ‘마법 소녀’, 홍진영의 ‘오늘 밤에' 등 히트곡은 다 셀 수 없다.
-히트곡 메이커, 조영수 작곡의 핵심은 뭐죠?
"간결함이요. 메인 멜로디, 즉 대선율이 있을 때 보통은 꾸밈음과 리듬으로 변주를 많이 하는데, 저는 잔가지를 많이 안 쳐요. 간단한 음률로 MSG를 줄이고 깨끗하게 가면, 대중이 더 기억하기 쉽고 듣기에도 편해요. 가수에 따라 양념도 치고, 멋을 부릴 때도 있지만, 대체로 간결함을 유지하려고 해요."
-스펙트럼은 놀랄만큼 넓지요. R&B와 발라드, 댄스, 컨트리, 국악, 트로트까지 장르마다 화성을 만지는 쾌감이 남다르겠습니다.
"확실히 쾌감이 있어요. R&B로는 음악적 지식을 뽐내는 기쁨이 있고요(웃음). 슬픈 발라드는 감정의 끝 모를 바닥까지 가보려고 무진장 애를 써요. 이승철 씨의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나 이기찬의 ‘미인', 이승기 곡을 쓸 땐, 못 마시는 술까지 마시면서 저 자신의 깊은 울음을 끌어냈어요.
(활짝 웃으며)트로트의 쾌감은 재미예요. ‘이렇게까지 해도 될까?’싶은 것들을 신나게 밀어붙여요. 유산슬의 ‘사랑의 재개발'에서 ‘모조리 싹 다~ 갈아엎어 주세요~’ 이 멜로디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떠다니는 것처럼 가볍고 유치하잖아요. 그래서 아이들과 어른들이 합창하듯 같이 부른대요(웃음). 댄스 음악은 또 아이돌의 팬덤이 작곡가인 저에게까지 오니 신기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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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곡을 만드는 데 작곡 시간이 10분 미만이라고 해서 놀랐어요. 17년 동안 660곡을 발표할 정도로 괴물 같은 생산성은, 다작의 경험이 데이터로 쌓였기 때문이겠지요?
"화성악, 코드 진행을 공부하면서 써왔기 때문에 대중이 좋아하는 취향의 데이터가 있어요. 최대한 그 안에서 멜로디를 쓰고 있고요. 단순히 피아노 앞에서 보낸 시간만 보면 발라드는 5분에서 10분을 넘기지 않아요. 앉으면 멜로디는 단번에 쓰죠. 하지만 그 전에 가수의 느낌, 장르, 템포, 메이저로 갈까 마이너로 갈까… 며칠 혹은 몇 달 동안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요."
들인 시간에 비례해서 좋은 곡이 나오는 건 아니라고 했다.
"기억도 안 날 정도로 금방 쓴 곡이 사랑을 받기도 하고, ‘잘 썼다, 뿌듯하다' 싶었던 곡이 소리 없이 사라질 때도 많죠. 예측대로 안 되니 겁도 나고 재미도 있어요. 다작이 절정에 달했을 땐 일주일에 1~2곡 정도를 시장에 발표했어요. 많이 썼기 때문에 그만큼 히트작도 많았어요. 반면 빠듯한 시간에 퀄리티가 떨어지는 곡을 낼 때는 부끄러운 마음도 컸어요."
-10년간 작곡 저작권료 1위를 유지했습니다. 한 유튜버는 조영수 작곡가의 저작권료가 134억이라며 금액을 추산해 보기도 했어요. 창작자 입장에서는 명예이자 부담이겠습니다.
"지금은 BTS 하시는 작곡가가 1위죠(웃음). 순위가 공개되지 않을 땐 작곡가 중에 ‘누가 1등일까?’ 호기심만으로 즐거웠어요. 공식 발표 후엔 달라졌어요. 어쩔 수 없이 1위를 지키기 위해 매달리게 돼요. 한동안 미친 듯이 다작을 했고 2015년 경엔 깊은 슬럼프에 빠졌습니다."
잠시 안보여도 ‘한물 갔다'는 소리를 쉽게 듣는 대중 음악계. 그동안 슬럼프는 남의 일인 줄 알았다.
"건강을 잃고야 알았죠. 어머니가 심각한 뇌출혈로 쓰러지셨고, 아버지도 위암 3기로 고생하셨어요. 저는 공황장애까지 왔죠. 제가 가불한 행운으로 큰 시련이 덮치는 것 같아 괴로웠어요. 3~4년 동안 한 작업이 몇 곡이 안됐어요."
생산성은 전만 못하지만, 건강을 회복한 지금이야말로 더없이 행복하다고 했다. 한곡한곡 소중하게 작업하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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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궁금합니다. 세상에 노래 잘하는 사람은 정말 많아요. 그 많은 사람 중에 어떤 사람이 꿈을 이루고 어떤 사람이 대중의 환호를 받게 되나요?
"가수로 잘 된 친구들을 보니 공통점이 있어요. 기본적으로 좋은 욕심이 많아요. 솔로건 팀이건 적극적으로 자기 노래를 들려주려고 애쓴 친구들이 결국엔 다 잘 됐어요. 그런 친구들은 녹음실 구석에서라도 ‘들리도록’ 연습을 해요. "내 목소리를 들어주세요" 작게 절규하는 거죠. 사람 마음이 신기한 게, 그러면 신경이 쓰이고 파트 배정할 때 더 좋은 걸 주게 돼요.
튀려고 무리수를 쓰는 거랑은 달라요. 음악적으로 나를 좀 알아달라는 거죠. 자기 목소리를 들려줄 기회를 찾다 보면 실력도 늘고, 기회도 생겨요. 오디션에 나오는 친구들은 다 그런 힘이 있어요. 좋은 욕심이 없으면 실력이 있어도 성공을 못 해요. 남에게 들려주고 싶은 욕심, 누군가에게 칭찬을 들었을 때의 뿌듯함, 그런 경험이 계속 쌓여야 해요."
-당신은 재능있는 사람들의 좋은 스승이 되고자 했나요?
"남들이 못 본 가능성을 믿어주고 알려주려고 했어요. 이번에 ‘미스터 트롯'에 참가한 강태관이라는 친구는 저희 회사(넥스타 엔터테인먼트)로 데려왔어요. 다행히 오디션 와중에 제가 좋은 점수를 주지는 않았어요(웃음). 국악으로 전국 1등을 해서 군 면제까지 받았으니, 재능도 있고 노력도 한 거잖아요. 저는 그런 사람을 리스펙트해요. 지금은 미숙해 보여도 프로듀싱하면 멋지게 역전시킬 수 있다고 믿어요.
김호중 씨 같은 경우는 처음엔 노래 잘하는 성악도라고만 인지했어요. 그런데 점점 도전하는 모습을 보면서 팬심이 생겼어요. 마지막엔 ‘고맙소'라고 은사에게 바치는 노래를 했는데, 진심이 진하게 전해졌어요. 당장 잘 부르려는 것보다, 발전하고 싶어하는 마음, 인연을 고맙게 여기는 마음이 느껴져서 불쑥 말해버렸어요. "괜찮다면 가요계에서 감히 당신의 멘토가 되어주고 싶다"고(웃음)."
-어떤 작곡가를 존경했습니까?
"고 이영훈 작곡가요. 이문세 씨 노래 거의 전부를 쓰셨죠. 덕분에 클래식 피아노를 치다가 가요를 치게 됐어요. ‘옛사랑' 같은 노래는 지금도 가슴에 사무쳐요."
고 이영훈 작곡가는 생전에 조영수와 함께 음악 작업하길 원했다. 나중에 장례식장에서 그 이야기를 전해 듣고 아쉬움에 눈물을 쏟았다고 했다.
-어떤 노래가 명곡인가요?
"이문세의 ‘옛사랑'이나 유재하의 ‘사랑하기 때문에'는 50년 뒤, 100년 뒤에 들어도 질리지 않을 거예요. 심수봉의 ‘그때 그 사람'이나 ‘사랑밖엔 난 몰라' 같은 곡도 좋아해요. 여린 감성에 강력한 멜로디가 붙어서 감성은 처절한데, 울리진 않아요. 후벼파는 깊이가 까마득하게 깊어요."
자신의 곡은 이승철의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와 SG워너비의 ‘라라라' ‘내 사람'에 애착이 간다고 했다. 지금 조영수의 작곡 스펙트럼은 가요에만 머물지 않는다. 국제 IOC 위원회의 의뢰로 평창 올림픽의 시상식 배경음악 ‘티어스 오브 글로리(Tears of Glory)’를 작곡했고, 현대적인 사운드를 원하는 육군본부의 요청으로 ‘육군가’를 만들기도 했다.
공연계에서는 조영수의 곡으로 주크박스 뮤지컬을 만들 준비를 하고 있다. 이문세와 김광석처럼 가수가 아닌 작곡가 개인의 작품이 뮤지컬 레이블로 탄생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 정작 그는 엔리오 모리꼬네처럼 후대에 남을 위대한 영화 음악을 써보는 게 꿈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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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니 어떤 음악이 오래 살아 남았습니까?
"위로를 주는 음악이요. 슬프고 외로울 때 곁에서 울어주는 친구로, 음악만 한 게 또 있을까요. 좋은 음악은 최고의 위로고, 최고의 인연이예요. 제 음악도 그런 인연의 끈이 되길 간절히 바라고요."
-마지막으로 플레이어를 꿈꾸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조언을 부탁합니다.
"어떻게 해서든 용기를 내서 주변에 성과물을 보여주고 피드백을 받으세요. 나를 어필하는 노력이 연습 이상으로 실력을 끌어올려요. 세상에 보여줘야 기회가 생깁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선배 음악인들 밖에는 없었지만, 요즘엔 유튜브나 SNS 같은 통로가 많잖아요.
예술은 특히 음악은 답이 없어요. 내 곡이 좋다고 우쭐댈 것도 없어요. 왜 이 정도밖에는 안될까, 자책도 금물이죠. 일단은 많이 보여주고 평가를 받아야 해요. 그 과정에서 대중의 취향을 알 수 있어요. ‘미스터 트롯'을 하면서 정말 놀랐어요. 라운드를 거듭하고 피드백을 받을수록, 참가자들의 실력이 확확 올라갔어요. 자기를 내보이고 단점도 칭찬도 받다 보면 팔로워가 생겨요. 그렇게 점점 놀라운 인연들이 만들어지죠."
김지수 문화전문기자(kimjisu@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