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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수의 인터스텔라] “나는 유령 청소부입니다" 성자가 된 청소부, 김완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고독사 현장, 쓰레기집 치우는 특수 청소부 김완

"가난한 자들이 혼자 죽어… 고독사, 냄새로 온다"

"생전에 안부 묻고 건강 챙긴 이는, 가족 아닌 채권자"

"쓰레기집 의뢰, 여성 많아… 청소 후 자립 희망 가져"

"우울하면 화장실 청소해야… 결과 확실, 성취감 커"

조선비즈

특수 청소부 김완(하드웍스 대표). ‘죽은 자의 집 청소'라는 에세이를 펴냈다./사진=조인원 기자

‘죽은 사람이 오래 방치된 바닥은 으레 기름 막으로 덮여 있어서 미끄러지지 않도록 신경을 곤두세우고 걸어갑니다... 그 방이 바로 당신이 숨을 거둔 곳입니다… 오늘부터 나는 남겨진 흔적을 요령껏 지울 것입니다.’- 김완 에세이 ’죽은 자의 집 청소' 중에서


사람이 죽으면 박테리아가 증식하면서 온갖 장기가 부풀어 오른다. 풍선처럼 팽창하다가 복부가 터지며 온갖 액체를 몸 밖으로 쏟아낸다. 부패가 시작되면 창문과 벽을 넘어 복도와 골목까지 비극적인 냄새를 뿜어낸다. 무자비한 냄새는 관심을 끌어내고, 악취는 ‘컨트롤 제트'의 자비를 구한다. 특수 청소부 김완이 나서야 할 시간이다.


그를 만나기로 한 출판사 앞마당에 도착했다. 사진은 방독면을 쓰고 찍겠다는 전갈을 미리 받은 터였다. 운동선수를 연상시키는 건장한 근육에 찌르는듯한 눈빛을 지닌 사내가 초록 나무 아래 서 있었다. 한눈에 봐도 ‘미남’이었다. 손에는 내가 쓴 시에세이 ‘괜찮아 내가 시 읽어줄게'가 들려 있었다. 신발을 벗으며 그가 웃었다. "기자님이 쓰신 책에서 읽었어요. 이성복 시인이 그랬다죠. ‘시 쓰는 건 타인을 위해 신발을 바깥쪽으로 돌려놓는 행위’라고요."


도시엔 역병이 돌고 있지만, 공기는 더없이 깨끗했고 북촌 언덕에서 부는 바람에 이마가 시원했다. 우리는 오랫동안 시 이야기를 나눴다. 그래서였을까. 이후 그가 쏟아낸 ‘하드고어(Hardgore)한' 단어들, 이를테면 쓰레기와 핏자국, 외로움과 유품, 구더기, 똥 같은 단어들이 단정한 시어처럼 들렸다.


김완은 경찰과 유족, 건물주의 의뢰로 범죄와 고독사 현장, 쓰레기 집을 청소한다. 일본에 체류 중 대지진을 겪은 후 돌아와 특수청소업체 ‘하드웍스'를 차렸다. 자신을 몰래 집으로 들어가 ‘고통의 흔적을 지우는' 유령 청소부라고 했다.


그동안 나는 죽음 언저리에서 일하는 사람을 여럿 인터뷰해왔다. 사체를 부검하는 법의학자 유성호 교수, 미국의 장의사 케이틀린 도티, 그리고 지금 내 앞에 있는 김완. 손끝으로 죽음을 만져온 사람들의 눈빛엔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가 서려 있다. 서로를 향한 깊은 연대, 육체노동자로서의 강렬한 자부심, 자기와 타인에 대한 관대함, 홀로 죽은 자들에 대한 애틋함까지.


그가 쓴 책 ‘죽은 자의 집 청소’의 표지는 텅 빈 방이다. 벽면에는 제법 큰 사이즈의 창이 나 있고, 바닥에 ‘왠지 미안한' 기색이 느껴지는 작은 글씨가 늘어서 있다. ‘죽음 언저리에서 행하는 특별한 서비스’. 이 특별한 주인공들은 죽기 전까지 집안을 정돈했고, 전화로 자기 죽음의 견적을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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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과 청소에 관한 애틋한 시선이 담긴 ‘죽은 자의 집 청소'.

-텅 빈 집은 당신이 원하는 상태인가요?


"보통은 초배지 벽지가 시멘트에 간헐적으로 붙은 상태로 마감됩니다. 고독사 현장에는 패브릭, 원목 가구뿐 아니라 벽과 천장에도 피 냄새가 짙게 뱁니다. 천장을 뜯어내는 게 힘들어요. 30년 된 아파트는 벽지가 17장씩 붙어 있어요. 한 장 씩 뜯다 보면 집의 역사가 보이죠. 아이 키 높이, 색연필 낙서…"


-벽지는 집의 살갗이군요. 왜 굳이 다 벗겨냅니까?


"냄새 때문이에요."


-냄새요?


"네. 죽음은 냄새로 와서 냄새로 질기게 남아요. 오물 제거는 쉽습니다. 장판에 쏟아진 피는 닦으면 그만이죠. 냄새는 안 돼요. 신비롭다고나 할까요. 냄새가 나지 않아도 집의 기억이 있는 사람에겐 계속 나는 것 같죠. 고독사를 처음 발견한 사람… 관리사무소 직원, 경찰, 가족, 처음 문을 연 사람은 ‘환후(幻嗅)'에 시달리죠. 저도 작업 중에 계속 코를 헹궈요. 하지만 정서적으로 각인된 냄새는 쉽게 잊히지 않죠."


척추가 있는 포유류의 장기가 썩는 냄새는 대체로 유사하다고 했다. 문득 영화 ‘기생충'이 묘사한 ‘가난의 냄새'는 트럼프 가지고 화투 치는 걸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했다.


-회사 이름이 ‘하드웍스(HardWorks)입니다. 굳이 ‘힘든 일' ‘험한 일'이라고 지은 이유가 있는지요?


"이지웍스, 소프트웍스 라고 지으면 편했을까요(웃음). 회사 이름은 일의 본질을 담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일본에 체류했을 때 이런 류의 일을 처음 접했어요. 일본에선 먼 곳에서 돌아가신 부모님의 방과 유품을 정리해드리는 유품 관리사가 있죠. 우리나라는 꺼림칙한 공간, 오염 제거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고요."


-피를 닦고 구더기를 치우고… 작업 과정이 고된 수행처럼 느껴져요. 남이 꺼리는 일을 대신하면서 더 고귀해진다는 인상이 있습니다. 글을 읽으며 ‘성자가 된 청소부’라는 이미지가 떠올랐어요.


"(미소지으며)영어로 ‘언두잉(undoing, 원상복구)’이라고 표현해요. ‘컨트롤 제트(Ctrl+Z)’의 작업을 잘 수행할수록 성공적인 비즈니스입니다(웃음). 누구나 좋지 않은 기억에 시달리며 괴로워들 하죠. 저는 그것을 지워드리고요."


지구상의 모든 가정과 식당에서 일어나는 식탁 치우기와 자기 일이 근본적으로 같다고 했다. 세무서가 발행한 사업자등록증엔 이 사업의 업태를 ‘서비스'로 분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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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의 공정은 어떻습니까?


"경찰이 청소를 허가했나부터 물어요. 고독사는 변사에 해당하니 사건 종결을 확인하는 거죠. 방진 마스크, 방독 마스크, 수술용 글러브, 신발 덮개, 문 따는 장비를 챙겨서 가요. 오염원을 제거하고 몸에서 나온 액체 기름 막을 걷어낸 후, 이삿짐 싸듯 정리합니다. 벽지를 뜯고 소독으로 마무리하죠.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2~3일이 걸려요. 쓰레기 집은 보통 7~8t 정도가 나와요. 물 다 빼고 담아도 1.8ℓ 봉투가 몇백 개죠."


-지워도 지워지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요?


"시각적으로 강렬한 장면은 머리에 들어가 폴더처럼 쌓여요. 하지만 결국은 해결 되죠. 안되는 건 역시 냄새예요. 향수를 8개쯤 갖고 있어요. 침대 머리맡에도 향수가 있어요. 아내가 그러더군요. 마릴린 먼로도 아닌데 향수를 입고 자느냐고(웃음). (잠시 생각하다)죽음을 연상시키는 냄새는 다 싫습니다. 묵은지, 액젓, 차 안에서 쥐포 100마리쯤 구운 것 같은 그런 냄새들…"


-손끝에 남은 트라우마는 어떻게 하지요?


"피아노를 쳐요. 동요 없는 마음의 상태를 떠올리면서 건반을 두드립니다."


-왜 이 일을 선택했습니까?


"생존을 위해서요. 제겐 소중한 경제활동이에요."


-과거엔 무슨 일을 했지요?


"음악 잡지에 글을 썼고, 대필 작가를 했고, 영어 교재 만드는 출판사도 운영했습니다. 파주 함바 식당에서 배달도 했고 쇼핑 블로거도 했어요. 돈 되는 일은 다 했습니다."


-다른 꿈이 있었나요?


"청소년 시절 하굣길 좌판에서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를 사서 읽으면서 막연히 출판 관련 일을 하고 싶었어요. 대학에서 시를 전공했고 최승호 시인, 최승자 시인의 시를 좋아했습니다."


-8년째 일을 지속하는 데는 이유는 뭔가요?


"독특한 즐거움이 있어요. 기본적인 보람과 소중한 피드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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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로 가득찬 집./사진=김완

김완의 특수 청소 작업은 크게 4가지 범주로 나뉜다. 자살과 고독사 현장, 쓰레기 집, 범죄 현장, 고양이 등 동물 사체 청소. 고독사와 쓰레기 집은 깊이 연결돼 있다. 혼자서 우울증을 앓으면 쓰레기는 산처럼 쌓이고 거주자는 악취 속에 웅크리고 산다. 곤도 마리에가 설파한 ‘설레지 않으면 버리라'는 말은 허공 속에 메아리다. 아무 것도 통제할 수 없다는 무기력 상태에서 사람들은 마지막 순간에 그에게 SOS를 친다.


"저 좀 도와주세요!"


-누가 쓰레기 집을 만들지요?


"쓰레기 집으로 도움을 청하는 85%가 젊은 여성입니다. 처음엔 자기 집이 아니라고 하죠. 나중엔 비밀로 해달라고합니다. 저는 말해요. "누구나 엉망진창인 서랍이 있다"고요. 누구나 그럴 수 있어요. 쓰레기 집을 청소할 땐 의뢰인과 문자를 100통 나눠요. 오염된 쓰레기는 버리면 그만이에요. 쓰레기더미 속에서 돈, 노트북, 카메라, 명품가방까지 나오죠. 무엇을 버릴지, 무엇을 남길지 결정하는 건 결국 의뢰인의 몫이에요."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버립니까?


"처음엔 귀중품도 싹 다 버리라고도 하죠. 그러다 점점 버리지 말아 달라고 애원해요. 며칠 뒤엔 다시 찾을 수 없냐고 묻습니다. 가족이 의뢰할 때도 있어요. 저장강박증이 있는 어르신들은 끝없이 고물을 수집해서 쌓습니다. 그걸 버리면 어르신들은 자기 몸이 버려지는 것 같대요. 저는 몇 달이 걸려도 가족이 찬찬히 설득부터 하라고 해요. 반면 20대는 쓰레기를 치우고 나면 희망을 얻어요. 다시 시작하게 해줘서 감사하다는 거죠."


-죽은 집을 청소할 땐 무엇을 찾아달라고 하나요?


"등기권리증, 보험증서, 임대차 계약서, 사진 앨범, 육필 원고 같은 것들이죠. 아무것도 모르고 들어가도 그의 주변을 청소하다 보면 고인에 대한 정보가 생겨요. 먹던 약, 사진 앨범, 간식, 마지막까지 찾아보던 구인광고… 그의 처지와 심정을 알게 되는 되죠. 저는 늘 현장 사진을 찍어둡니다. 범죄 현장은 사건 정보가 담겨 있어 경찰청에 넘겨주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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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은 고인의 집에서 임대차 계약서, 보험증서, 육필 원고 등을 찾아달라고 한다.

-극단적인 선택을 한 이유는 거의 예외 없이 외로움과 돈이더군요.


"그렇습니다. 나이 든 남성은 경비직 이력서와 채무 관련된 문서들, 여성은 침대 매트리스에서 캐피탈 증서가 나오기도 해요. 차압 딱지 붙은 세간들, 우편함엔 체납고지서와 독촉장, 전기와 수도를 끊겠다는 예고장이 빼곡합니다."


어떤 이는 전기가 끊긴 날 제 목숨도 끊었다. 고인이 살아있기를 바라며 끝없이 안부를 물은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가족이 아니라 채권자였다. 사람들은 죽기 직전까지 ‘자기다움’을 고수했다. 전화로 미리 청소 견적을 물어보고 떠난 사람(‘죽었다 치고' 폐기물 비용을 물었다!), 착화탄으로 불을 붙이면서도 분리수거까지 완벽하게 마치고 떠난 사람도 있었다.


-마지막까지 정리정돈을 하려 했군요. 끝까지 폐 끼치지 않으려는 그 마음은 누구를 향한 걸까요?


"어떤 여성은 행어에 색깔별 길이별로 옷 정리까지 깔끔했어요. 싱글이었는데 그릇도 수저도 욕실용품도 두벌 씩 있었어요. 냉동실을 열어보니 쌍쌍바 하나가 남아있었죠. 그 풍경이 왜 그리도 마음이 아리던지요. 원룸 안에 캠핑 텐트를 치고 떠난 젊은이도 잊히지 않아요. 그 방에 놓인 책이 ‘아주 조금 울었다' ‘내 마음도 모르면서’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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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직전에 그에게 전화하는 이도 있다. "현장에서 "이 방법으로 죽으면 고통스럽냐?"고 물어요. 그럴 땐 어떻게든 전화 추적을 해서 경찰이 가닿도록 해요. 고통스럽지 않은 죽음은 없었다고 하면서요." 당시 구조된 사람이 보낸 문자메시지는 네 음절이었다. ‘나쁜시키'. 그는 서울시 고독사 자문위원이다.


-청소 의뢰는 주로 누가 합니까?


"유족이 50%, 건물주나 부동산 중개인이 하기도 해요. 고인이 왜 죽었는지, 저는 모릅니다. 착화탄이 있으면 자살, 혈액부패액이 있으면 심폐질환 등으로 짐작만 할 뿐이죠."


-집안 전체가 똥과 오줌으로 가득한 집도 있어서 놀랐습니다.


"투룸 집이었는데 침대 위까지 똥이 있었어요. 개 소변까지 더해져 암모니아 가스에 눈이 매웠죠. 똥과 오줌을 깨끗이 치워낼 때 특유의 해방감이 있어요. 방독마스크를 끼고 고무장갑을 낀 손으로 산처럼 쌓인 똥을 치워요. 새하얀 변기가 드러나고 물이 콸콸 소리를 내며 빠질 때, 형광등 벌레와 배수구 머리카락까지 싹 잡아내고 모든 게 원위치로 돌아갈 때, 감개가 무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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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트병에 오줌을 모아놓는 저장강박증도 있다./사진=김완

-우울할 땐 화장실 청소를 해보라고 권했죠?


"네. 확실히 효과가 있어요. 마음까지 개운해집니다."


-청소를 좋아하는군요!


"좋아해요. 잘하니까 더 자주 하고요. 청소는 루틴을 잘 지키면 돼요. 책상 정리라도 정기적으로 하면 좋죠. 집은 마음의 상태예요. 집을 비우면 마음도 가벼워지고 긍정 정서가 차오릅니다."


-시를 쓰고 피아노를 치는 손으로 동시에 쓰레기를 치우고 있습니다. 몸과 마음의 균형은 어떻게 챙기고 있나요?


"제 본질은 육체노동자예요. 매뉴얼 워커(manual worker). 손을 써서 일하는 사람이죠. 육체를 써서 일한다는 게 가장 큰 자부심이에요. 요즘엔 다큐멘터리 감독(정윤석 감독)이 저의 일상을 쫓으며 노동을 기록해요. 쓰레기 집을 청소하다 보면 알게 돼요. 움직임만큼 담을 수 있고 삽질한 만큼 치워지죠. 정직해요. 그 정직한 노동이 정말 좋아요.


감정노동에 기반한 육체노동자지만, 그 행위의 구체성이 참 좋습니다. 사무직 노동자는 점점 자기 일의 구체적 결과를 몰라요. 제 일은 결과가 눈에 확실히 보이고 피드백도("쓰레기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어요! 꼭 꿈을 꾼 것 같아요") 정확해요. 뭔가에 기여했다는 기쁨, 성취감이 정말 큽니다."


-누군가 해주길 간절히 바라던 일이니까요.


"그래서 쓰레기 집은 ‘단골'도 생겨요(웃음). 가끔은 일을 고사합니다. 직접 한번 해보라는 거죠. 제가 도와는 주겠다고요. 어떤 분은 스스로 반성문도 쓰고 ‘자립의 즐거움’을 배웠다고 해요. 열심히 살아보겠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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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히 가난한 자들이 혼자 죽는다는 말이 가슴을 찌르더군요. 금은보화에 둘러싸인 채 혼자 죽는 부자는 없다고요. 사실인가요?


"강남의 큰 아파트에서 고독사하신 분도 있었죠. 집값은 비싼지 몰라도, 내부는 낡은 형광등에 110V 변압기가 있었어요. 싱크대 위 서랍에 라면 몇 개만 달랑... 부유한 차림의 유족들과 대비되어 더 쓸쓸해 보였습니다. 껍데기만 부자, 알맹이는 가난했어요.


이상하게 축제 분위기가 나는 집도 있었습니다. 첫째, 둘째 아들, 딸들이 방문해서 쾌활하게 말을 붙이고 돌아갔어요. 돌아가신 분이 금방 발견됐거든요. 3개월, 6개월 지나면 힘들어져요."


-고귀하게 느껴지는 집도 있습니까?


"제겐 다 고귀해요. 쓰레기 집도, 피 흘린 집도. 떠난 고인도 남은 의뢰인도. 서로 긴 말이 없어요. ‘잘 부탁한다'고만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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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방. 일본에서는 언젠가부터 ‘고독사'를 감정을 배제한 ‘고립사'로 부른다./사진=김완.

-이 일을 하면서 바뀐 게 있습니까?


"과거를 심판하던 버릇이 없어졌어요. 나 자신에게 관대하고 여유로워졌죠. 죽음을 들여다보면 초연해지고 가벼워져요. 20대 때는 입신양명의 뜻이 있었지만, 지금은 문필가로서의 욕망도 버렸습니다(웃음)."


-자기를 누구라고 소개합니까?


"의뢰인은 이웃에 제 존재가 드러나지 않기를 바래요. 소문 나면 안되니까요. 여러 개의 가짜 명함, 가짜 안내문을 가지고 다닙니다. 죽은 자의 아파트나 원룸에 들어갈 땐 인테리어 업자가 됩니다. 쓰레기 집을 치울 땐 옷을 수거하는 ‘헌 집 삼촌’이 되죠. 연기자가 다 됐어요(웃음). 제가 사는 아파트의 경비 아저씨, 제 친구들조차 저를 출판사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압니다."


-유령 청소부로군요.


"맞습니다. 유령 청소부. 생각해보면 글을 쓸 때도 저는 유령 작가였어요."


-무엇이 선명하게 남습니까?


"텅 빈 집이요. 종결의 쾌감이요. 옷에 배인 냄새요. 냄새 때문에 식당에서 거절당하기도 하지만, 나의 본질에 대한 거부가 아니기에 괜찮습니다. 감사의 문자도 선명합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웠는데 집을 비우고 나니 살길이 생기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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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참혹한 현장을 피하고 싶지는 않습니까?


"아니요. 저는 공포 영화도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봅니다. ‘워킹데드' 시리즈나 ‘킹덤', 영화 ‘곡성'도 ‘현장 재현을 참 잘했네' 감탄하면서 보죠(웃음). 죽음의 현장엔 작은 생명체가 가득해요. 처음엔 구더기도 징그러웠는데, 가만 보면 신기하고 재밌습니다. 혐오의 눈으로 보니 끔찍한 거죠. 견디기 힘든 건 감정이에요. 착화탄 재, 바람에 흔들리는 줄… 이런 걸 보면 마음이 동요됩니다."


-어떻게 추스르나요?


"기록을 하고 명상을 합니다."


-겪어보니 쓰레기란 뭐지요?


"쓰레기 집을 청소하다 보면 알게 돼요. 버리기로 결정하지 않으면 쓰레기가 아니에요. 집주인이 버리고 싶어도 세입자가 원치 않으면 치울 수 없죠. 쓰레기 산꼭대기에서 은박 매트를 펴고 자는 분도 있어요. 나가는 모습을 보니 단정하게 차려입었어요. 복잡한 문제예요.


초등학교 교사인데 방 하나를 쓰레기장으로 만들고 그 안에서 구체 관절 인형을 찾아달라고도 해요. 몸에서 나온 오줌을 버리지 못하고 페트병에 숙성시켜서 산처럼 쌓은 분도 있죠. 열면 샴페인처럼 ‘펑’ 하고 튀어요. 이해 불가의 쓰레기를 수습할 때면, 그걸 치우는 나는 누구인가,하는 의문도 들어요.


그분들을 이해하기 위해 구글링을 해보니 서구엔 그 증상의 이름이 있더군요. 국내 정신분석학회에선 보고가 안 됐다고 해요. 고립된 1인 가구가 많아질수록 쓰레기에 대한 더 많은 연구가 절실합니다."


어쩌면 유기물이 돌고 돌듯, 인간이 만든 폐기물도 공간을 바꿔서 계속 이 지구를 떠돌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기 삶을 컨트롤하지 못한 처벌로 스스로를 ‘쓰레기’로 단죄하고 폐기하는 것보다, 통제불능을 인정하고 도움을 요청하는게 더 나을 지도 모른다. 쓰레기와 더불어 서로 냄새 피우며 사는 게 더 나을 지도 모른다.


-깨끗하다는 건 뭘까요?


"거리낌이 없는 상태. 임무를 완수하고 더 할 일이 없다고 느껴지는 상태겠지요."


-마음도 함께 비워지나요?


"의식을 깨끗하게 비운다는 게, 과연 가능할까요? 하지만 계속 연습합니다. 연습하다 보면 과거의 과오도 조금씩 허물어져요."


-외롭지는 않습니까?


"함께 일하다 도망가는 사람도 많아요(웃음). 해병대 나왔다고, 냄새엔 자신 있다고, 현장에 나왔다 3일 만에 잠수탑니다. 괜찮습니다. 다정한 배우자 덕에 외로울 시간이 없어요. 집에선 고양이가 다가와 말을 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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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당신의 직업을 통해 우리 사회에 당부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습니까?


"자기 자신에게 가혹하지 말았으면 해요. 돈이 없어도 꿈을 못 이뤘어도, 자기를 좀 더 용서하고 친절하게 대해주세요. ‘열심히 살고 있었나?' 자책하지 않아도 될 만큼, 잘살고 있어요. 부디 자기 자신과 잘 지내세요. (침묵하다)죽음의 현장에서 제가 봤던 건 엄청난 고통의 흔적이었어요. 정부에도 부탁합니다. 제발 전기와 수도는 끊지 않았으면 합니다. 누군가에겐 생명줄이에요."


김지수 문화전문기자(kimjisu@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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