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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고 있음을 알리는 가장 간단한 방법

내가 당신과

2014년 4월 16일. 이날 아침 인천에서 제주로 향하던 세월호가 진도 인근에서 침몰하면서 295명이 사망하고 9명이 실종됐다. 이후 2년이 넘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이 대형참사는 어느새 정치적 이슈로 둔갑했고 누군가 '세월호'라는 단어를 입 밖에 내기만 해도 좌파냐는 질문을 받아야만 하는 이상한 세상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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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CC via 참여연대 / flickr.com

그렇게 이 사건이 사람들 머릿속에서 흐려지는 동안에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그 날의 의혹을 밝히기 위해 외롭게 싸워왔을 유가족들. 이들을 응원하기 위해 많은 시민들은 옷깃이나 가방 등에 노란 리본을 달기 시작했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를 알아볼 수 있도록 일종의 상징과 신호를 만든 것이다. 노란 리본은 잊지 않겠다는 다짐이자, 나도 당신과 함께 있다는 메시지다. 신호를 나눈 사람들은 벽을 허물고 마음의 짐을 나눈다. 연대와 지지는 이렇게 형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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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CC via miriam / flickr.com

이렇게 일종의 신호로 희망을 이야기하는 사례가 또 있다. 최근 미국에서는 옷깃에 안전핀(Safety Pin, 우리나라로 치면 옷핀이다)을 단 사람들의 인증사진이 SNS를 통해 빠르게 번지고 있다. 사진에는 #SafetyPin 이라는 해시태그가 같이 달린다. 안전핀 달기 운동은 사실 지난 6월 영국의 브렉시트 후폭풍으로 생긴 제노포비아(외국인 혐오) 현상을 가라앉히기 위해 영국인들이 처음으로 시작한 운동이다. 미국에서 벌어진 캠페인 또한 이민자, 유색인, 여성, 성 소수자, 특정 종교인에 대한 혐오 발언을 서슴지 않았던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대통령으로 선출되면서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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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CC via Mike Licht / flickr.com

실제로 트럼프 당선 이후 미국은 거리에 백인우월주의 집단인 KKK 단이 등장하고, 백인과 흑인이 서로를 린치하는 사건이 벌어지는가 하면 반트럼프 시위 또한 곳곳에서 일어나는 등 혼란스러운 시국을 맞고 있다. 혐오가 미국 내 최대 이슈로 떠오르면서 '내 옆에 있는 사람 또한 믿을 수 없다'는 사회적 불안과 위기감이 고조되는 것은 당연지사다.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 뉴저지에서 트럭 운전을 하는 50대 미국인 Robert는 이 캠페인이 약자들에게 보내는 응원일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도 끊임없이 이 문제에 대해 상기시키는 하나의 장치가 된다고 말한다. 브루클린에 거주하는 필리핀인 Kaye는 미국에 사는 수많은 이민자 중 한 명으로서 이 캠페인을 통해 마음속 깊은 울림을 느꼈다며 감사를 표했다. 미국인들은 이 캠페인을 통해 사회 약자들에게 '당신은 나와 함께 안전할 것이다(You are safe with me)'라는 메시지를 보내며 혼란을 이겨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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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CC via katiehousleystationery / instagram.com

한편, 미국에서 시작해 벌써 세계적인 트렌드로 자리 잡은 상징도 있다. 바로 ‘세미콜론’이다. 세미콜론은 저자가 문장을 끝낼 수 있음에도 끝내지 않기를 선택할 때 사용되는 문장부호다. 주로 타투로 몸에 새기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심심찮게 만나볼 수 있을 정도로 유행이다. 세미콜론 타투는 우울증, 자살, 중독, 자해와 싸우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사랑을 주려는 비영리 운동 ‘프로젝트 세미콜론(Project Semicolon)’이 2013년 처음으로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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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세미콜론의 창립자인 에이미 블루엘은 어린 시절부터 강간, 따돌림 등으로 인한 우울증과 자해, 약물중독 등으로 고통을 받아왔다. 에이미가 18살이 되던 해에 그녀의 아버지가 자살했고 이는 자신이 경험한 어떤 것보다 가장 큰 고통이었다고 회고한다. 이후 에이미는 아버지를 기리는 의미로 처음 자신의 몸에 세미콜론 타투를 새기고 비슷한 일을 겪는 다른 사람들을 돕고 이끄는 일에 나서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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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저자고, 문장은 당신의 인생이다. 당신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뜻을 담은 이 프로젝트는 자신의 내면과 끊임없이 싸워야 하는 사람들에게 끝까지 포기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던져준다. 실제로 세미콜론 프로젝트를 접한 많은 사람들은 SNS에 자신의 이야기를 공유하며 서로에게 큰 힘이 되어주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배신당한 후 깊은 우울증에 빠져있던 Tricia는 이 프로젝트를 보며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스스로 강한 사람이 됐다고 소감을 남겼다. 그녀는 지금 새로운 인연을 만나 진정한 행복을 알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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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옆에 내가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방법은 이렇게 간단하다. 문제가 어려워 보인다고 눈 감거나 등 돌리지 말고 아기자기하고 비밀스럽게 신호를 보내보자. 누구나 힘들고 지치는 순간이 온다. 그럴 때 누군가 어쭙잖은 위로를 던지거나 쓴소리로 조언하기보다 그냥 가만히 옆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되지 않던가.


혐오와 우울에서 자유롭지 않은 우리나라에서도 거리에 더 많은 사람들이 안전핀을 달고 나와주기를, 누군가의 귀밑 혹은 손목에서 세미콜론 모양을 볼 수 있길 바란다. 그래서 언젠가는 연대를 확인하기 위해 신호를 찾아야 하는 사회가 아니라, 모두가 서로를 존중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세상이 올 거라는 희망과 함께.

 

Images courtesy of Project Semicolon 


글. 성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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