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출사표는 던져졌다 이제는 '기적'을 만날 차례

짧게나마 ‘밴드’라는 이름의 활동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겨우 두 곡의 합주를 했을 뿐이지만. 여름에서 겨울까지 6개월 남짓한 시간이 나에게 남긴 건 화려한 연주법이나 코드가 아니라 기껏해야 베이스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 정도였다. 그때까진 몰랐다. 베이스와 기타는 비슷하게 생겼는데 어느 게 기타 소리이고 어느 게 베이스 음인지. 내 눈앞에서 누군가 실제로 연주를 하는 모습을 보고서야 겨우 아래로 아래로 낮게 깔려 울리는 그 소리가 감미롭다고 느낄 수 있었다.
출사표는 던져졌다 이제는 '기적'을

한국의 보물을 노래하다,비단

여성 5인조 창작 국악 밴드 비단의 두 번째 앨범 ‘만월의 기적’을 처음 들었을 때 내 안에 든 생각은 역시 이건 무슨 악기가 내는 소리일까?였다. 초중고 합쳐서 12년. 매번 음악 시간마다 분명 가야금은 12줄, 거문고는 6줄이란 사실을 배웠지만 실제로 그 두 악기가 내는 소리가 어떻게 다른진 모른다. 특별활동 시간을 포함해 장구나 단소를 배우기도 했지만, 교과서에 나온 악보 외에 실제 악기로 연주하는 곡을 들어본 기억은 없다. 분명 국악은 우리의 전통음악인데 어째서 우리와 국악은 저 멀리 아프리카 전통음악을 보고 듣는 것 마냥 데면데면한 사이인 걸까.

퓨전국악콘텐츠를 제작하는 사회적기업 ‘케이앤아츠’가 반가운 이유는 그들이 조금이라도 국악에 가깝게 다가갈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케이앤아츠는 단순히 퓨전 국악 공연만을 선보이는 회사가 아니다. ‘전통유산의 사회적 경제가치 창출’을 목표로 한국의 역사와 전통, 전통 유산, 문화재 등을 사람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소개할 것인가 고민한다. 그들이 노래하는 주제는 단순한 사랑이나 이별이 아니다. 우리의 것, 우리의 이야기, 우리의 노래를 고민하기에 비단 앞에는 ‘한국의 보물을 노래하다’는 슬로건이 함께 한다. 고민의 흔적은 수록곡의 2집 수록곡의 전면에서도 드러난다. 첫 번째 앨범 ‘출사표’에서는 춘향전이나 훈민정음, 이순신과 같은 우리에게 익숙한 이야기를 소재로 삼았다면 2집에서는 조선백자, 한식과 불교 등으로 그 농도가 한층 더 짙어졌다.

먼저 첫 번째 수록곡인 ‘달’은 곡 전반에 울려 퍼지는 가냘프지만 힘 있는 대금의 선율을 통해 가사보다도 더 간절하게 왕비로 환생하고서도 아버지를 걱정하는 심청이의 마음을 전달했다. 한국의 불교를 노래한 ‘열반의 주문’에서는 간간이 들리는 목탁 소리와 코러스로 가미된 판소리로 극적 긴장감을 한껏 고조시켰으며 연주곡인 ‘하늘소리’에서는 가야금과 대금, 해금, 모듬북과 꽹과리 음을 한층 더 선명하게 들을 수 있다. 여기에 마지막 곡인 ‘달빛의 왈츠’는 피아노 선율까지 가미되어 동서양의 융합을 이뤄냈다.

비단 2집 타이틀곡 '만월의 기적' MV

앨범의 백미라 할 수 있는 타이틀곡 ‘만월의 기적’은 조선백자를 소재로 정유재란 당시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 시대 최초의 여성 사기그릇 장인 ‘백파선’의 사연을 담고 있다. 고국을 그리워하는 간절한 마음이 담긴 가사와 함께 ‘달항아리’의 제작 전 과정이 담긴 뮤직비디오에서는 30인조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을 통해 한층 더 풍성한 사운드를 선사한다. 한국 음악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이 날로 높아지고 있는 요즘, 뮤직비디오라는 콘텐츠 안에 음악 이상의 보물을 담아 노래하는 것이다. 비단의 모든 곡은 해당 전통 유산을 소개하는 다큐멘터리와 함께 영어, 중국어, 불어, 스페인어 등 총 8개국어로 제작되어 전 세계에 홍보되고 있으며 유튜브에서 만날 수 있다. 제3기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을 거쳐 2014년 스타사회적기업가에 선정된 케이앤아츠의 지나온 발자취와 앞으로의 방향성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베네핏이 진행한 김기범 대표의 인터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문학평론가이자 고려대 명예교수인 황현산 선생은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말은 ‘자기 동네의 생각을 세계 모든 사람이 이해할 수 있게 하라는 말이지, 세계 모든 사람이 자기 동네 사람처럼 생각하게 하라는 말이 아니’라고 했다. 일평생 수많은 책을 번역하고 가르치는 동안에 나온 그의 깨달음이 담긴 말을 되새겨 볼 때, 자연스레 한국의 보물을 노래하는 비단의 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다.

에디터 이은수
오늘의 실시간
BEST
benefit
채널명
베네핏
소개글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는 미디어, 베네핏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