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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랑이 시상식에서 트로피를 팔아야만 했던 이유

지난 2월 28일, 서울 구로구 구로아트밸리 예술극장에서 제14회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이 열렸다. 다양한 팀이 상을 받으며 기쁨을 나누는 이 자리에서, (아마) 시상식 역사상 가장 흥미로운 장면이 연출됐다. 바로 2016년 발매한 앨범 '신의 놀이'로 최우수 포크 노래상을 수상한 이랑의 '트로피 즉석 경매'다.

진짜다. 그녀는 수상자로 호명된 후 단상에 올라 경매를 부치기 전 먼저 수상 소감을 이렇게 전했다.

"오늘 트위터에도 썼는데 제가 1월에 수입이 42만 원이더라고요. 음원 수익이 아니라 전체 수입이 42만 원이고. 2월에는 조금 더 감사하게 96만 원이더라고요. 그래서 이렇게 어렵게 아티스트 생활을 하고 있으니까 여러분들이 상금을 주시면 감사하겠는데. 상금이 없기 때문에 제가 이걸 팔아야 될 거 같습니다."

이랑은 트로피의 디자인을 차근차근 설명했고, 자신의 월세인 50만 원으로 경매를 시작했다. 트로피는 현장에서 바로 50만 원에 낙찰되었다. 즉석에서 직거래에 성공한 이랑은, 기쁜 표정으로 손에 50만 원을 들고 '명예와 돈을 얻어서 돌아간다, 다들 잘 먹고 잘사시라'고 덕담을 건넨 후 무대 아래로 내려왔다.

이랑이 시상식에서 트로피를 팔아야만

실시간으로 중계된 이 해프닝을 보고 '아티스트의 어려움을 알리는 하나의 퍼포먼스'라는 시각과 '아무리 그래도 현장에서 트로피를 파는 것은 무례했다'는 평이 오갔다. 하지만 대체로 그녀가 이 트로피를 팔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는 다들 고개를 끄덕이는 분위기다. 왜곡된 음원 수익 배분 구조 문제다.

 

수상 소감에서 밝힌 것처럼, 그녀는 시상식이 있기 전 본인의 트위터에 아티스트로 버는 수입을 공개해 한차례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42만 원과 96만 원. 사실 이랑은 인디뮤지션이긴 하지만 ‘신의 놀이'로 이미 평단의 주목을 받은 바 있고, 다양한 공연이나 강연을 다니며 활발히 활동했다. 본인이 밝힌 것처럼 미친 듯이 일만 했는데도 한 달에 백만 원도 안되는 수입으로 먹고살아야 한다면, 누구라도 문제를 제기하고 싶을 것이다.

이랑이 시상식에서 트로피를 팔아야만

실제로 2012년 청년유니온이 시행한 '청년뮤지션 생활 환경 실태 조사'에 따르면 인디 뮤지션들의 월 고정 수입은 평균 69만 원이다. 그마저도 뮤지션 중 48%가 음악 활동을 통해 버는 수입은 전체 수입 중 10% 미만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음악만 해서는 돈을 벌 수 없다는 소리다. 게다가 음악 외 별도 경제활동 역시 52%가량이 강습과 파트타임 노동 등 불안정 노동에 종사하고 있다.

 

뮤지션들이 이렇게 불안정한 상황에 내몰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음원 수익 분배 구조가 심각하게 왜곡되어 있기 때문이다. 문체부가 2013년 법으로 정한 저작권료 분배 비율에 따르면 현재 저작권료 중 유통사가 가져가는 비율이 40%, 제작사 44%, 저작권자 10%, 실연자 6%로 되어있다. 노래 1곡당 저작권료가 7.2원인데, 실제로 노래를 만든 당사자는 0.72원밖에 못 가져 가는 것이다. 이마저도 세션을 도와주는 연주자나 코러스의 몫을 제하고 나면 실제 뮤지션에게 돌아가는 수익은 0.21원 정도로, 노래 1곡당 5번 스트리밍이 되어야 겨우 100원을 번다.

이랑이 시상식에서 트로피를 팔아야만

(모 음원 유통사의 이용권 할인 화면)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음원을 유통하는 대부분 서비스 업체(멜론, 벅스 등)는 '묶음형 할인 상품'을 제공한다. 월정액제 스트리밍, 다운로드 서비스가 그렇다. 소비자는 어떻게든 싼값에 노래를 듣기 위해 다양한 상품을 활용하지만, 이면에는 이로 인해 떨어진 저작권료로 고통받는 창작자가 존재하는 것이다. 수익 분배 구조가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선결과제이지만, 콘텐츠의 가치를 대하는 우리의 인식 역시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문체부는 이러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음원 전송사용료 개선방안’을 발표했지만, 스트리밍 중심의 음원 유통구조를 무시하고 다운로드 수익 분배 비율 조정에 무게를 둬 별 실효성은 없는 상황이다. 또 대형 유통사 중심의 수익 구조를 타파하고, 음악 생태계 복원을 위해 탄생한 신대철의 바른음원협동조합의 활동 역시 아직 미진해 보인다.

이랑이 시상식에서 트로피를 팔아야만

같은 날 'moves'로 최우수 일렉트로닉 음반을 수상한 키라라는 자신의 노래를 ‘알바하면서 만든 곡, 혼자 작업실도 없이 노트북 하나 들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만든 노래’라고 소개하며, 친구들이 자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로 수상 소감을 남겼다. 키라라 역시 수상 이후 SNS를 통해 통장 잔고가 ‘2만 7천 원'이라고 전해 인디 뮤지션들이 처한 웃픈 현실을 그대로 드러냈다.

 

유통사와 창작자 간 음원 수익 분배 구조가 개선되지 않으면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대중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좋은 음악을 하는 예술가가 생계를 유지할 수 없어 자신의 길을 포기하고, 우리 대중문화가 대형 기획사 위주의 콘텐츠로만 가득 차게 된다면 얼마나 끔찍할까.

 

시상식 이후 계속해서 창작자의 생계 이슈가 회자되고 있는 것을 보면, 이랑의 퍼포먼스야말로 사회문제를 예민하게 포착하고 이를 드러내는 예술가의 역할을 제대로 증명한 게 아닐까 싶다. 그녀의 이번 트로피 경매는 하나의 해프닝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이 문제를 해결하는 도화선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도 밥 딜런 처럼 노래로 시를 쓰는 음악가를 더 많이 만날 수 있을 것이다.

 

Images captured from 이랑의 트위터

 

에디터 성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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