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껴지는 당신을 위한 작은 위로
‘깊고 깊은 바다 아래에 가라앉은 기분.’ - 우엉
‘이미 소멸하고 있는 점으로 내가 빨려드는 것 같은 기분. - K
‘나는 나 자신이 이미 활활 타버려 더는 어찌할 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은, ‘나는 더는 쓸모없는 존재야’라는 생각이다.’ - V
살면서 한 번도 우울하다는 감정을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나이가 적든 많든 우리는 때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그 감정이 어떻게 손을 쓸 수 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질 때, 우리는 ‘우울증’이란 병명을 붙인다.
국내 우울증 환자는 매년 증가하는 추세로, 13년째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오명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다. 감기처럼 불쑥 찾아오는 마음의 병 우울증. 이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해결하는 방법은 없을까?
2016년 말 출간된 독립출판물 <아무것도 할 수 있는>은 전문 의료서적은 아니지만, 우울을 겪은 사람들의 수기를 한 곳에 모아 작게나마 문제 해결을 시도 중이다. 예상 독자는 우울증 환자보다는 그들의 주변 사람으로 이 책을 통해 우울증을 조금이나마 더 이해하도록 돕고자 한다.
책은 20여 명의 사람들에게 처음 우울을 느낀 건 언제였는지, 그때 한 생각은 무엇이었고 어떤 말을 듣고 싶었는지 또 듣기 싫은 말은 무엇이었는지 묻는다. 그 답을 추리고 다듬어 책으로 엮어낸 프리랜서 기획자 겸 디자이너 김현경 씨. 자신도 한때 우울증을 겪었다 말하는 그녀를 만나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Q. 책이 무척 예쁘다. 처음 제작을 결심한 계기는 무엇인가?
A. 내가 우울증을 겪었을 때 주위 친구들이 걱정도 해주고 이런저런 책이나 이야기를 추천해줬다. 이겨내는 방법, 생각의 전환 같은 내용이 대부분이었는데 못 읽겠더라. 약간은 폭력적으로 느껴지기도 했고. 또 당시 나의 감정이나 상태를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어도 있는 그대로 전하는 게 어려웠다. 상담과 약물치료를 거치며 여유가 생긴 후 그때를 돌아보니, 우울이라는 감정 그대로를 실은 책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텀블벅에 프로젝트를 올렸고 이야기를 보내줄 사람들을 모집했다.
Q. 제작 과정에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A. 사람들이 이 책을 보고 우울증 환자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주변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들을 좀 더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래서 처음 생각한 것도 ‘그날의 말’이란 파트다.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말을 듣고 싶었고 듣고 싶지 않았고 상처가 된 말은 무엇이었는지 모아두었다. 그 이야기를 읽어보며 우울증을 겪는 가족이나 친구에게 어떤 말을 하고 행동을 할지 힌트를 얻길 바랐다.
Q. 본인이 우울증을 겪을 당시 듣고 싶은 말과 듣고 싶지 않은 말은 무엇이었나?
A. ‘괜찮다’는 말이 듣고 싶었다. 당시 졸업을 앞두고 졸업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스트레스가 심했다. 항상 주위 교수님이나 부모님들은 더 잘해야 한다, 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고 그게 부담으로 작용했던 것 같다. 그런데 상담사 선생님은 나에게 괜찮다고 말해주셨다. 별 게 아닌 말일 수 있지만, 나로서는 처음 듣는 말이었다. 듣기 싫었던 말은 ‘네가 진짜 우울증이야?’ 같은 이야기. 누구나 다 그런 것 아니냐, 너만 특별하냐 병이 실재하기는 하냐 같은 이야기들이 제일 힘들었다.
Q. 수기가 중심이지만, 장마다 전문가 등의 이야기도 덧붙여졌다. 구성 과정이 어떻게 되나?
A. 있는 그대로의 이야기를 담고 싶은 게 시작점이었지만, 그렇게만 가면 영양가 없는 책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모바일 심리상담 서비스인 ‘소울링’이나 자살 예방을 위한 사회복지 법인 ‘생명의 전화’ 등의 인터뷰를 담았다. 전문가분들이 말해주는 우울증과 극복을 위한 추천 방법 등을 무겁지 않게 담고 싶었다. 또 전문적인 지침이 아니더라도 책이나 영화를 보는 것도 사람들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수기를 써주신 분들이 추천해주신 위로의 책이나 영화, 음악 등의 소개도 함께 담았다. 이외에도 싱어송라이터 홍재목 님이나 일러스트 제작으로 함께해준 전인범 님도 자신이 겪은 우울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Q. 책이 출간된 지 이제 2달 정도 지났다. 독자들의 반응은 어떤가?
A. 많은 후기를 받았다. 그중 한 사회복지사분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병원에서 일하시는데 우울증 환자들의 말이나 행동을 이해하고 싶어서 책을 많이 찾아봤는데,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고 하시더라. 그런데 <아무것도 할 수 있는>으로 환자들의 있는 그대로의 이야기를 있어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씀해주셨다. 또 지인의 친구분이 심한 우울증을 앓던 동생에게 이 책을 선물해줬다고 한다. 동생분이 평소 방에서 나오지도 않고 말도 거의 하지 않았는데, 이 책을 읽고는 서로 이야기하는 시간이 늘어났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책이 매개가 된 셈이다.
Q. 책에 담은 이야기에 덧붙여 추가로 전하고 싶은 말이 있나?
A. 요즘 사람들을 보면 공감이 부족한 것 같다. 많은 사람이 타인의 힘듦이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고 쉽게 말한다는 생각이 든다. 좀 더 다른 사람들을 생각해보고 배려하는, 그런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나는 디자인이란 어떤 문제 해결에 대한 답이라고 배웠다. 이 책도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의 작은 해결책이 되길 바란다.
<아무것도 할 수 있는>은 제작비를 제외한 판매 수익이 전액 ‘생명의 전화’에 기부된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엮은 책인만큼 그 수익을 자신이 가지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는 현경 씨. 익명의 목소리들이 모인 그 위로가 꼭 필요한 사람에게 가 닿기를. 그래서 문득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 때, 그 자리에 다시 할 수 있다는 마음이 피어나는 모습을 그려본다.
Images courtesy of <아무것도 할 수 있는>
에디터 이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