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끝으로 보는 스마트한 세상
암스테르담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장편 경쟁부문 대상을 수상한 <달팽이의 별>에는 한 연인이 나온다. 주인공인 영찬씨는 어렸을 때 앓았던 심한 열병으로 시각과 청각을 잃는다. 그의 연인이자 아내인 순희씨가 영찬씨의 눈과 귀가 되어주기는 하지만 일거수일투족을 함께할 수 없기에 영찬씨는 주로 촉각을 이용해 소통한다. <달팽이의 별>을 제작한 이승준 감독은 두 사람의 사랑이 우주에서 가장 오래도록 빛날 것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일상 생활에서 영찬씨가 겪어야되는 구체적인 불편함은 피해갈 수 없다. 우리 사회는 영찬씨와 같은 이들을 시각, 청각 장애인이라 부른다.
WHO(세계보건기구) 통계에 따르면 세계 시각장애인 수는 2억 8,500만 명이다. 국내 시각 장애인 수는 미등록까지 합치면 약 30만 명. 이 중 앞을 거의 볼 수 없는 1~3급 중증 장애인 수는 4만~5만 명이다.
시각 장애가 있는 이들은 다른 감각을 이용해 정보를 습득할 수 밖에 없다. 보통은 시각장애인용 문자인 점자를 바로 떠올리지만 점자를 활용할 수 있는 이들은 10% 미만이다. 점자를 배워도 쓸 데가 없다는 점과 점자를 배우기 위한 기기의 가격이 매우 높다는 점 때문에 시각장애인 중 90% 이상이 점자를 읽고 쓰지 못한다. 또한, 점자책의 보급률도 1% 정도에 불과하며 점자 리더기는 한 대에 200만 원을 웃도는 선으로 가격이 높고 부피가 커 쉽게 구매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정보화 시대의 정보 습득은 생산성과 긴밀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현대 사회에서 정보격차는 중요한 사회문제로 작용한다. 낮은 점자책 보급률과 높은 점맹률은 시각장애인의 정보격차를 더욱 높히는 요소로 작용한다.
시각장애인의 점맹률을 낮추고 장소와 관계없이 텍스트를 읽을 수 있도록 작동하는 스마트워치가 있다. 한국인 유학생 김주윤씨가 만든 스타트업인 ‘닷dot’의 점자 스마트워치다.
닷의 점자 스마트워치는 시각장애인들이 언제 어디서나 문자 메시지나 트위터와 같은 다양한 텍스트를 읽을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이외에도 시계, 알람, 네비게이션, 블루투스 기능을 포함하고 있다. 작동방식을 좀 더 세부적으로 살펴보자. 닷의 점자 스마트워치는 점자 정보 단말기에 쓰이는 단가가 높은 세라믹 판 대신 마그네틱을 사용했다. 점자 정보 단말기는 전기자극에 의해 세라믹 판이 구부러지는 원리를 이용해 돌기를 표현한다. 닷의 점자 모듈은 ‘네오디뮴’이라는 자석을 사용하여 그 위에 코일을 장치하고 전기 신호에 따라 돌기를 조절하는 방식이다. 시계처럼 착용할 수 있도록 크기를 줄였다. 닷은 스마트폰과 저전력 근거리 무선통신 기술 중 하나인 ’블루투스LE’를 연동해 기기에 도착한 문자 메시지를 닷의 점자로 변환해 읽을 수 있다. 닷의 핵심기능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3가지이다. 시간 표시, 블루투스로 스마트폰과 연동해 점자로 정보를 받아보는 것, 시각장애인들의 메모장인 마이크이다.
닷의 점자 스마트워치는 크게 두 가지 목표를 갖고 있다. 점자리더기의 기능을 가진 스마트워치의 가격을 최대한 낮추고 웨어러블 스마트기기를 사용하며 점자에 대한 접근성을 높여 점맹률을 낮추는 것이다. 점자 스마트워치는 올해 하반기 출시 예정이며 11월 중 미국에서 먼저 30만원 대 수준으로 판매할 예정이다. 그러나 최종 목표 금액은 10만~15만원 대다.
읽고 쓰는 행위는 개인의 주체성 형성에 있어 중요한 요소이다. 시각장애인이 사회적 주체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다양한 텍스트를 읽은 뒤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헬렌 켈러도 “점자는 문명사적 관점에서 볼 때 문자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고 말했다. 변방에 머물며 자신의 소리를 내기 어려웠던 이들이 주체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기술이야말로 인간성의 진보를 담은 진정한 기술혁신이 아닐까?
사진 출처 <달팽이의 별> / '닷dot’ http://dotincorp.com 제공
동영상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zmpl81WmFSo
에디터 이수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