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이 사람이 당신의 옷을 만들었다
'오늘 뭐 입지?'
대부분의 사람이 매일 아침 옷장 문을 열 때마다 하는 생각이다. 그런데 오늘은 이 질문을 이렇게 한번 바꿔 보자.
'이 옷은 누가 만들었을까?'
우리가 가게에 들러 무심코 쇼핑하는 옷은 저절로 만들어진 게 아니다. 옷 뒤에 붙은 라벨을 보면 알겠지만, 인도, 중국,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등 다양한 나라에서 옷이 들어온다. 그럼 이 나라에서 생산되는 옷은 그냥 기계가 뚝딱 하고 만드는 걸까? 아니다. 다 사람이 만든다. 우리처럼 누군가 불러줄 이름이 있고, 지켜야 할 가족이 있고, 이루고 싶은 꿈이 있는 사람들이다.
옷 하나가 만들어져 내 손에 들어오기까지 대략 100명의 손길을 거친다고 한다. 자, 그럼 생각해보자. 내가 만 원짜리 셔츠, 삼만 원짜리 바지를 산다고 했을 때 그 생산과정에 참여한 사람들에게는 돌아갈 임금은 고작 몇 푼에 불과할 것이다. SPA 브랜드가 우후죽순 생겨나고, 패스트패션 열풍이 불며 패션업계의 윤리적 문제가 불거진 것도 바로 이런 영향이 크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Remake는 패션업계의 비윤리적 사업모델을 변화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팀이다. Remake는 단순히 업계의 비윤리성을 지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극복하고 생산 과정 자체를 사람 중심적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이들이 취한 방식은 스토리 텔링. 우리가 입고 있는 옷에 얼마나 많은 사람의 노력이 담겨있는지, 또 그들은 제대로 된 환경에서 '사람'답게 일하고 있는지 알게 하는 거다.
Remake는 'Meet the Makers'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생산과정의 양극단에 있다고 볼 수 있는 생산자와 디자이너(혹은 디자이너 지망생)가 직접 얼굴을 맞대고 만나 서로에 대해 알아가도록 했다. 생산자가 어떤 가정환경에서 자라, 왜 이 일을 하게 되었는지, 여기서 번 돈은 어떻게 쓰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등 한 사람의 삶을 알아보는 방식이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전해 들을 수 있는 이야기는 이렇다.
Rubina (후드 재봉사, 파키스탄)
"저는 22살이고, 의사가 되고 싶었어요. 그런데 아버지가 아프셔서 지금은 공장에서 일하며 미국에 보내질 대학생 단체티 등을 만들고 있습니다. 나를 불쌍하게 생각하지는 말아주세요. 처음엔 이 환경이 무서웠지만, 이곳에서 벌어지는 불합리한 사건을 경험하고 난 후부터는 노동조합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관리부에 가서 제때 월급을 받지 못하고, 제대로 된 밥을 먹지 못하고 있다고 얘기했어요. 당신은 아마 여기서 일어나는 일을 믿지 못할 거예요. 저는 온종일 바느질을 하며 가끔 당신에 대해서 생각합니다. 대학 캠퍼스에서 제가 만든 옷을 입고 즐거워할 당신을요. 당신은 저에 대해 한 번이라도 생각한 적이 있으신가요?"
Zheng Ming Hui (품질 보증, 중국)
"저는 도시의 생활을 경험하기 위해 19살에 제가 살던 마을을 떠나왔어요. 그 후로 3년이 지났지만, 같은 공장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하루에 12시간씩 일을 하는데, 주로 옷에 결함이 없는지를 확인해요. 엄마는 전화 좀 자주 하라고 하시는데, 사실 저는 할머니가 제일 보고 싶어요. 가족들은 일 년에 한 번, 설날에만 만나요. 3명의 룸메이트와 기숙사에서 살고 있는데, 휴가를 받았을 때조차도 나가는 게 힘들어서 종일 휴대폰만 보며 시간을 보냅니다. 밤이 되면 번지점프를 하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함께 여행하며 사진을 찍는 꿈을 꾸곤 해요. 하지만 지금 저는 당신의 옷을 예쁘게 만들기 위해 여기에 있군요. 이 옷을 입은 당신을 생각하면 정말 아름다울 것 같아요!"
Allie Griffin (Oscar de la Renta 인턴 디자이너, 미국)
“많은 브랜드가 해외에서 옷을 만들고 있지만, 우리는 그들과 너무 단절되어 있습니다. 생산자야말로 우리의 디자인을 현실로 만들어주는 사람들인데 말이에요. 특히 캄보디아에서 직접 생산자들을 만나며 저는 여성의 힘을 느낄 수 있었어요. 그들은 피해자처럼 보이려고 하지 않고, 자신들이 누려야 할 권리에 대해 배우고 그것을 쟁취하기 위해 싸우고 있었습니다. 특히 캄보디아에서 만난 Wong Char와의 대화를 통해서, 이들과 제가 가진 삶에 대한 희망이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바로 충만한 삶을 사는 거죠.”
사람은 기계가 아니다. 디자이너-생산자-소비자라는 사이클은 오직 구조적으로 연결되어 있을 뿐, 인간적으로는 서로 단절되어 있다. Remake는 그 기계적인 과정 안에 숨겨진 개인의 삶을 조명함으로써, 체제 안에 매몰되어 있는 인간의 존엄성을 드러낸다. 동시에 그 존엄성을 기반으로 노동자가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함께 목소리를 내자고 관심을 촉구한다.
생산자의 이야기를 보고 의식의 변화를 느낀 사람들은 Remake의 홈페이지를 방문해 윤리적 소비 방법 역시 확인할 수 있다. 다양한 공정 무역 브랜드를 소개해 주면서 이를 활용해 TPO(Time, Place, Occasion)에 맞게 옷 입는 법까지 알짜 정보가 많다. 단 몇 분의 시간이라도 내어 이들의 삶에 조금이나마 관심을 기울여보자. 그래야 변화가 빠르다.
Images courtesy of Remake
에디터 성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