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거리의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다
거리로 나온 냉장고
우리 곁에는 365일 24시간 내내 가동되는 전자 기기가 있다. 바로 냉장고다. 생활필수품으로 자리 잡은 냉장고는 곳곳에 늘어가는 대형 마트와 함께 몸집을 늘려갔다. 우리는 대형 마트를 돌며 카트 가득 담아온 먹거리로 냉장고 구석구석을 채운다.
<이너프>를 쓴 미국의 사회적 기업가 제프 시나바거는 한 달 동안 먹거리를 사지 않기로 결심하고 냉장고, 냉동실, 주방 찬장을 샅샅이 뒤져 7주 동안 147끼니를 해결한다. 147끼까지는 아니겠지만 우리의 냉장고도 제프 시나버거의 냉장고와 크게 다를 바 없을지도 모른다. 냉장고를 열어보자. 곳곳에 이미 신선도를 잃은 채 꽁꽁 얼어가는 먹거리들이 보일 것이다. 그중에는 끝내 우리의 미각을 자극하지 못하고 버려지는 음식들도 있다.
무자비하게 버려지는 음식물 쓰레기는 경제적 손실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이에 독일에서는 버려지는 음식물을 구하기 위해 길거리 냉장고를 만들어 푸드셰어링 운동을 펼치고 있다.
독일은 매시간 400t의 멀쩡한 음식이 버려진다. 유럽 전체적으로는 그 양이 연간 9천만 톤에 달한다. 이는 천억 유로 상당의 가치로 글로벌 식품기업인 네슬레의 연 매출과 맞먹는 양이다.
독일의 영화제작자이자 저널리스트인 발렌틴 툰은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다량으로 버려지는 광경을 목격한 뒤 왜 수십만 달러의 가치를 가진 음식들이 버려지고 있는지 질문을 던진다. 그 후 그는 <쓰레기를 맛보자 Taste the Waste>라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여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불편한 진실을 이야기한다. 이 다큐멘터리에 의하면 매장에 진열됐지만, 소비자의 선택을 받지 못한 농산물과 식품들이 고스란히 버려지고 그 음식물을 처리하기 위한 비용은 결국 소비자가 지불한다.
발렌틴 툰은 이와 같은 상황이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굉장히 슬픈 이야기이며 산업화된 푸드 시스템에서 생산되는 음식물의 거의 절반 가까이가 만들어지고 먹는 모든 과정에서 낭비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과잉 생산으로 어마어마한 가치의 음식이 낭비되는 것을 막기 위해 그는 마음이 맞는 이들과 ‘푸드셰어링 웹사이트’를 만들고 거리 냉장고를 설치한다. 비용은 크라우딩 펀드를 이용하여 400여 명에게 1만유로 이상을 후원받는다.
푸드셰어링은 2012년 12월 정식으로 문을 연 웹사이트를 통해 독일은 물론 오스트리아, 스위스까지 식료품을 나눌 수 있게 되었다. 푸드셰어링 운동은 좋은 흐름을 타 또 하나의 음식물 절약 사이트를 만들어 냈다. 바로 푸드 세이버이다. 푸드 세이버에 가입한 회원들은 제휴된 음식점들을 돌며 남겨진 식품을 수거해 거리의 냉장고에 채워 넣는다. 이들의 활동으로 냉장고에는 각종 채소를 비롯해 과일, 빵 등의 식재료들로 채워진다. 빵집이나 슈퍼마켓에서 가져오기 때문에 품질도 괜찮은 편에 속한다. 이러한 길거리 냉장고는 독일 전역 100여 군데에 분포해 있다. 푸드셰어링에 참여하는 이들은 어느새 5만여 명이 넘었다. 또한, 이 운동을 통해 1,000t의 음식물 쓰레기를 줄였다고 하니 발렌틴 툰 뿐만이 아니라 독일의 많은 이들 역시 버려지는 음식물의 어마어마한 가치에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과잉 생산은 결국 경제적 손실을 불러온다. 과잉 생산과 과잉 소비로 넘치는 쓰레기를 만들어낸 우리에게는 새로운 생활방식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주어진 것을 잘 활용하여 더 나은 가치를 만들어내는 일도 그 중 하나다. 거리로 나온 냉장고는 먹거리에 대한 새로운 태도를 제시할 뿐 아니라 조건없는 나눔의 가치를 만들어냈다.
본 콘텐츠는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이 기획하고, 베네핏이 제작/편집한 콘텐츠입니다. 미래를 생각하는 친환경 소비 연구소 - 미소이야기 블로그에서 최초 발행되고 있습니다.
photo(CC) via Alexander Muse / flickr.com
에디터 이수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