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 없는 천사 코끼리 공장장, 장난감을 나누다
어린 시절 부모님 손잡고 간 마트에서 우리 모두의 발걸음을 돌려세운 단 하나의 장소. 때로는 발로 바닥을 쿵쿵 구르기도 하고 아예 드러누워 떼를 써보기도 했던 바로 그곳, 장난감 판매대. 천신만고 끝에 원하던 장난감을 손에 넣었을 때의 기쁨과 유독 정을 줬던 장난감이 망가졌을 때 목놓아 울던 기억, 그리고 친구의 손에 들린 새 장난감이 못내 부러워 온종일 친구 뒤꽁무니만 쫓아다니던 날까지. 이처럼 장난감은 어린 시절 우리가 처음 만나보는 희로애락이었다. 그중 슬픔과 눈물은 빼고 온전히 장난감이 주는 기쁨과 행복만 느낄 수 있도록 장난감을 고치고 소독하고 나누는 사람들이 있다. 코끼리를 닮아(?) 코끼리공장이란 이름을 얻었다는 그들, 이채진 대표와 최민호 팀장 두 공장장을 만나보았다.
코끼리공장을 지키는 두 명의 날개 없는 천사 최민호, 이채진 공장장 |
Q. 코끼리공장은 어떤 곳인가요?
저희는 고장 난 장난감을 수리해주고 더는 사용하지 않는 장난감을 기부받아서 소독 후 재포장한 후 필요한 아이들에게 발달 과정에 맞춰 알맞게 나눠주는 일을 하고 있어요. 장난감이 필요한 사람과 필요하지 않은 사람 그 사이에서 중간 매개체 역할을 하는 셈이에요. 동시에 장난감 소독 관련 전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고요.
Q. 처음 사업을 시작하신 계기는 어떻게 되나요?
사실 저희 둘은 군 동기 사이에요. (웃음) 둘 다 원래 아이들에게 관심이 많아 아동학을 전공하기도 했고 각자 어린이집과 육아종합지원센터에서 근무했었는데요. 아이들이 많은 환경 속에서 근무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장난감 문제가 눈에 들어왔어요. 상당한 비용을 들여서 장난감을 구매해도 A/S를 해주는 업체는 5%도 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자체적으로 장난감을 고쳐주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아이들이 가진 장난감에도 격차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Q. 소득 격차에 따라 아이들이 가질 수 있는 장난감에도 차이가 난다는 뜻인가요?
최민호 / 경제적인 면도 있지만, 문화적인 차이도 있어요. 당시 제가 운영하던 어린이집은 약 1/3 이상이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었는데요. 다 똑같은 한국인인데도 불구하고 엄마들이 서로 섞이지 못하다 보니 아이들 사이에 장난감부터 작은 간식까지 차이가 너무 많이 나더라고요. 그러다 한 번은 한 어머니께서 아이들이 커서 더는 사용하지 않는 장난감을 상당량 가져다주신 일이 있었어요. 그래서 나름대로 장난감을 닦고 깨끗하게 손질을 해서 포장을 한 후 다문화 가정 어머니 한 분께 전해드렸어요. 그랬더니 한국말도 약하신 분이 고맙다고 편지를 써서 주신 거예요. 감동적이었죠. 그 후로 꾸준히 장난감 수리 및 나눔 봉사활동을 이어왔고 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각자 하던 일을 그만두고 지금의 사회적기업 코끼리공장이 되었어요.
Q. 말씀하신 대로 시작은 봉사활동이었지만 지금은 상당한 전문성을 확보하고 계신 것 같아요
약 3년 가까이 장난감 수리와 소독 서비스에 매달리다 보니 저희도 모르게 전문가가 된 것 같아요. (웃음) 처음엔 그저 장난감을 한 번 닦는 게 소독인 줄 알았는데 점점 논문을 찾아보면서 아이들에게 무해한 성분의 소독 물질은 뭐가 있나 찾아보게 되고 사비를 들여 전문 장비를 구매하기 시작했어요. 수리 역시 저희 선에서 고칠 수 없는 건 자동차나 전기 전문 기술자에게 문의하면서 기술이 생겼고요. 그러다 보니 이제는 누가 와도 알려줄 수 있도록 매뉴얼이 생겼을 정도예요. 또 육성사업을 통해서 봉사활동을 넘어 사업체로 거듭날 수 있도록 많은 조언을 받았어요.
고장난 장난감의 새 삶이 열리는 공간 코끼리 공장 |
Q. 구체적으로 육성사업을 통해 어떤 도움을 받으셨나요?
사실 저희가 처음 육성사업에 관심이 생긴 이유는 장난감 수리 기계를 구매할 돈이 필요해서였어요. (웃음) 수익 모델이 아니라 봉사 활동으로 운영되다 보니 언제나 예산이 부족했거든요. 그런데 육성사업팀을 통해서 저희 모델이 사회적기업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지금의 코끼리공장이 된 거예요. 결론적으로 저희가 자생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져서 사업을 지속할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Q. 그렇다면 수익 구조는 어떻게 되나요?
우선 장난감 수리의 경우 전부 무상으로 해드리고 있어요. 봉사활동으로 시작한 만큼 돈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요. 다만 수리에 필요한 부품이나 장비를 구매하는 등 사업 운영을 위해 아동기관을 대상으로 전문 소독 및 방역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서비스 가격은 30평 이하는 3만 5천 원으로 규모에 따라 가격이 조금씩 올라가요.
Q. 기존 시장에는 아동 기관을 대상으로 소독이나 방역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가 없나요?
우리가 이름만 들으면 아는 방역 업체들이 있지만, 그곳도 전문가라고 하긴 어려워요. 상당한 돈을 받고서 약만 한 번 뿌려주고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반면에 저희는 최대한 아이들에게 무해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식품첨가물 인증을 받은 소독 용품을 사용해요. 그것도 1세 이하 갓난아이들에게는 위험할 수 있으니 200도 이상 고온 스팀 기계로 살균 서비스를 제공하고요. 원목 기구 같은 경우 뒤틀림이 생기지 않도록 적외선 살균기를 사용하고 장난감은 물론 차량이나 선생님들이 사용하시는 공간도 소독해드립니다. 여기에 저희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이란 걸 증명하기 위해 교육이수증, 보건 조회증, 직원 확인증, 성범죄 조회까지 보여드려요. (웃음)
식품첨가물 성분으로 만들어 입에 들어가도 무해한 코끼리공장의 소독용품 |
Q. 여러모로 제공하는 서비스 품질과 비교하면 가격이 너무 저렴한 게 아닌가 싶네요
많은 분이 그렇게 말씀하지만, 돈을 벌기 위해 시작한 사업이 아닌 만큼 외부에서 도움을 받지 않고 저희 자체적으로 사업을 운영할 수 있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봐요. 사실 소독 서비스 모델을 만들기 전까지는 수익이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는데요. 저희의 좋은 의도를 알기 때문에 주위에서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주시는 분들도 많았어요. 인근 자동차 공장에서 퇴직한 어르신께서 수리 서비스를 도와주시기도 하고 디자인 사무소에서는 회사 이름과 BI, CI, 명함, 책자 등을 모두 제작해주셨고요. 이렇게 많은 분의 도움을 받으면서 여기까지 온 만큼 저희도 계속해서 소외 계층에게 도움을 드리려고 해요. 실제로 코끼리공장 이름 안에는 두 가지 뜻이 있는데요. 고장 난 장난감이 들어가면 고쳐져서 나오는 것은 물론 퇴직자분들을 고용해서 그들이 일자리를 얻어서 나갈 수 있는 곳이 되고 싶어요.
Q. 혹시 울산을 넘어 다른 지역으로 사업을 확장할 계획은 없으신가요?
실제로 재활용품 수거 업체처럼 전국에 거점을 만들어서 운영해보자는 제안을 받기도 했는데요. 단순히 돈을 더 많이 벌고 사업 규모를 늘리는 데 목적이 있다면 저희가 이 일을 할 필요가 없다고 봐요. 수익이 조금 덜 남더라도 수리와 나눔을 좀 더 전문적으로 하고 싶어요. 몇 년 전에 비하면 중고물품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 역시 많이 개선되었는데요. 인터넷 사이트를 만들어서 기부와 나눔 규모를 늘리고 사무실 자체를 중고 장난감 센터나 마켓 형태로 만들고 싶은 생각도 있어요. 어쨌거나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장난감을 통해 행복을 나누는 것, 더 많은 아이가 웃을 수 있는 겁니다.
장난감을 통한 행복 나눔을 실천하는 사회적기업, 코끼리공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