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영화 '동주'
※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얼마 전 무한도전에서 역사와 힙합의 콜라보레이션 '위대한 유산'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중 가장 눈에 띈 것은 개코와 광희, 그리고 오혁이 함께 부른 '당신의 밤'. 그들이 노래를 통해 조명하고자 했던 윤동주는 우리 근대사 중 가장 어두웠던 시기인 일제시대에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못한 자신의 부끄러움을 고백한 시를 남기며, 시대와 개인의 아픔을 기록한 시인이다. 서시, 별 헤는 밤, 자화상 등 아름답고 서정적인 시어로 사람의 마음을 울리던 그의 시는 많은 이들의 정서적 지침이 된다.
하지만 윤동주의 곁에는, 아마 많은 이들이 몰랐을, 송몽규라는 인물이 있었다. 윤동주의 사촌이자 평생의 벗, 그리고 가장 가까이서 윤동주에게 부끄러움을 느끼게 한 사람이 바로 그다. 내성적인 윤동주와는 다르게 언제나 적극적이고 진취적이었던 송몽규는 독립운동에 투신해 군사자금을 모으고, 문예지를 창간해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등 언제나 행동으로 직접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이준익 감독이 연출한 영화 <동주>는 같은 시대에 전혀 다른 방식으로 대응한 시인 윤동주와 송몽규라는 두 인물에 주목한다.
몽규는 언제나 혁명이 우선이다. 혁명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고, 불합리한 시대의 유물을 타파할 수 있다고 믿는다. 신춘문예에 등단할 정도로 문학에 천부적인 재능을 지녔지만, 세상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문학은 쓸모가 없다고 여겨 연희전문학교에서 문예지를 창간할 때도 시보다 산문을 우선순위에 둔다. 몽규에게 시인이란 세상을 바꿀 용기가 없어 문학 속으로 숨으며 암흑의 시기를 그저 '버텨내는' 사람들일 뿐이다. 그래서 그는 직접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중경으로, 만주로, 일본으로 기꺼이 몸을 날린다.
뼛속까지 시인이었던 동주는 언제나 시로 자기 생각을 표현했다. 사람들 마음속에 있는 살아있는 진실을 드러낼 때 문학은 온전하게 힘을 얻는다고 열변을 토한다. 그리고 그 힘이 하나하나 모여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신념이 있다. 동시에 언제나 자신보다 앞서갔던, 두려움 없이 행동한 몽규를 보며 동주는 한없이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래서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고, 살기 어려운 시대에 방 안에 앉아 쉽게 시를 쓰는 자신의 모습을 반성하고 또 반성한다. 하지만 영화 속 정지용 시인이 말하듯, 부끄럽지 않게 사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부끄러움을 아는 것은 부끄러운 게 아닐 것이다.
내 나라에서 기침 한 번, 숨 한번 쉬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던 그 시절. 몽규가 독립운동을 위해 유학생을 모으고, 옥살이를 감내하는 동안 동주는 조용히 자신의 부끄러움을 고백하며 몽규를 응원한다. 그리고 그가 쓴 시는 몽규가 힘들 때 기댈 어깨이자 응원의 메시지가 된다. 행동으로 그 시대를 변화시키려 노력한 몽규와, 시로 시대의 아픔을 적어 내려간 동주의 방식 중 누가 더 낫다고 평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방식은 달랐지만 둘 다 어둠을 내몰기 위해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방법으로 죽는 날까지 저항했다. 동주가 결과로 우리 마음에 울림을 준다면, 몽규는 그 과정 자체로 빛난다.
누군가 노래하는 당신을 향해서, 기록하는 당신을 향해서, 소외되고 탄압받는 사람들 곁에 주저앉아 작은 변화라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당신을 향해서 ‘그래서 이게 뭐? 뭘 바꿀 수 있는데?'라고 묻는다면, ‘당신이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나는 이거라도 하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자. 이미 당신은 충분히 잘하고 있다. 세상을 움직이는 힘은 당장 눈앞에 보이는 변화와 수치에서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가수는 노래로, 예술가는 예술로, 글쟁이는 글로, 혁명가는 혁명으로, 시민은 촛불로. 수많은 개인이 문제를 문제라고 인식하고 자신이 제일 잘할 수 있는 방식으로 각자 진심을 드러내기 시작할 때, 아마 그때부터 진짜 변화는 일어날 것이다.
Images courtesy of 동주
에디터 성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