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돌 때 많이 찌그러지는 차가 더 안전?
과학을읽다
미국이나 유럽 등 유명 자동차 충돌테스트에서 국산 대형차인 제네시스의 경우 높은 평점을 받지만 국산 소형차들의 성적은 형편없이 낮은 편입니다. 사진은 2017년 미국 고속도로안전보험협회(IIHS) 자동차 충돌테스트를 받고 있는 제네시스의 모습. [사진=IIHS 자동차 충돌테스트 영상 캡처] |
[아시아경제 김종화 기자]가끔 자동차 충돌 사고를 목격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비싼 외제차의 앞이나 뒤가 더 많이 찌그러지거나 부서진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는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부딪쳤는데도 자동차가 더 많이 부서지기도 하지요.
왜 그럴까요? 자동차를 약하게 만들고, 오토바이는 튼튼하게 만들어서 그럴까요? 이런 모습들을 보고 사람들은 "사고 때 더 많이 찌그러지는 차가 좋은 차"라는 선입견을 갖기도 합니다. 운전자의 안전을 위한 고급차의 여러 사양 가운데 하나라고 오해하는 것이지요.
실제로는 고급차뿐 아니라 다른 차량도 충돌 때는 앞뒤 부분이 많이 찌그러집니다. 다시 말하면, 비싸고 좋은 차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차가 사고 때는 앞뒤 부분이 많이 찌그러지도록 제작된다는 말입니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자동차는 튼튼해야 안전하다고 사람들은 믿었습니다. 그러나 메르세데스 벤츠의 엔지니어였던 벨라 바레니가 충돌은 흡수할수록 운전자나 승객이 안전해진다고 주장하면서 '크럼플존(Crumple zone)' 이론이 등장하게 됩니다.
바레니는 1954년 실제 자동차 충돌 시험을 통해 크럼플존의 효과를 입증합니다. 이후 자동차의 앞과 뒤는 충격을 잘 흡수하도록 만들고, 운전자와 승객이 탑승하는 가운데 부분은 단단하게 제작하는 설계법이 일반화됩니다. 바레니는 크럼플존 개념의 도입 외에도 접이식 스티어링 칼럼, 탈부착식 하드탑 등 자동차 관련 2000여개가 넘는 특허를 보유해 에디슨을 능가하는 천재라고도 불립니다.
볼보차의 안전테스트 장면. 그 어떤 테스트에서도 볼보차는 높은 등급의 평가를 받습니다. [사진=IIHS 충돌테스트 영상 캡처] |
세단형 자동차를 예로들면, 보닛과 앞타이어 부분, 뒷 트렁크와 뒷 타이어 부분은 크럼플존에 해당하고, 운전석과 뒷좌석이 위치한 가운데 부분은 '패신저셀(Passenger cell, 세이프티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크럼플존이란, 구겨지다는 뜻의 단어 그대로 외부에서 일정한 충격이 가해졌을 때 탑승자에게 전해지는 충격을 줄이기 위해 충돌시간을 늘려주는 역할을 하는 구역입니다.
크럼플존이 구겨지며 시간을 버는 만큼 탑승자에게 전해지는 충격이 줄어들게 됩니다. 반면, 세이프티존(패신저셀)은 어떤 경우에도 구겨지거나 찌그러져서는 안되는 구역입니다. 자동차 제조사들은 크럼플존과 세이프티존에는 서로 다른 소재를 사용합니다. 어느 부분에 알루미늄을 사용했고, 어느 부분에는 초고장력 강판을 사용했다는 등등의 광고를 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크럼플존과 세이프티존을 사이에는 '필러(pillar)'가 기둥 역할을 합니다. 필러는 세단을 기준으로 A, B, C 세 종류가 있는데 보통 앞 크럼플존과 세이프티존 사이의 기둥을 A필러, 중간을 B필러, 뒷 크럼플존과 세이프티존 사이의 C필러로 구분합니다.
차제 전면의 양 유리 옆에 있는 기둥인 A필러는 전방 충돌 때 트럼플존이 영역 이상으로 찌그러지는 것을 막아 줍니다. 차량 내부로 밀려드는 대시보드나 타이어 휠 등이 운전자를 덮치지 않도록 보호하는 역할을 합니다. B필러는 측면에서 오는 충격과 전복 사고 때 탑승자를 보호합니다. C필러는 차 뒷부분에서 트렁크와 천정을 이어주는 기둥으로 후방 충격을 탑승자들에게 최소화 시켜주는 기능을 합니다.
안전할 것 같았던 유명 짚형 차량도 충돌테스트 결과에서는 낮은 평점을 받았습니다. [사진=유로NCAP 충돌테스트 영상 캡처] |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자동차 충돌 때 찌그러지는 것이 탑승자를 안전하게 하기 위한 설계라는 개념을 인식하게 된지는 얼마되지 않았습니다. 독일의 자동차 회사는 1950년대 중반에 크럼플존을 설계에 반영하지만 자동차 구경도 쉽지 않았던 우리 상황에서는 크럼플존보다 생산기술 습득이 우선이었지요.
당연히 크럼플존과 세이프티존의 중요성은 뒷전이었고, 이론적으로 알고 있었더라도 기술적으로 이를 구현할 능력이 뒤따라주지 못했습니다. 국내 자동차 제조사는 이런 사실을 굳이 고객들에게 알릴 필요도 없었지요. 1980년대까지만 해도 여전히 충돌해도 구겨지지 않는 튼튼한 차가 좋은 차라는 인식이 일반적이었으니까요.
교통사고 사망자 세계 1위의 오명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여기 있습니다. 이젠 자동차 회사도, 운전자도 안전한 차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요? 미국이나 유럽 등 유명 자동차 충돌테스트에서 국산 대형차와 소형차들의 성적은 극과 극입니다. 제네시스 등 비교적 고가의 차는 안전평가 등급이 높은 반면, 엑센트 등 소형차의 평가등급은 매년 최저를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충돌했을 때 안전한 차는 어떤 차일까요? 이론적으로는 보닛이 긴 차가 안전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정확하게는 크럼플존이 충격을 잘 흡수하고, 세이프티존에서 충격이 침범하지 못하도록 잘 막아주는 차가 안전한 차라고 할 수 있습니다. 크럼프존이 너무 길면 실내공간이 좁아지겠지요. 보닛의 길이와 크럼플존의 길이, 실내공간의 크기 등은 인종과 문화적 특성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안전한 차를 타는 것보다 안전하게 운전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사진=유튜브 화면캡처] |
크럼플존이 짧은 경차나 소형 트럭, 소형 버스 등의 앞좌석이 전방 충돌 때 상대적으로 덜 안전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미국 고속도로안전보험협회(IIHS) 자동차 충돌테스트 결과 큰차가 무조건 안전하고, 작은차는 위험할 것이라는 선입견은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충돌 부위와 충돌 상황, 차량의 상태 등에 따라 작은차도 안전하다는 성적표를 받기도 했고, 험머나 랭글러처럼 튼튼하게 생긴 차도 완벽하게 안전한 것은 아니라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안전한 자동차를 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안전하게 운전하는 것입니다.
김종화 기자 justin@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