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내 취향 어떻게 알았지?" 밀키트 대중화, 그 뒤에 숨은 치밀한 'AI'
밀키트 대중화 도운 AI·빅데이터 등 IT 혁신
수요 예측·식자재 관리 등 통해 영업 비용 절감
소매유통업에 IT 접목한 '리테일 테크' 확산 추세
일각선 IT의 '감시기술화' 우려
가정에서 간단한 조리를 통해 한 끼 식사를 만들 수 있는 '밀키트'가 인기를 얻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9월 서울 한 대형마트에 진열된 밀키트 제품들. / 사진=연합뉴스 |
[아시아경제 임주형 기자] 최근 조리 전 상태의 식재료를 포장해 배달해 주는 제품인 '밀키트(meal-kit)'가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앞서 쿠팡·마켓컬리 등 대형 이커머스 업체가 주로 밀키트를 판매해 왔지만, 최근에는 소규모 유통업체에서도 유명 셰프의 이름을 건 밀키트를 배달합니다.
사실 밀키트는 유통업체 입장에서 매우 까다로운 제품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매일 새로 개발되는 메뉴에 맞춰 여러 종류의 조리 전 식자재를 따로 주문해 포장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운용 비용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하지만 유통업에 도입되기 시작한 인공지능(AI)·빅데이터 등 테크 혁신 덕분에, 밀키트 사업 진출에 필요한 비용은 점차 낮아지고 있습니다.
밀키트 비즈니스를 글로벌 무대에서 처음 출범한 회사는 지난 2011년 설립된 독일 이커머스 기업 '헬로 프레쉬'입니다. 헬로 프레쉬는 매월 일정한 구독료를 내고 멤버십에 가입한 고객의 주소로 밀키트를 배달해 줍니다.
독일 베르네 지역 한 물류센터 내부 모습. 사진은 기사 중 특정 표현과 관계 없음. / 사진=연합뉴스 |
10여년이 지난 현재는 전세계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밀키트 회사들이 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미국 '블루 에이프론', 영국 '구스토' 등이 있고, 한국에서도 마이셰프·쿡킷·프레시지 등 밀키트 전문 스타트업이 탄생하고 있습니다.
손질된 재료를 레시피 순서대로 넣고 조리하기만 해도 제대로 된 '집밥'을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밀키트는 큰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한국무역협회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3년 1501억원에 불과했던 미국 밀키트 시장 규모는 연평균 88% 성장률을 기록, 지난 2018년 3조5340억원으로 대폭 증가했습니다. 올해에는 약 6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됩니다.
한국 또한 지난 2017년 200억원 수준이던 시장 규모가 매년 2배 가까이 늘어나는 등, 큰 폭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사실 밀키트는 10년 전만 하더라도 이른바 '진입장벽'이 매우 높은 사업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유통업은 물류 창고 건설·콜드체인 구축·인력 고용 등에 드는 비용이 매우 커 마진이 낮은 사업인데, 여기에 더해 매일 다양한 메뉴에 맞춰 각양각생의 신선한 채소·육류 등을 구비해야 하는 밀키트는 결코 쉬운 비즈니스가 아니었습니다.
이같은 밀키트 사업의 운영 비용이 최근 들어 크게 낮아진 이유는 유통업이 AI·빅데이터 등 테크 플랫폼과 결합하면서 효율성이 크게 상승했기 때문입니다.
밀키트를 포함한 이커머스 사업은 최근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 IT와 결합하고 있는 추세다. / 사진=연합뉴스 |
예를 들어 영국의 유명 밀키트 스타트업 구스토의 경우, AI와 빅데이터 분석에 크게 의존하고 있습니다. 구스토는 매 1주일마다 30~40개의 새로운 밀키트 메뉴를 구독 고객들에게 선보이는데,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app)이나 인터넷 홈페이지에 각 고객의 취향에 따라 추천 메뉴를 띄우는 방식으로 '수요 관리'를 합니다.
또 AI가 고객들의 주문 패턴을 예상해서 당일 필요한 채소·육류 등을 전날 주문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으며, 같은 방식으로 밀키트 제조 후 남은 식자재를 미리 다른 제품에 넘김으로써 낭비되는 자원을 최소화합니다.
비록 육안으로 보이지는 않더라도, 탁월한 데이터 분석능력을 지닌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통해 비즈니스를 효율화 함으로써 사업 비용을 최소화한 겁니다.
헬로 프레쉬·구스토 등 비단 밀키트 기업뿐 아니라, 이커머스 회사들은 이전부터 유통업에 IT를 접목하는 이른바 '리테일 테크'로 생산성을 증대 했습니다.
미국 이커머스 기업 아마존의 클라우드 컴퓨팅 서버 'AWS' / 사진=연합뉴스 |
미국의 이커머스 기업인 아마존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아마존은 자사가 제공하는 클라우드 컴퓨팅 서버인 'AWS'에 다양한 유통 관련 데이터를 저장하고, 이를 분석해 업무 효율성을 높여 왔습니다.
이를테면 아마존은 물류 창고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의 이동 경로 패턴을 분석해 업무에 더욱 최적화된 동선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같은 리테일 테크 혁신이 오히려 유통업 종사자들의 근무 환경을 악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실제 지난해 9월 미국 싱크탱크 '오픈 마켓 인스티튜트'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아마존은 물류창고 운영을 효율화할 목적으로 다양한 소프트웨어·센서·스캐너 등을 사내에 배치해 노동자들을 감시해 온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를 통해 아마존은 노동자들의 민감한 개인정보를 얻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잠재적인 노동조합 결성 움직임까지 막을 수 있다고 보고서는 지적하고 있습니다.
해당 싱크탱크는 이 보고서에서 "(리테일 테크 등 IT 기술은) 효율성 증대를 위한 도구가 아닌 노동자 감시 기술로 발전할 수 있다"며 "특히 아마존 같은 선도 기업들이 선제적으로 감시 기술을 도입하면, 업계 내 다른 경쟁자가 비슷한 방식을 채용할 우려가 있다"고 대기업들의 솔선수범 및 규제당국의 행동을 촉구하고 나섰습니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