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유출 간접증거 인정"… 숙명여고 전 교무부장 징역3년 확정
대법, 1년 8개월만에 최종 결론
쌍둥이 딸에 유출 의혹 뒷받침
7개 간접사실 유죄증거로 인정
딸들도 유죄판결 가능성 커져
[이미지출처=연합뉴스] |
쌍둥이 딸에게 시험문제를 유출해 사회적 논란을 일으킨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최종 판단이 나왔다. 문제를 유출했다는 '직접 증거' 없이 유죄를 확정할 수 있느냐는 논란이 있었지만 대법원은 쌍둥이 아버지에게 징역형을 내린 원심을 그대로 확정했다. 의혹이 불거진 지 1년 8개월만이다.
간접증거 증명력을 보여준 판결
대법원 2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12일 업무방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숙명여고 전 교무부장 현모(53)씨에게 징역 3년을 선고한 2심을 확정했다. 2018년7월 서울 강남 학원가로부터 의혹이 불거져 기소로 이어진 이 사건의 재판에서는 현씨가 쌍둥이에게 시험문제를 사전 유출했다는 직접 증거는 제시되지 않았다. 학교 교무실 안에 CCTV가 달려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현씨가 교무실 금고 속 답안지를 꺼내 복사하거나 메모하는 장면, 딸들에게 보여주는 장면 등 결정적 증거 없이 재판이 이루어졌다. 현씨는 "두 딸이 스스로 공부해서 좋은 성적을 받았을 뿐이고 답안지를 유출한 사실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지난해 5월 나온 1심 판결에선 '현씨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며 징역 3년6개월을 선고했다. 지난해 11월 2심도 유죄 판단을 유지했다. 다만 현씨의 아내가 자녀와 고령의 노모를 부양하게 된 점, 두 딸도 공소가 제기돼 형사재판을 받는 점 등을 감안해 징역 3년으로 감형했다. 2심 재판부는 "직접 증거는 없지만 수많은 간접 증거를 종합적으로 고찰해보면, 딸들이 답안을 참조해 시험을 봤다는 공소사실이 충분히 인정된다"고 했다. 대법원 2부도 이날 이런 2심 판단을 받아들이면서 정황상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다면 유죄 판결이 가능하다는 걸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앞서 법원이 유죄 근거로 내세운 간접 증거는 모두 7가지였다. 재판부는 쌍둥이 딸의 성적이 공교롭게 똑같은 시기에 급격히 향상됐다는 점에 주목했다. 반면 비슷한 시점에 치른 모의고사에선 괄목할 만한 성적 향상이 없었다. 쌍둥이 딸들이 유독 서술형 문제를 틀린 점, 시험지 윗부분에 정답을 '깨알 메모'로 적은 점, 시험 전날 정답이 정정된 문제들은 모두 틀린 점, 어려운 물리 문제를 풀이 과정도 안 적고 푼 점 등을 답안지 유출 정황으로 재판부는 봤다. 또 정기고사 출제 서류 결제권자인 현씨가 시험 답안을 넣어둔 금고의 비밀번호를 알고 있었고, 추가 근무를 핑계로 주말이나 일과 후에 교무실에 홀로 머문 점 등도 그가 금고를 열어봤을 정황적 증거가 된다고 했다. 대법원은 이런 원심 판결에 대해 "형사재판에서 유죄 인정에 필요한 증명의 정도, 간접 증거의 증명력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는 등 잘못이 없다"고 밝혔다.
한국 교육의 문제 드러낸 상징적 사건
아버지의 유죄 확정으로 딸들도 같은 취지의 판결을 받을 가능성이 커졌다. 쌍둥이 딸은 당초 서울가정법원에서 소년보호 재판을 받고 있었지만, 혐의를 계속 부인함에 따라 사건이 다시 검찰로 되돌아갔다. 이에 검찰은 이들 자매를 업무방해 혐의로 불구속기소 했고, 현재 서울중앙지법에서 정식재판이 진행 중이다.
이 사건은 의혹 제기와 수사 단계부터 '학교 교육의 총제적 위기 상황'을 보여주는 단면이란 지적과 함께 많은 관심을 받았다. 교육부는 이 사건을 계기로 전국 국ㆍ공립 고등학교에 상피제 도입을 권고했다. 전북을 제외한 전국 16개 시ㆍ도교육청이 중등 인사관리 기준에 '국ㆍ공립 고교 교원-자녀 간 동일 학교 근무 금지 원칙'을 반영해 시행에 들어갔다. 학교 시험문제 관리 강화등 내신 제도를 정비하는 것뿐 아니라 아예 대입에서 수능 위주의 정시모집 비중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숙명여고 쌍둥이 사건은 이 같은 정시 확대 주장을 뒷받침 하는 좋은 사례로 거론돼 왔다. 내신성적에 크게 좌우되는 수시전형의 제도적 특성이 현씨의 '비뚤어진 교육열'을 부추겼다는 취지다.
조성필 기자 gatozz@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