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장난감 왕국 '레고'는 어떻게 다시 1인자가 됐나
'전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장난감'으로 칭송
1990년대 디지털시대 도래와 동시에 파산 위기
디자인 바이 미·레고 쿠수·레고무비 등을 통한 대대적 혁신
전 세계 장난감 시장의 독보적인 브랜드 '레고(LEGO)'. 1932년 덴마크에서 목수 출신 키르크 크리스티얀센(Ole Kirk Christiansen)이 만든 회사로 '전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장난감'이라는 칭송을 받아왔다. 1990년대 디지털 시대가 오기 전까지 말이다.
레고 브릭은 창업자 크리스티얀센이 단순하고 자유자재로 조립할 수 있는 장난감을 고안하다 만들어진 장난감이다. 창업 초기에는 목재 장난감을 만들다 1950년대 영국의 키디크래프트(Kiddicraft)사에서 자동 잠김 브릭(Self-Locking Bricks)의 특허를 가져와 블록장난감을 처음 만들었다. 당시 브릭은 헐겁고 느슨했는데 크리스티얀센의 아들 고트프레드(Godtfred Kirk Christiansen)가 2대 대표로 취임하면서 '오직 최고만이 최고다(only the best is the best)'라는 일념으로 1958년 현재 모습의 레고 브릭이 만들어졌다.
브릭 장난감으로 레고는 승승장구했다. 디자인과 상품명이 달라도, 만들어진 시기가 달라도 모든 브릭들이 호환되는 장점은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아이부터 부모까지 모두 만족시켰다. 각각 8개의 브릭을 가진 표준 레고 블록 6개만 있어도 9억 가지 이상의 조합이 가능해 상상 속의 존재를 만드는 재미에 빠진 아이들은 레고를 불티나게 구매했다. 매년 36억 개의 브릭을 생산했고, 자동차 블록을 위해 제작하는 타이어는 전 세계 타이어 생산 1위를 기록할 정도였다.
하지만 1990년에 들어서면서 비디오와 컴퓨터 게임의 등장으로 레고 판매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레고 블록을 테마로 한 비디오 게임 사업, 테마 파크 등 사업영역을 넓혔지만 1998년 첫 적자를 기록한 뒤 2004년 18억 크로네(약 2442억원)의 사상 최대 규모의 적자를 기록하며 파산 위기에 놓였다. 부채만 50억 크로네(약 6780억원)에 달했다.
젊은 리더의 등장, 대대적인 혁신
레고는 대대적인 혁신을 단행했다. 창업자 일가는 경영에서 물러났고, 새로운 수장으로 40대의 젊은 전문 경영인인 외르겐 비 크누드스토르프(Jorgen Vig Knudstorp)를 최고경영자(CEO)로 영입했다. 레고의 열렬한 팬이었던 크누드스토르프는 취임 직후 내부 인력부터 손을 대기 시작했다. 레고의 과거 명성에 젖어있는 직원들을 걸러내기 위한 조치였다.
그리고 레고의 비주력 사업을 정리하기 위해 레고랜드(레고 테마파크) 지분의 70%를 세계 최대 사모펀드 회사 블랙스톤에 매각했다. 동유럽으로 공장을 이전해 인건비를 줄였다. 팔리지 않는 사업, 레고 고유의 브랜드 이미지와 맞지 않는 사업은 모두 정리했다.
또 레고는 창업 때부터 장난감을 만드는 기준이 됐던 '아이들은 어떤 장난감을 좋아할까'라는 물음을 삭제하고, 조금 비틀어 '아이들에게 놀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했다.
6개월 동안 아이들을 관찰하고 인터뷰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지금까지 레고가 도출했던 결론과 정반대의 결론이 도출됐다. 그 전까지 레고는 아이들은 만들기 쉽고 화려한 장난감을 좋아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아이들은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 있도록 더욱 복잡하고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장난감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이후 레고는 아이들이 '성취감'을 느낄 수 있도록 장난감을 고안했다.
고객 참여형 장난감 - 디자인 바이 미, 레고 쿠수
레고는 제품 개발에 고객을 참가시켰다. 2005년 '디자인 바이 미(Design By Me)'라는 홈페이지를 개설해 고객들이 직접 레고 브릭으로 자신만의 제품을 설계하고 주문이 가능하도록 했다. 이는 상당히 인기를 끌었고 2008년부터는 고객들의 아이디어를 상품화하는 '레고 쿠수(Lego Cuusoo)'를 운영했다. 레고 쿠수에 고객이 아이디어를 올리고, 회원들로부터 1만 건 이상의 추천을 받으면 본사 상품개발팀에서 정식 검토, 제안한 레고는 상품으로 출시된다. 이로 인한 매출 1%는 아이디어를 낸 고객에게 돌아간다. 게다가 제품 개발에 참여할 수 있는 디자이너 권한까지 부여하면서 고객들의 의견을 끊임없이 반영한다.
그 덕에 레고는 연구개발(R&D) 비용을 크게 들이지 않고도 다양한 제품을 출시할 수 있었고, 2012년에는 전체 매출의 60%가 고객들의 아이디어로 만들어진 제품에서 나왔다.
키덜트를 잡은 스토리 전략
레고는 새로운 고객층이 필요했다. 그래서 '아이들 같은 감성과 취향을 지닌 어른'을 지칭하는 '키덜트(Kidult)'를 공략했다. 난이도 높은 레고를 출시하되 제품에 스토리를 입혔다. 스타워즈, 배트맨 등 영화 속에 등장하는 캐릭터를 레고 인형으로 만들어 키덜트들의 지갑을 열게 하는데 성공했다.
게다가 레고 캐릭터 자체에 스토리를 입힌 영화를 제작했다. 2014년 개봉한 '레고 무비(The Lego Movie)'는 당시 미국 박스오피스 3주 연속 1위를 차지하며 이른바 '대박'을 쳤다. 영화 자체로 벌어들인 수익만 590억원가량이었다. 추가적으로 영화의 흥행은 레고 매출 증가로 이어졌다. 레고 무비에 등장한 레고 인형 상품들은 무섭게 팔렸고 2014년 매출(약 1조3000억원)은 최악의 적자를 기록했던 2004년 대비 5배나 성장할 수 있었다.
윤신원 기자 i_dentity@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