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터, 수하물 안되는데 휴대 가능한 이유
항공기 화재 진압훈련 모습. [사진=유튜브 화면캡처] |
해외로 휴가를 떠나는 사람들 가운데 수하물에 금지된 물품이 들어 있는지도 모르고 부치는 바람에 비행기를 놓치거나 연착시켜 다른 승객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수하물을 맡겼으면 5분 정도는 항공사 카운터 근처에서 대기하는 것이 맞습니다. 수하물 검사를 통해 자신도 모르는 금지 물품이 들어 있다면 확인 후 빼내야 합니다. 5분이 급해 출국장을 통과했다가 검색대로 다시 불려와 짐 검사를 다시 받거나 고의성(?) 여부에 해명하다보면 보딩시간을 놓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상황에 처하게 만드는 대표적인 물품이 바로 라이터입니다. 특히 골프여행을 떠나면서 캐디백에 라이터를 넣어두는 사람은 꼭 빼는 것이 좋습니다. 라이터는 반드시 휴대하고 비행기에 타야 합니다. 수하물로 부치는 것이 더 안전할 것 같은데 금연구역인 기내에 라이터를 들고 타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라이터가 인화성 물질이어서 그렇습니다. 고도 3만5000피트(약 1만668m) 이상으로 비행기가 올라가 운항하면 기압과 기온이 낮아집니다. 휴대용 가스라이터의 경우 발화성 가스가 들어있는데 낮은 기온과 기압으로 폭발할 경우 비행기 짐칸에서 화재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운항 중 고도 1만m 이상의 상공에서 화재가 난다면 아찔한 상황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차라리 승객이 소지하고 있다가 화재가 일어날 경우에는 기내에서 승무원 등이 즉시 진압할 수 있어 화물칸보다는 상황이 나을 수 있는 것이지요.
기압차로 터져버린 휴대용 가스라이터. [사진=유튜브 화면캡처] |
국토교통부에서 고시한 항공기 반입금지물품 규정에 따르면 폭발성, 인화성, 유독성 물질은 휴대 및 위탁 수하물로의 운송이 모두 금지돼 있습니다. 페인트, 라이터용 연료와 같은 발화·인화성 물질, 부탄가스캔 등 고압가스 용기, 총기·폭죽 등 무기 및 폭발물류, 리튬 배터리 장착 전동휠, 탑승객 및 항공기에 위험을 줄 가능성이 있는 품목 등은 모두 수하물로 부칠 수 없습니다.
성냥이나 휴대용 라이터는 개인이 1개를 휴대하고 탑승할 수 있습니다. 전자담배도 수하물은 안되고 휴대만 가능합니다. 단, 기내에서 전자담배를 피거나 충전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중국같은 나라는 라이터 자체를 아예 휴대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들은 개인당 1개 휴대 가능하고, 선물용으로 포장돼 있거나 지포라이터의 경우 연료가 들어있지 않으면 수하물로도 부칠 수 있습니다. 총기모양의 라이터는 기내로 휴대하면 안됩니다. 연료를 모두 제거한 뒤 별도로 포장해서 수하물로 보내야 합니다.
누구나 가방 속에 1개 정도 들어있기 쉬운 휴대용 가스라이터. [사진=유튜브 화면캡처] |
수하물 화재로 인한 항공기 사고 사례도 적지 않습니다. 1980년 8월19일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의 리야드 킹 칼리드 국제공항을 이륙한 사우디아라비아 항공 163편은 화물칸 화재로 승객 287명과 승무원 14명등 301명의 탑승자 전원이 사망했습니다. 이 비행기는 이륙한지 7분만에 화물 적재칸에서 연기가 난다는 경보가 울려 급히 회항했습니다. 그러나 비상착륙 직후에도 승객들이 탈출하지 못하고 모두 희생됐습니다.
정확한 화재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비행기 잔해물 안에서 2개의 휴대용 가스버너와 근처에는 다 쓴 소화기 1개가 발견된 점으로 미뤄 화물칸에 실려있던 가스버너에서 발화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2010년 9월3일 화물기인 UPS항공 006편도 홍콩에서 출발, 두바이에서 화물을 환적하고 독일 쾰른으로 가려고 했지만 이륙 도중 화재가 발생해 추락, 탑승했던 승무원 2명이 모두 사망했습니다. 사고조사 결과, 추락 화물기는 홍콩에서 두바이까지는 문제없이 운항했지만 두바이에서 환적한 화물 중에 탑재 신고를 하지 않은 리튬 전지가 포함돼 있었는데 이 리튬 전지에서 발화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내 가방 속에 든 라이터 하나가 나뿐 아닌 모두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습니다. 비행기 타면서 수하물 금지 물품이 발견되면 공항에 보관하거나 택배로 부칠 수 있습니다. 그로 인해 지체되는 약간의 시간과 불편만 감수하면 보다 안전한 여행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김종화 기자 justin@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