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MR, 눕방 등 저자극 콘텐츠의 유행
‘자극적이다’는 것은 어떤 외부의 작용이 감각이나 반응을 일어나게 하는 성질이 있다는 의미로 쓰인다. 보통 매운 음식, 강렬한 소음, 눈에 띄는 것, 흥분을 유발하는 것들을 자극적이라고 표현한다. 우리의 일상은 각종 자극으로 가득하다. 어떤 자극에 의해서 생각과 감정이 요동치고, 긴장과 불안을 느낀다. 긴장한다는 건 곧 편안하지 않은 상태이자 경직되어 있음을 뜻하고 이는 현대인이 흔하게 느끼는 감각이기도 하다. 최근 과도한 자극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 특히 젊은 연령층 사이에서 ‘저자극주의’라 불리는 종류의 콘텐츠가 인기를 얻고 있다. 일상에서 받은 자극들로 피로해진 심신을 특정 콘텐츠를 접하는 순간만큼은 이완하고 안정할 수 있다.
ASMR(자율감각 쾌락반응)
유튜브 채널 'DANA ASMR'(오), 'SOY ASMR'(왼) 영상 캡쳐 |
ASMR은 유튜브가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한 2-3년 전부터 등장하여 아예 하나의 큰 영상 분류로 자리잡은 콘텐츠다. ASMR이란 조용하고 반복적인 소리 혹은 부드러운 시각적인 움직임을 통해 뇌를 자극해서 심리적인 안정과 편안함, 수면을 유도하는 영상이다. ASMR의 영역은 단순히 속삭임, 자연의 소리, 사물을 만지는 소리의 반복에 국한되지 않고 점차 다양하게 확대되고 있다. 영상 제작자가 잠이 오는 특정한 상황을 가정해 직접 연기를 하기도 하고 음식을 먹는 ‘먹방’을 소리 위주로 ASMR화 하거나 신체의 소리, 그림 그리는 소리 등 소재가 무궁무진하다.
특히나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은 ‘슬라임’이라고 불리는 마치 찰흙처럼 자유자재로 만지며 놀 수 있는 장난감을 이용한 ASMR이다. 슬라임은 끈적하면서도 말랑한 촉감과 만질 때마다 소리가 나는 것이 특징이다. 이런 단순한 장난감이 화제가 된 이유도 말없이 슬라임을 만지고 소리를 들려주는 영상이SNS 상에 활발히 올라오면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기 때문이다.
ASMR의 유행으로 각종 콘텐츠 제작사에서는 ASMR과 예능, 오락을 접목시킨 콘텐츠를 생산해내고 있다. 인기있는 연예인이 엄마가 잠든 사이 몰래 야식을 만들어 먹는다는 컨셉으로 직접 마이크에 대고 최대한 작게 소리 내며 미션을 수행하는 ‘엄마가 잠든 후에’, 새로 나온 곡의 가사를 해당 가수가 속삭이듯이 읽는 ‘ASMR live’, 각종 ASMR 상황극과 동화 읽어 주는 ASMR 등이 있다.
스타들이 누워서 방송을? 눕방
네이버 v live 눕방 태연 편 캡쳐 |
‘눕방’은 ‘누워서 하는 방송’의 줄임 말로 출연자들이 누워서 진행하는 방송 프로그램을 이르는 말이다. 지난해 9월 네이버 V라이브에서 시작된 눕방 콘텐츠는 그날의 방송 주제와 게스트에게 어울리는 분위기로 꾸며진 공간에 게스트가 편안하게 누워서 시청자들과 댓글로 소통하는 방송이다. 연예인의 근황이나 활동 소식을 알리고 팬들과 소통하는 방송은 매우 많지만 보통 인터뷰나 오락성을 띤 예능 형식의 연출이 대부분이다. 네이버 관계자는 “연예인들이 자신의 공간에서 일상을 공유하고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눈 때 호응이 가장 좋았다”며 눕방 콘텐츠를 기획하게 된 의도를 밝히기도 했다. 매 회 컨셉트에 맞는 공간 연출과 자극적이지 않은 흐름으로 누워서 조곤조곤하게 진행되는 라이브 방송은 연예인과 팬이 자유롭고 편안하게 소통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주었다. 누운 자세는 편안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고 에너지가 적게 쓰이는 자세로 보는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이완이 되고 부담스럽지 않다.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이 편안한 차림으로 누워 방송하는 모습은 흥미를 끌 요소로도 충분하다.
눕방 시간은 매 주 일요일 밤 11시로 한 주의 고단함과 피로가 쌓여 있을 시간대다. 시청자들은 똑같이 침대에 누워 눕방을 시청할 수도 있고 옆에서 실시간으로 대화하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하루를 마무리하고 잠들 수 있다. 눕방 라이브는 사적이고 편안함을 추구하는 공간인 방 안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꿀잠 유도 방송’이라는 수식어를 내세우기도 한다. 재미를 위해 방송을 시청하면서도 특정 시간대에 가장 편안함을 느끼고자 하는 시청자의 욕구에 부응할 수 있는 저자극 콘텐츠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무無자극 컨텐츠 연구소
페이스북 페이지 무자극 컨텐츠 연구소의 게시물 |
‘無자극 컨텐츠 연구소’는 페이스북 상에 개설된 페이지이다. 앞서 언급된 저低자극주의에 이어 아예 자극이 없는 콘텐츠를 연구한다니, 대체 어떤 페이지인지 궁금해진다. 페이지의 이름처럼 올라오는 게시물은 특별히 재미있거나 특이한 것이 아닌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과 간략한 설명이 전부이다. 반찬으로 나온 상추, 휴지, 김치통과 단무지, 길거리에 세워진 간판 등 어떻게 보면 너무 친숙해서 왜 올렸는지 모를 무의미해 보이는 사진들이다. 하다못해 어떤 사연이라도 담겼나 했더니 사진의 설명도 ‘상추입니다.’ ‘카페에서 받은 휴지입니다.’ ‘외가에 걸려있는 가훈입니다.’와 같이 무미건조한 말투인데다 사진에 담긴 내용물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무자극 컨텐츠 연구소가 집필한 책 '無자극' |
그냥 어느 곳에 존재해 있는 일상 속 오브제를 올리는 데 열중한 이 페이지는 ‘자극 없는 청정피드’를 지향하며 어느새 5만 명이 넘는 구독자가 생겼다. 페이지 제작자는 거창한 목표보다는 그저 자극적인 것의 반대인 무 자극적인 것을 소개하려는 의도로 사진을 올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몇몇 인터뷰에서 독립출판 형태로 아무 생각 없이 읽을 수 있는 사진집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는데, 현재 페이지에 올라온 사진과 기록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출판하는 프로젝트를 텀블벅으로 진행중에 있고 이미 목표 금액 400만원을 훌쩍 넘은 상태다. 페이스북 피드에서 시작해 출판물로 까지 제작되어 자극의 균형을 찾겠다는 콘텐츠의 목표에도 한 걸음 다가서고, 이로써 사람들에게 더 가까이 무자극을 선사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까지 소개한 콘텐츠들의 키워드는 일상적, 편안함, 안정감, 친밀함으로 정리할 수 있다. 콘텐츠라는 것은 기획과 제작을 거쳐 소비자, 구독자에게 전해진다. 자주 불안하고, 불안해하는 데에 지속적으로 감정을 소모해서 피로해지기 쉬운 현대인들은 잠시나마 이것을 대처할 방법을 찾게 된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 이미 만들어 놓은 콘텐츠를 접하면서 저자극을 원하는 개인의 욕구를 충족하고, 직접 나서서 뭔가를 하지 않더라도 대리로 안정을 취할 수 있다. 이것이 저자극의 콘텐츠화가 주는 가장 큰 장점이자, 사람들이 저자극 콘텐츠를 끊임없이 찾게 되는 이유다. 자극에 지친 사람들에게는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큰 노력이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것들이 반갑기 마련이다. 콘텐츠 시장은 갈수록 반응과 피드백이 활발하고 트렌드에 빠르게 반응하는 만큼 앞으로 더 신박하고 다양한 포맷의 저자극 콘텐츠가 생산될 것으로 보인다.
사진 출처 : Youtube, 네이버 V live, 페이스북 페이지 '無자극 컨텐츠 연구소'
최은별 에디터 nody03@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