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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이 가기 전에, 8월의 크리스마스

8월이 가기 전에,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어느덧 찜통 같은 계절, 여름이 왔다. 덥다, 습하다 등의 말들로 여름을 표현해볼 수 있지만, 그래도 여름은 여전히 싱그러움의 대명사다. 겨울의 앙상한 나뭇가지들은 어느덧 짙은 녹색의 잎들로 채워졌다. 좋아하는 과일들을 에이드나 스무디로 시원하게 즐기며, 가끔 바다에서 재밌게 뛰노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 서늘한 에어컨 바람에, 얇은 이불을 덮고 누워 침대 위에서 휴식을 보내는 것도 여름만의 즐거움이다. 학생들에게는 방학이 되었으니 이만큼 행복한 계절도 없다.

 

사시사철 보는 거라지만, 이런 여름날에는 역시 영화를 봐야 한다. 지나가는 장마에 집밖에서 질척거림과 끈적임 등을 느끼는 것보단, 창밖 빗소리와 겸해지는 실내 영화를 즐기는 것이 좋다. 그저 똑같은 매일로 느껴질 여름날을, 영화는 ‘훨씬’ 특별한 하루로 만들어줄 것이다. 어쩌면 ‘훨씬’을 넘어, 내가 가장 꿈꾸는 여름날을 만들어줄지도 모른다.

 

여름이 돌아올 때면 어김없이 꺼내보는 영화를 다시 꺼냈다. 푸르러서 더 애틋한 영화. 빗줄기가 땅을 적시듯, 보는 이의 마음을 적시는 영화. 우중충한 빗구름마저 사랑스럽게 비추는 영화. 그러면서도 잠 못 드는 열대야, 그 속의 우리 모습을 그려낸 영화. 8월이 되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다.

8월이 가기 전에, 8월의 크리스마스

4월이 되면 이와이 슌지 감독의 ‘4월 이야기’가 떠오르고, 9월이 되면 고형동 감독의 ‘9월이 지나면’이 떠오른다. 어김없이 8월에는, 허진호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가 떠오른다. 같은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유독 8월이 되어 보는 ‘8월의 크리스마스’는 남다르다. 애틋함과 절절함, 그리고 담담함. 갈라진 마음을 촉촉이 적셔주는 ‘훨씬’ 특별한 느낌이라고나 해야 할까.

8월이 가기 전에, 8월의 크리스마스

8월의 크리스마스(Christmas In August, 1998)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나는 긴 시간이 필요한 사랑을 하고 있다.

"시한부". 한 때 드라마 단골 소재였던 그 설정에서 1998년, 8월의 크리스마스는 시작된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시한부가 가져오는 것은 슬픔, 헤어짐이 아닌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의 애틋함과 절절함이다. 영화 속 한석규의 담담한 표정, 그 표정을 담는 롱테이크는 너무나 절절하면서도 담담하다. 그의 사랑은 비록 사라졌지만, 마치 잔이 놓여있었던 테이블의 물 자국처럼 너무나 선명해서 더 애틋하다.

8월이 가기 전에, 8월의 크리스마스

군산의 초원 사진관, 그리고 1998년의 여름은 그 애틋함을 배로 높인다. 내리쬐는 햇빛과 이따금 내리는 비. 언제 시작될지 모르는, 예고 없는 사랑과 그 날씨가 매우 닮았다. 시한부인 주인공에게 예고 없이 사랑이 시작된 것처럼. 필름영화라는 점도 한 몫 한다. 1998년 영화, 초원 사진관을 담는 필름은 현재의 디지털보다 선명하지 않다. 그러나 누군가의 사랑을 떠올리기 적합할 만큼 풋풋하고 그리운 감성을 이끌어낸다. 여름 특유의 푸른 색감이 시한부의 사랑을 무엇보다도 파릇파릇하고 청초하게 그려내고 있다.

 

어느 날 새벽, 잠이 안와 무심코 킨 영화였는데, 보고 나서 여운이 남아 한동안 더 잠이 안 왔다. 우리나라 멜로 영화는, 이때의 허진호 감독에게 여전히 머물러 있다는 이동진 평론가의 말에 동의하는 여름밤. 작은 우산 속 두 사람이 참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8월이다. 8월이 가기 전에, ‘8월의 크리스마스’를 한 번 더 봐야겠다. 긴 시간이 필요한 사랑을 하고 있는 그처럼, 나도 이 영화를 느끼는데 더 긴 시간이 필요하다. 8월이 짧게 느껴질 만큼.

 

이주현 에디터 2juhyeons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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