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의 아이콘 마르셸 뒤샹전
Opinion
최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다녀왔다. 요즘 전시계의 핫이슈인 <뒤샹전>을 보기 위함이다. 집에서 출발해서 경복궁역까지 한시간, 경복궁역에서 미술관까지 10분. 도합 1시간 10분만에 나는 뒤샹을 보게 되었다. 이게 말이 되는 일인가. 뒤샹에 대해 잘 모르지만, 현대미술의 선구자로 칭송받는 그의 업적까지 모르는 것은 아니다. 교과서에서 처음 보고 나를 충격에 빠뜨렸던 그 희대의 변기 <샘>을 볼 수 있다니. 이건 안 보면 두고 두고 후회할 게 분명했다.
난해함은 나의 몫
항상 현대미술을 접할 때면 이런 생각을 한다. '이게 대체 뭐지?' 머리가 멍해진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여운이 남는다. 꼭 하나씩 꽂히는 작품이 생긴다.
머리는 이해하지 못 하지만 마음이 이해하는, 뭐 그런 아이러니한 감정이라도 있는 걸까? 현대미술은 정말 어렵다. 글을 쓰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어려운 걸 어려운 방식으로 표현하려니 어려움이 배가 된다.
고백하건데 이번 전시의 절반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스트레스를 받진 않았다. 어차피 예술작품을 이해하는 건 나의 몫이고, 나는 나의 머리가 허락하는 만큼만 이해하면 되는 거니까. 그렇지만 아쉬움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흔치 않은 기회인데, 내가 좀 더 많이 알았다면 보다 폭넓은 감상이 가능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先 전시 後 공부
거의 뭐 전시 먼저 보고 작가에 대해 공부하는 격이다. 그도 그럴게 작품들이 워낙 난해해서 눈앞에서 마주한 직후보다 차차 시간이 지날수록 생각이 많아지고, 감상의 폭이 넓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뒤샹의 작품들은 공통적인 메세지를 던지고 있었다. 형식의 틀을 깨버릴 것이다.
그는 이런 말을 했었다. "진리라는 건 없었다. 우리가 진리라고 믿는 것만 존재할 뿐." 예술의 벽을 무너뜨리고자 했던 자유분방한 작가의 작품들은 파격 그 자체였다.
피카소보다 어려운 그의 예술세계
뒤샹 -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 |
이번에 뒤샹전을 보며 처음 알게 된 사실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그가 체스에 열광했다는 것, 또 다른 하나는 그 역시도 25살때까지는 회화를 했었다는 것. 뒤샹의 그림 작품은 상상해 본 적이 없는 내게는 그의 회화 작품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물론, 그의 그림 또한 자신이 뒤샹의 작품임을 온몸으로 드러낸다. 난해하디 난해하다는 뜻이다.
그림을 한 번 본다. 이어 제목을 한 번 쳐다본다. 다시 한 번 그림을 본다. 또 다시 제목을 본다. 그림을 해석하기 위해서 온 두뇌를 풀가동시키다가 이내 포기하고 설명 글귀를 참조했다. 그제야 조금이나마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그는 선을 분해하는 작업을 좋아했다. 사람의 움직임을 선으로 기록해내는 것을 좋아했다.
이 작품은 말그대로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의 인물의 움직임을 선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선의 분해를 통해서 사람의 역동적인 움직임을 재현해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의 회화 실력보다도 이런 생각을 해내는 그의 상상력 자체가 더욱 놀랍게 느껴졌다. 충분히 논란이 될만한 작품임에도 자신의 생각을 소신껏 그림에 녹여낸 뒤샹, 그는 이 작품을 통해 현대 미술의 개념을 사람들에게 각인시키는 데에 성공했다.
레디메이드, 하나의 작품이 되다.
자신의 작품 '자전거 바퀴'와 함께 있는 뒤샹 |
Ready-made. 이미 만들어진 것들, 즉 기성품을 의미한다. 이미 만들어진 기성품들을 예술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고, 새롭게 배치해서 하나의 작품으로 탄생시키는 것. 이게 뒤샹이 탄생시킨 레디메이드의 개념이다. 즉 평범한 공산품도 어떠한 의미를 부여받느냐에 따라 예술작품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뒤샹의 뒤로 웬 자전거 바퀴가 보인다. 그것도 의자의 정 가운데에 박혀 있는 요상한 모양의 자전거 바퀴가. 그가 이러한 작품을 만든 것은 단순히 호기심 때문이었다. 부엌에서 사용하는 둥근 의자에 자전거 바퀴를 고정시켜서 바퀴가 돌아가는 것을 보고 싶다. 이게 이 작품이 탄생한 이유였다. 그의 타고난 호기심과 재치 넘치는 감각은 레디메이드라는 새로운 장르의 탄생을 알렸다.
물감 자체가 이미 레디메이드인걸요.
"예술가들이 사용하는 튜브 물감들은 제조된 생산물이자 이미 완성된 물건이기도 하다. 따라서 우리의 모든 그림들은 '도움을 받은 레디메이드'이다." 뒤샹의 유명한 말이다. 그는 이미 레디메이드인 물감을 통해 탄생되는 작품들에게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랬기에 형식의 틀을 깨버리고자 하는 자신의 소신을 이렇게 유머러스한 말로 표현해냈다.
희대의 변기, <샘>
'샘' |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소변기임에 틀림없는 작품 <샘>은 마주했을 때 연예인을 보는 느낌이었다. 너무 유명해서 이미 온갖 매체로 많이 봤던 연예인을 본 느낌. 신기하긴 한데 사진을 통해 너무 많이 봤던지라 정작 실물을 마주하니 별 감흥이 없었다. 하지만 작품이 주는 메세지가 워낙 강한지라 실제로 접했을 때의 감동은 잊을 수가 없다.
뒤샹은 뉴욕의 현대 미술을 위한 예술단체인 독립예술가협회를 구성하는 데에 일조했다. 그는 협회가 민주적인 방식으로 다양한 작품들을 수용할 수 있는가에 의문을 품어왔고, 이를 시험해보고자 1917년 열린 협회의 첫 전시에서 <샘>이라는 제목으로 평범한 화장실 소변기를 출품한다. 물론 자신의 이름은 가명으로 감춘채로 말이다. 조직 위원회는 결국 자신들의 투표를 통해 이 작품의 전시를 막았고, 뒤샹은 위원장직을 사임했다. 독립예술을 꾀하는 단체임에도 색다른 작품을 포용하지 못 했던 협회를 아무런 미련없이 박차고 나온 뒤샹. <샘>은 작품 자체보다도 작품의 다양성을 위한 뒤샹의 소신이 돋보였던, 알고 보니 더 뜻깊었던 작품이었다.
새로운 자아의 탄생
사람의 움직임을 선으로 분해하던 뒤샹은 하다하다(?) 자신의 자아까지 분해하며 새로운 여성 자아를 만들어냈다. 그녀는 바로 '에로즈 셀라비' 물론 이 이름 또한 뒤샹 본인이 새로이 붙여 준 이름이었다. 뒤샹, 아니 에로즈 셀라비는 성 정체성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한 움직임을 펼쳤다. 그녀의 성적인 코드가 가득 담긴 에로틱하면서도 유머러스한 작품들을 통해 고정된 성 정체성이 허물어지는 광경을 만나볼 수 있었다.
천재 아님 또라이
내 뒤에 서 있던 한 관람객이 말했다. '그냥 또라이 같다.'라고. 예전에는 미술관에서 그런 표현을 서슴없이 내뱉는 사람들을 보며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왜 저런 말을 입밖으로 꺼낼까라는 생각. 무의식 중에 미술관에서는 교양 있는 애티튜드를 취해야 한다는 그런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나보다. 나조차도 그다지 교양 있는 사람이 아니면서. 이제는 그런 사람들을 보며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표현할 줄 아는 솔직담백한 사람이라고 느낀다. 아까 말했듯이 나의 머리가 허락하는 만큼만 이해하면 되고, 내가 이해한 만큼 소신껏 즐길 수 있으면 그만이다.
유다원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