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리우드를 위해 태어나 헐리우드에 의해 죽은 배우
Opinion
배우 주디 갈란드의 이야기. ‘꿈의 공장’ 헐리우드의 인간착취에 대하여
Some~where~ O~ver the Rain~bow~
이 노래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코니 탤벗이 스타킹에 나와 부른 노래로 더욱 유명할지도 모르겠다.) 이 노래는 1939년 헐리우드의 전성기 시대에 MGM사에서 제작한 뮤지컬 영화, <오즈의 마법사>의 주제곡이다. 노래를 부른 도로시 역의 소녀, 주디 갈란드는 제 1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아역상을 수상하며 일약 스타덤에 오른다.
20편이 훌쩍 넘는 화려한 필모그래피를 자랑하는 배우이지만 그녀의 삶은 오히려 재난에 더욱 가까웠다. 주디 갈란드는 <오즈의 마법사> 촬영 당시 어린 여성이 주연을 맡은 데 대한 앙심을 품은 남자배우들로부터 무시, 성추행을 당했다. 장시간 지속되는 촬영에 주디 갈란드가 힘들어하면 영화 관계자들은 각성제를 먹였고, 촬영이 끝나면 다음 날 촬영을 위해 빨리 재워버리려고 수면제를 먹였다. 영화를 촬영하는 내내 주디 갈란드는 약물에 취해 있던 셈이다. 다이어트를 위해 하루에 수프 한 접시와 블랙커피 한 잔으로 버텨야 했고 식욕을 떨어뜨리기 위해 하루에 담배 80개비를 피울 것을 강요받았다. 영화관계자들에게 성 접대를 해야 했고, 자리를 주선한 사람은 다름 아닌 그녀의 엄마였다. 그녀의 엄마는 자신이 못 다 이룬 배우의 꿈을 딸을 통해 완성하고 싶어 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은 주디 갈란드가 미성년자 일 때 발생했다.
주디 갈란드는 1922년 미국에서 세 자매 중 막내로 태어난다. 빌보드 배우였던 아버지와 배우 지망생이었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나어 어릴 때부터 노래와 춤, 연기에 두각을 나타냈다. 3살 때부터 이미 언니들과 함께 ‘검 시스터즈’라는 그룹명으로 무대에 오를 정도였다고 하니 말 다했다. 13살의 어린 나이로 주디 갈란드는 전성기 헐리우드의 대표 영화사 MGM에 캐스팅된다.
(* 헐리우드 전성기 시대에는 배우들이 소속사가 아닌 영화사에 귀속되어 영화사가 만드는 작품에 출연했다. 요즘의 우리나라로치면 배우들이 '소속사'가 아닌 ‘명필름’, ‘외유내강’ 등의 '제작사'와 계약을 맺는 셈이다.)
하지만 그녀의 불행은 이때부터 시작이었다. 이미 눈치 챘겠지만, 그녀의 어머니는 매우 엄했다. (사실 ‘엄했다’를 넘어 ‘미쳤다’라고 말해도 무방할 듯하다.) 어머니는 주디 갈란드의 투정과 고충을 받아주지 않았고, 성공하려면 이 정도는 견딜 줄 알아야 한다며 더욱 매섭게 딸을 채찍질했다. 그리고 머지않아, 엄한 어머니로부터 유일하게 주디를 지켜주던 아버지가 작고한다.
왼쪽부터, 엘리자베스 테일러, 에바 가드너, 라나 터너 |
주디 갈란드는 당대에 최고 미녀 배우로 여겨지던 ‘엘리자베스 테일러’, ‘에바 가드너’, ‘라나 터너’와 끊임없이 비교되며 외모콤플렉스 또한 겪어야 했다. 하지만 뮤지컬이 활발하게 제작되던 헐리우드 전성기 시대에 주디 갈란드의 독보적인 목소리와 춤 실력은 그녀를 돋보이게 했고, 그렇게 주디 갈란드는 인생의 최대 기회이자 재난이었던 <오즈의 마법사>를 만나게 된다. 이 현장에서 그녀는 전 국민적인 인기와 함께, 그녀의 사인(死因)이 된 약물중독을 얻는다.
그 후로 <세인트 루이스에서 만나요>, <스타탄생> 등 헐리우드 뮤지컬의 한 획을 그은 작품들에서 뛰어난 존재감을 펼치며 그녀는 배우로서의 화려한 행보를 이어나간다. 하지만 ‘인간’, 혹은 여자로서의 주디 갈란드는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 주디 갈란드는 결혼생활에서조차 헐리우드가 그녀에게 남긴 어둠의 잔재에 고통 받아야 했다.
그녀는 결혼 후에도 과거의 성추행/접대, 약물중독, 노동력 착취로 인한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하여 자살시도를 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주디에게 다가온 몇 번의 사랑 중 첫 번째 남자, ‘아티 쇼’는 사랑이 무르익을 무렵 주디에게 외모 콤플렉스를 안겨준 미녀 여배우 ‘라나 터너’와 눈이 맞아 도망간다. ‘데이빗 로스’와의 사이에서는 임신까지 했지만 유부남이었던 데이빗은 이혼을 하겠다는 주디와의 약속을 깨버리고, 결국 홀로 남은 주디는 소녀 이미지를 유지해야 한다는 어머니의 강요에 못 이겨 반강제로 낙태를 선택한다. 그리고 그녀는 오래도록 죄의식에 시달린다. 부부의 연을 맺었던 ‘시드니 러프트’는 도박에 빠져 이혼했고, 부부의 연을 맺은 또 다른 남자 ‘마크 헤론’은 알고 보니 주디를 이용할 목적으로 접근했던 동성애자였다.
그녀가 이토록 많은 남자에게 상처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남자를 찾았던 이유는 외모 콤플렉스로 인한 낮은 자존감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해본다. 실제로 어린 시절의 주디 갈란드는 자신에게 관심을 주는 듯한 남자라면 누구든 가리지 않고 좋아하는 지경이었다고 한다. 스스로는 행복할 수 없었기에 행복하게 해줄 누군가를 끊임없이 갈구한건 아닐까 생각해본다.
주디 갈란드는 말했다. ‘MGM이 자신의 청춘을 뺐어갔다’고, ‘배우로서의 삶이 행복하지 않았다’고 말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는 타고난 배우였다. 주디 갈란드의 첫째 딸 라이자는 ‘엄마는 평소에는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가도 무대에 올라가면 완전히 딴 사람이 되어 버린다’고 말했다. 약물 중독과 트라우마, 실연의 아픔에 그토록 시달리면서도 (약물중독으로 인해 제안받았던 3개월의 휴식을 제외한다면) 별다른 공백기도 없이 쉼 없이 작품 활동을 해온 것을 보면 주디 갈란드는 분명 헐리우드를 위해 태어난 여인이다. 물론 헐리우드는, 그녀를 철저히 착취하다가 내버렸지만 말이다. 실제로 MGM은 약물 중독, 반복되는 결혼과 이혼으로 인해 건강도, 이미지도 나빠져 버린 주디 갈란드를 거의 내버리듯 계약을 해지해버린다.
그리고 그녀는 47살의 젊은 나이로 아파트 욕실에서 죽은 채 발견된다. 약물중독 때문이었다.
내가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이야기의 시점인 1930년대로부터 무려 70년 넘게 흐른 지금도 헐리우드의 거대 시스템에 의해 철저히 착취당한 주디 갈란드가 현재진행형으로 양산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콘텐츠 산업은 주디 갈란드 양성소라고 봐도 무방하다. 드라마 현장에서는 매 년 몇 명씩의 스태프가 살인적인 노동시간/환경으로 인해 목숨을 잃는다. 작가들은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선 시청자의 의견을 반영해 대본을 수정해야한다’는 제작사의 요구에 부합하기 위해 하루에 16시간 이상을 책상 앞에 앉아 마감의 압박감을 약물로 견뎌가며 꾸역꾸역 대본을 써낸다. 영화현장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온갖 욕설이 난무한다. 성희롱, 성추행, 혹은 성폭행 역시 흔한 일이고 ‘너 이거 어디 가서 얘기하면 두 번 다시 영화일 할 생각 하지도 마라’는 말에 힘없는 개인은 두려움에 몇 십 년 동안이나 상처를 품은 채 살아간다.
비단 콘텐츠 산업뿐일까. 2018년의 세상 또한 1930년대의 세상과 별반 다를 바 없이 시스템을 잘 굴리기 위한 개인의 희생을 당연시 여긴다. 가해자를 처벌하는 것보단 피해자와 목격자들의 입을 틀어막는 것을 우선시하고, 사회에서 주도권을 가진 자들의 손을 들어주기 위해 돈 없고 권력 없는 자들의 주장은 무시하고, 명백한 불의에 저항하라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식으로 처신하면 이 쪽 일 못해’라고 조언하는 사례는 너무나 많으니 굳이 나열하지 않겠다.
하여 내가 궁극적으로 던지고 싶은 메시지는 이것이다. 시스템이 먼저인가, 구성원이 먼저인가. / 돈이 먼저인가, 인간이 먼저인가. / 작품이 먼저인가, 만드는 사람들이 먼저인가. 그래도 희망적인 것은, 근 몇 년 간의 동태를 짚어보면 미세할지나마 아주 조금씩이라도 세상은 분명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변화는 ‘보다 공정한 세상’이라는 같은 목적을 가진 개개인들이 모여 일궈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난, 주디 갈란드의 이야기를 접한 당신이 만약 화를 냈다면, 당신의 존재만으로도 세상의 미래는 분명 밝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귀중하다. 그 무엇보다 귀중하다. 그 무엇도 인간보다 우선시 될 수는 없다고 난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주디 갈란드를 기억하며 이 글을 마친다.
박민재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