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명’ 홀로 남은 위안부 할머니의 시대의 증언
‘한 명’이 ‘한 명들’이 될 때
기억은 역사가 된다
‘한 명’은 1997년 단편소설 ‘느림에 대하여’로 데뷔한 ‘김숨’작가의 장편소설이다. 이 책은 ‘장편소설’이지만 316개의 주석을 달며 역사적인 부분을 증명하는 것에서 보이듯, 어려운 역사적 현실의 무게를 소설이라는 형식에 담아낸 것이라고 생각한다.
책의 첫 문장에서 말하듯, ‘세월이 흘러, 생존해 계시는 일본군 피해자가 단 한 분뿐인 어느 날을 시점으로 하고’ 있다. 우리나라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피해자는 238명이며, 이 중 현재 생존해 계신 분은 약 마흔 분 정도이다. 이것은 공식적인 기록이고, 스스로 피해자임을 밝히지 못하고 계시거나 말씀하지 못한 채 돌아가신 분들도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이 책의 주인공, 즉 화자는 마지막 생존자 ‘한 명’이 아닌, 자신이 일본군 피해자임을 밝히지 못한 공식적인 마지막 생존자 ‘한 명’을 바라보고 계신 할머니 ‘한 분’이다. 할머니는 부끄러워서, 아무도 자신을 마주하려 하지 않을까봐, 무서워서, 또 다른 다양한 이유들로 자신이 피해자임을 밝히지 못하고 위태로운 세월을 지내오신 분으로, 이야기 속에서 줄곧 ‘그녀’로 칭해진다.
자신이 피해자임을 숨기고 살아오던 주인공 할머니는, 책의 말미에 마지막 생존자를 만나기 위해 버스를 탄다. ‘그렇게나 만나고 싶어 했으면서도 막상 그이를 만날 생각을 하자 두렵고 떨린다’고 하시면서도, ‘여전히 열세 살의 자신이 아직도 만주 막사에 있다는 걸’ 깨달으면서도 마침내 용기를 내어 발걸음을 옮기신 할머니의 모습에서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기억’을 나도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길 수 있었다.
일본군 피해자 할머니들은 말 그대로 ‘피해자’이다. ‘피해자’는 ‘자신의 생명이나 신체, 재산, 명예 따위에 침해 또는 위협을 받은 사람’이다. 사람들이 피할까 걱정하고 과거를 부끄러워하며 지내야 하는 것은 이 분들이 아닌 가해자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일본군 피해자와 관련된 문제들로 고통 받는 것은 피해자들이며, 가해자들, 혹은 관련된 사람들과 2차 가해자들은 뻔뻔스럽게 거짓말을 해대거나, 자신들의 잘못이 아닌 것처럼,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잘 지내고 있다.
얼마 전 소녀상의 발에 뜨개질 한 양말을 신긴 사진이 화제가 되었다. 땅에 붙어 움직이지 못하는 발이 이 겨울을 보다 따뜻하게 날 수 있도록 직접 그 위에 뜨개질을 해두고 간 것이라고 한다.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해 준 훈훈한 소식이었다. 이렇게 점점 많은 사람들이 일본군 피해자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할머니들의 아픔을 함께 하고, 그 아픔이 온전히 치유될 수는 없겠지만, 그 날의 일로 고통 받는 것을 조금이라도 덜어내기 위해 행동하고 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상상할 수 없는 무자비한 당시의 일본군들의 행태와 끔찍한 행태에 책 읽기를 수차례 멈추었다. 당시의 상황을 글로 읽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아프고, 속이 울렁거렸기 때문이다. 이런 고난의 시대를 겪어 오신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우리 모두가 같이 ‘한 명들’이 되어 기억하고 계속해서 공유해 나날 수 있으면 좋겠다.
조리라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