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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의 르네상스부터 지금까지, 이정재의 길

최근 코로나19의 여파로 침체된 영화계 특히 상업 영화계에 들이닥친 후폭풍은 엄청났다. 관객들은 감염 위험에 대한 걱정으로 더 이상 영화관을 찾지 않기 때문에, 영화 상영자 측에서도 스크린에 영화를 걸지 않고 있다. 그중 최근에 효자 영화가 개봉했었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2015년 '오피스'로 신인감독상을 받은 홍원찬 감독의 지휘 하에 황정민, 박정민 그리고 이정재라는 화려한 라인업으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코로나19라는 특수한 상황이었지만, 성공적으로 개봉하여 2020년 9월 13일 기준 434만 명의 관람객 수를 보여줬다.

'다만악'이 흥행 가도를 달리면서 주연배우 이정재에 대한 소소한 관심이 쏟아졌다. 영화 내 그의 훌륭한 연기, 액션신뿐만 아니라 그의 옷차림이나 패션을 받아들이는 맵시가 빅뱅의 GD 같다며, 이정재가 49살임에도 불구하고 섹시함, 패션 센스 등에 많은 주목을 받았다.

그의 인기 그리고 연기력은 처음부터 남달랐을까? 당연히 현재 시점으로 보았을 때 그의 연기력은 극찬 받을 만 하다. 청룡영화상에서 신인상, 조연상, 주연상을 모두 석권한 배우임이 그의 연기력에 대한 보증이다. 그의 연기는 넓은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어떤 배역이 들어와도 찰떡으로 소화해내는 능력을 말한다.


하지만 옛 인터뷰를 보면, 본인은 스스로 연기가 부족한 것을 알고 있으며 또래의 다른 연기자들에 비해 다양한 역을 소화하기에 보다 적합한 비주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기에 한 가지 역할을 고집한다기보다는 다양한 색의 연기를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데뷔 이후, 야망을 가진 청춘, 고뇌하는 형사, 야비한 도둑, 성적 판타지가 있는 동사무소 직원, 언더커버 경찰, 속물 주인집 남자, 두 얼굴의 독립군 등 정말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해왔다.

하지만 본인이 연기에 부족하다는 것을 알다니? 지금 시선에서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다. 명실상부 충무로 대표 배우이기 때문이다. 이 인터뷰 내용을 이해하려면 그의 데뷔 시절로 함께 돌아가야 한다.

어릴 적 이정재의 꿈은 원래 배우가 아니었다. 미술에 흥미와 재능이 있었던 그는 건축 인테리어나 미술 쪽으로 직업 방향을 잡았다. 고등학교 시절, 미술 학원에서 입시교육을 받았지만 안타깝게도 성적이 따라주지 못해 미대 진학은 할 수 없었다고 한다. 대신 아트스쿨과 같은 직업 학교에서 인테리어와 건축을 따로 공부했다.


미술에 대한 그의 열정은 현재까지 남아, 여전히 연기 외에 흥미 있는 분야가 미술과 건축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직업 학교에서 관련 일을 공부하며 학원비를 벌기 위해 압구정동 카페에서 알바를 뛰었다. 하지만 보시다시피 훤칠한 키, 외모로 금방 매니저의 눈에 들었다. 그 후로 모델로 발탁되며 연예계에 발을 들였다.

그렇게 입문한 연예계에서 1993년 출연한 롯데 크런키 광고가 히트를 쳤다. 대중들에게 이정재란 사람을 각인하기에 좋은 등용문이었으며 이 광고 덕분에 '모래시계' 재희 역으로 발탁될 수 있었다는 후문도 존재한다.

이 광고로 찍게 된 '모래시계'로 그는 일약 청춘스타로 발돋움한다. '모래시계'라는 드라마 자체도 큰 히트를 쳤지만, 이정재가 맡은 배역인 백재희에 대한 열광은 실로 대단했다. 여주인공 고현정에게 일방적인 순애를 바치는 보디가드 역이었는데, 과묵함과 깊은 눈빛 연기가 인기의 이유였다.


사실 당시에는 이정재가 다른 배우들에 비해 경력이 없다 보니 연기력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했다. 그래서 감독 측에서는 대사를 많이 주지 않았던 것인데 의외로 이것이 대박이 났다.


과묵한 보디가드가 뒤에서 묵묵히 주인공을 지켜주고 이루어지지 못할 사랑을 지키다가 목숨까지 바친다는 설정 때문에 주인공인 최민수나 박상원보다 더욱 인기를 얻게 되었다고 한다.

이대로 쭉 스타가 될 것 같았지만, '모래시계' 이후에 입대하였다. 그래도 입대 이후에 여러 국방홍보영화의 주연을 맡아 배우의 길을 이어갔다. 특히 배창호 감독의 '젊은 남자'에 출연하여 근육질의 몸매를 과시하면서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남자의 몸짱 열풍을 일으키키도 한다. 당시 포스터에는 그의 상반신 근육질 몸매가 드러나있었는데 젊은 여성 팬들에 의해 거리 포스터가 다 뜯겨져 품귀현상을 빚어 내기도 했다고 한다.

군 전역 후에 다시 배우의 길을 걷게 되었지만, 이른 슬럼프가 왔다고 한다. 연기에 대한 회의와 이 길이 맞는지에 대한 의문 그리고 설상가상으로 당시 소속사의 부도로 자신이 그 빚을 다 떠안게 되어 심적으로 힘들었다고 그는 말했다.


그가 진심으로 연기가 즐겁다고 느끼기 시작한 것이 1999년 지금의 절친 정우성과 같이 찍은 '태양은 없다'부터라고 한다. 그 이후로 정우성과 마음이 잘 맞았는지 현재까지도 연예계 대표 절친으로 지내고 있다. 또한, '태양은 없다'로 1999년 청룡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한다. 당시 후보로는 최민식, 한석규, 박중훈, 최민수 같은 대배우였는데 이정재의 당시 나이 27세로 청룡영화제 최연소 남우주연상 수상자로 남았다. 그 기록은 여전히 깨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청룡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탄 이후로 그에게도 암흑기가 찾아온다. 물론 계속 작품 활동은 이어나갔다. 이영애와 찍은 '선물', 이범수와의 '오!브라더스', 장동건과의 '태풍' 등 엄청난 푸쉬와 홍보를 기반으로 활동을 했지만 그렇게 히트가 난 작품은 없었다. 계속되는 실패에 1999년부터 2009년까지 무려 10년 동안 흥행 부도수표라는 말까지 들으며 암흑기를 보냈다.


그러나 2010년 임상수 감독과 손을 잡고 연기 변신을 시도했다. 그리고 그것이 통했다. 전도연, 윤여정과 함께한 '하녀'는 이정재에게 선물 같은 존재였을 것이라고 감히 생각한다. 사실 영화 자체의 평가를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지만, 배우들의 연기만큼은 관람객들을 흔들기에 충분하다는 평을 받는다.

그 후로 성공 가도를 달리는 배우가 되었다. 천만 영화의 '도둑들'부터 '신세계', '관상'까지. 10년간 갈고 닦은 연기력과 압도적 분위기, 중후한 매력을 뽐내는 연기력 기반 꽃미남 중년 배우가 된 것이다. 또한 이정재 하면 생각나는, '관상'에서의 수양대군 역은 누구나 잊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이정재의 수양대군은 러닝타임의 반 정도만 출연하였지만, 주인공인 송강호를 압도하는 존재감으로 특히 그의 등장 신은 한국 영화 역사상 가장 매력적인 등장 신으로 불리운다.


사실 영화 내부에서도 등장씬에 대한 많은 힘이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그 장면에 쓰인 음악이 영화에서 가장 많은 돈을 들였다고 이병우 음악감독은 말했다. 사실 '관상' 자체는 흥행작이지만, 평이 엇갈리기도 하고 지루하다는 평도 많지만 이정재의 수양대군에 대한 연기는 호불호가 갈리지 않고 만장일치로 호평이 일색 하다.

이후 2015년 영화 '암살'을 만나면서 천만 영화를 두 편이나 가진 배우가 되었다. 암살에서 두 얼굴의 임시정부 요원 염석진 역으로 나오는데, 역할을 위해 15kg이나 감량했다고 한다.


같이 영화를 찍은 조진웅이나 하정우의 증언에 의하면, 촬영이 끝나고 배우들끼리 밥을 먹을 때 김치를 물에 씻어 먹거나, 촬영 후 같이 술을 마시자고 해도 걸대 마시지 않는 등 엄청난 자기관리를 보여줬다고 한다. 또한 염석진의 불안하고 날카로운 심리를 표현하기 위해 실제로 48시간 무수면 상태에서 촬영을 진행했다고 한다.


이후에도 '인천상륙작전', '대립군', '신과함께', '사바하' 그리고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를 찍으며 계속되는 연기 활동이 돋보인다.

이정재는 이미 보증된 배우이며 그의 연기력은 아무도 무엇이라 평할 수 없는 경지까지 오른 배우이다. 그럼에도 그가 데뷔한 1993년부터 2020년까지 그는 쉬지 않는다. 끊임없이 새로운 연기에 도전하고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연기에 임한다. 벌써 28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지만 그의 연기에 대한 열정은 그 누구도 의심할 수 없다.


다작 배우이면서 믿고 보는 배우 이정재는 이제 흥행 보증 수표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다. 우리의 바람대로 그가 앞으로도 그의 열정을 잊지 않고 계속 배우 활동을 이어가 한국 영화 역사에 길이 남을 노년 배우, 원로 배우가 되길 희망하는 바이다.


김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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