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리채플린의 '위대한 독재자' 그리고 바그너와 브람스
영화사상 가장 위대한 코미디언이라 불리며 특유의 희극적 비판정신으로 주옥같은 명작들을 남긴 찰리채플린. 우리는 콧수염을 기르고 코믹한 표정을 지으며 우스꽝스럽게 움직이는 모습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그의 위대한 작품들 중 하나인 『위대한 독재자』는 찰리 채플린이 1인 2역으로 등장하며 그의 최초의 유성영화이고 아돌프 히틀러와 나치즘에 대한 풍자가 담겨있다는 점에서 영화사적으로 매우 큰 의미가 있는 작품입니다. 찰리채플린은 음악적 재능과 감각을 가진 인물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요, 저는 특히 이 영화에서 채플린이 삽입한 음악이 시사하는 바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 역할을 맡고 있는 인물은 유태인 이발사입니다. 이발사라는 직업은 '미다스왕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이야기에서 왕의 귀에 관해 고발하는 사람, 즉 왕이 가진 치부, 실체를 폭로하는 인물의 직업입니다. 이 유태인 이발사는 특정한 인물을 나타낸다기보다는 그 시대를 살아가던 불특정 다수의 유태인을 대변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 명의 주인공인 독재자 힌켈입니다. 그는 세계정복의 꿈을 꾸며 유태인들을 탄압하는 인물이고, 독일의 정치가이자 독재자라 불리는 아돌프 히틀러로 치환됩니다.
이야기가 전개되는 중에 힌켈이 세계지도가 그려진 커다란 지구의를 가지고 놀면서 황홀경에 빠지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것은 그가 세계 전체를 독재하는 것에 대한 이상을 품고 있다는 것을 은유적으로 보여줍니다. 이 때 배경으로 흐르는 음악이 바로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그린’의 1막 전주곡입니다.
영화 속에서 힌켈이 지구의를 가지고 놀면서 게르만 민족의 세계 제패를 꿈꾸었던 것처럼, 바그너 역시 오페라 ‘로엔그린’을 통해서 강력한 독일 민족을 꿈꾸었습니다. 낭만주의 시대에 바그너의 음악을 처음 접한 청중들은 극도의 반음계와 강렬한 음향에 공포를 느꼈다고 합니다. 실제로 그의 작품에는 당시 유태인을 비하하는 대본, 연출이 들어가 있고 아돌프 히틀러가 그의 음악에 심취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히틀러는 바그너의 ‘로엔그린’을 관람 한 후 바그너의 음악에 빠졌고, 이후 나치의 집회는 매번 ‘마이스터징거’ 서곡 연주로 문을 열게 됩니다. 가두 행진 시에는 바그너의 ‘순례자의 합창’을 틂으로써 히틀러가 순례자이고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을 구원해 줄 선지자로 믿게 하는 등 독일인을 하나로 뭉치게 하고, 독일인 우월주의를 세뇌하고자 바그너의 음악을 철저하게 이용하였습니다.
힌켈과 지구의 장면에 이어 다음 장면에서는 유태인 이발사가 손님에게 면도를 하고 있습니다. “행복의 시간입니다. 당신의 일을 기쁨으로 만들어 보세요.” 라는 멘트와 함께 이번에는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제 5번이 흘러나옵니다. 헝가리 무곡은 집시 음악입니다. 집시들은 사회적으로 핍박받는 소외 계층이었고 ,유태인뿐만 아니라 집시들도 나치에 의해 많이 희생되었습니다. 채플린은 영화를 통해 오랜 세월 동안 역사적 희생양이 되었던 집시와 유태인, 두 소외 계층을 대변합니다. 찰리 채플린의 『위대한 독재자』가 소외된 자들의 영화인 것처럼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또한 소외된 자들의 음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힌켈과 유태인 이발사의 모습을 수많 음악들 중에 굳이 바그너와 브람스 음악을 배경으로 함께 보여준 것이 과연 우연이었을까요? 영화에서 대립되는 장면에 각각 두 작곡가의 음악을 사용한 것처럼 실제로 바그너와 브람스사이에는 갈등이 존재했습니다. 바그너는 브람스를 향해 ‘전통 속에 갇힌 인물’이라 혹평을 했고, 청중들은 바그너 지지 세력과 반 바그너 세력으로 나뉘어 싸움이 붙기도 했습니다. 신고전악파라 불릴 만큼 절대음악에 온갖 힘을 기울인 브람스와, 지극히 게르만 민족적인 성향을 보이고 혁신적이며 계몽적인 바그너의 음악이 대립한 것입니다. 독일인의 자긍심과 함께 나치의 영웅주의는 바그너의 음악으로, 그리고 히틀러가 당시 가지고 있던 철학과 예술관에 대립할 수 있는 곡으로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을 선택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위대한 독재자』에서는 음악뿐만 아니라 장면 하나하나에 많은 의미들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많은 질문은 던지는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오늘날까지도 영화사상 가장 위대한 연설로 평가되는 이 명장면을 마지막으로 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0341
[ 정나원 smiledanz@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