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의 뽀로로가 나타났다
펭귄, 대한민국을 뒤집어 놓으셨다
대한민국에 또 한 명의 펭귄이 나타났다. 이 펭귄은 랩도 하고 노래도 부르며 춤도 제법 잘 추는 만능 펭귄이다. 특기를 살린 크리에이터가 꿈인 이 동물은 소속사도 벌써 존재한다. EBS다. 초점 없는 눈동자, 벌어진 입, 갈라지는 목소리, 위압적으로 보일 만큼 큰 키. 소위 말하는 귀여운 캐릭터의 얼굴과는 대비된다. 그런데도 자꾸만 사랑하게 된다. <자이언트 펭 TV>의 펭수다.
모여라 딩동댕과 방귀 대장 뿡뿡이, 그리고 뽀롱뽀롱 뽀로로에서 수능특강까지 한국에서 태어나 자라는 동안 EBS 교육 방송을 접하지 못한 사람은 드물 것이다. 혹 EBS의 프로그램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해도, 위에 적힌 프로그램의 캐릭터 중 한둘은 다 본 적 있을 정도다. 그런 EBS가 텔레비전보다 스마트폰으로 유튜브를 보는 시간이 더 많아진 2019년도에 새로운 방식으로 시청자를 찾아가길 선택했다. 다소 성격이 거칠고 뻔뻔하지만 아이들에게는 친절한 이 펭귄은 쉽게 웃음을 일으키고 친근감도 불러일으킨다.
펭수는 남극에서 210cm의 큰 키 때문에 사랑을 받지 못해 헤엄을 쳐서 한국으로 왔다. 한국에서 노는 게 가장 좋은 동족 뽀로로가 큰 인기를 얻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자신도 월드 스타,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펭귄이 되고 싶어한다. 시력은 양쪽이 9를 넘고 요들송을 가장 자신 있어 한다. 어느 한 부분 연결되는 점이 없는데도 이 모든 게 합쳐지자 독특하고 재미있는 펭수라는 캐릭터가 나온다.
EBS에서 야심있게 선보인 유튜브 채널 <자이언트 펭TV>는 뿡뿡이처럼 탈을 쓴 캐릭터 펭수가 다양한 콘텐츠를 소화하는 장면을 촬영한 영상이다. 기존 방송에서 탈 캐릭터가 행동하는 장면을 녹화 후 캐릭터의 성우가 따로 녹음했던 것과 달리 <자이언트 펭 TV>에서는 탈을 쓴 캐릭터가 직접 말하고 노래하며 사람들과 소통한다. 최고의 크리에이터를 꿈꾸는 펭수의 특성상 후 녹음 방식이 부자연스러웠기 때문인지 다른 이유가 있는지는 모르나, 직접 말하므로 타 탈 캐릭터와 달리 몸동작이 크지 않는 두툼한 몸통과 짧은 팔로도 충분히 의사소통할 수 있다. 덕분에 어디에서든 자유롭게 구독자와 대화하며 영상을 찍는다. 소통을 중요시하는 유튜브에 잘 어우러지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펭수는 초등학생 이하를 겨냥한 듯한 직업 체험 학습, 초등학교 방문기, 고민 타파 등과 유튜브에서 흔히 올라오는 팬아트 그리기 대회, 언박싱 (상자를 개봉하는 행동), ASMR, 기존 음악의 커버곡 등 다양한 콘텐츠를 선보이고 있다. 하나의 장르를 선택해달라는 면에서 서바이벌 프로그램과 비슷한 ‘펭수쇼’나 아이돌 육상 대회의 콘텐츠를 패러디 한 ‘EBS 육상 대회’ 같은 영상은 TV 프로그램에서 차용한 듯 보인다.
처음부터 시청자 연령층을 10대부터 30대 이상까지 선택함으로써 기존 EBS가 주 시청자인 아이들의 교육상 방송하기 힘들었던 과한 말과 행동을 자유롭게 표현한다. 이런 모습은 늘 올곧고 건강한 말만 쓰던 EBS에 익숙해진 어른들에게 신선하게 다가온다. 그러면서도 기존 EBS 방송처럼 아이들을 위한 유익한 장면을 넣는 것에 신경을 쓴다.
‘팬아트’ 편을 보면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후반 ‘시상식’ 장면에서 나온다. 팬아트를 그리고 만든 모든 사람의 이름이 화면 속을 스쳐 지나간다. 어릴 적부터 무조건 1등과 2등, 3등에게만 상을 주는 것을 당연시 여겼던 사회에서 모두에게 상을 준다는 것은 잔잔하게 따스하다. 영상에 상을 받지 못하는 줄 알고 우는 어린 친구가 있는 것처럼, 어린아이들은 남들은 상을 받는데 자신만 받지 못하면 매우 속상해한다. 열심히 한 것에 대한 대가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고민 타파’ 편에서는 아이들의 고민을 해결해주며 빙수를 만든다. 빙수를 만들다 마지막 장면에서 펭수는 이런 이야기를 한다. "고민 중에 왕따에 관한 이야기가 대단히 많았다. 왕따는 자신이 잘못해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상대가 나쁘기 때문이다. 만일 주변 친구가 왕따를 당하고 있고, 나서기는 무섭다면 주변 어른에게 알리는 것도 나쁘지 않다. 고자질이 아니라 친구를 돕는 일이다."
하루의 절반을 학교에서 보내는 10대의 가장 큰 고민은 왕따다. 아이들은 외적인 폭력뿐 아니라 내적으로도 내가 이상해서 그러나, 정말 잘못한 게 있나 하는 고민을 계속하게 될 것이다. 이런 아이들에게 확고하게 네가 이상하거나 나쁜 게 아니다, 왕따를 시키는 아이가 있으면 내가 혼내주겠다고 말해주는 행동은 적어도 아이들의 내적 상처를 조금이나마 보듬어 줄 듯하다.
펭수의 인기가 널리 퍼진 것은 무엇보다 ‘EBS 육상 대회 편’이다. ‘E육대’에서 뚝딱이, 번개맨, 뿡뿡이, 뽀로로, 짜잔형, 당당맨, 먹니 등 추억의 캐릭터가 모두 모여 체육 대회를 하는 이 영상 역시 어릴 적 그들과 함께했던 어른들이 동심에 돌아간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세대 차이를 줄여주고 추억과 그리움, 그리고 세대 화합을 열어주었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럴 뿐만 아니라 95년도에 입사해 이제는 나이 지긋한 아저씨의 마인드가 되어버린 뚝딱이와 노는 걸 좋아하는 성격의 뽀로로, 파란색을 고집하면서도 영웅으로서의 면모를 꾸준히 보여주는 번개맨, 오랜 시간 함께 해왔기 때문에 특별하게 돋보이는 관계의 짜잔형과 뿡뿡이 등 각자 톡톡 튀는 캐릭터의 성향을 헤치지 않으면서 서로 부딪히고 화해하는 모습은 마치 어벤저스처럼 각자의 세계관에 갇혀있던 캐릭터가 한 곳에 만났을 때의 재미를 주고 있다.
염려되는 부분도 있다. 여전히 어린 아이들 역시 해당 채널의 구독자라는 점이다. ‘E육대’에서 똑딱이가 짜잔형에게 너는 몇 대냐, 내가 너보다 선배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자신만 보면 예의 바르게 인사했는데 버릇이 없다 등의 ‘꼰대’ 스러운 말을 한다. 비인간의 과녁만 유난히 큰 것에 불만을 표기하던 짜잔형은 그 말에 바로 문제가 없다고 말을 번복한다. 펭수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음악 장르를 선정하는 ‘펭수쇼’에서는 펭수의 실수로 의자가 쓰러지자, 나중에 그 의자를 발로 찬다. 이 외에도 이따금 물건을 던지는 둥 과격한 행동을 보인다. 이따금 펭수가 실수를 할 때마다 그 실수를 매니저 등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는 것도 문제다. 연령층이 어려질수록 모방의 위험이 쉽게 잇따른다. 특히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행동이면 더더욱 그렇다. 남 탓하기, 물건을 부수기를 배울 위험이 있다.
뚝딱이 캐릭터 자체가 장난꾸러기에 사고뭉치이기에 이러한 말을 장난으로만 삼고 넘어갈 수 있다. 종종 펭수가 보이는 폭력적인 부분은 아이들이 펭수를 보고 그런 점을 따라 한다 한들 대부분 진심이 아닐 것이며 이미 유튜브에 유출된 아이들이 더 자극적인 행위를 배운다는 점 역시 사실이다. <자이언트 펭 TV>의 어느 채널에 들어가도 보이는 댓글, EBS에서 교육 방송만 만들다 보니 한이 생겼다 보다. 억눌린 자아가 여기에서 터져 나오는 것 같다.
같은 글을 보면 마냥 문제를 제기하기 힘들게 느껴지기도 한다. 어찌 되었건 유튜브는 공식 EBS 방송이 아니며 좀 더 자유로울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유일무이한 어린이 교육 방송 프로그램 EBS에서 연 채널과 일반 개인이 연 채널은 무게감이 다르다. 아무리 유튜브 내 채널이라지만 EBS의 이름을 걸고 있다면 EBS의 명성에 흠이 가지 않도록 조금은 조심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뚝딱이의 경우 현재도 방송되고 있는 어린아이를 대상으로 만들어진 프로그램의 캐릭터이다. 아이들에게 어떻게 보일지 더더욱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이런 문제는 향후 <자이언트 펭TV>의 방향성과 연결된다. ‘E육대’를 보고 유입된 어른 구독자를 의식해서 더 자극적인 말투나 행동, 소위 말하는 ‘병맛’만으로 승부를 본다면 기존 주 구독자이던 어린아이들은 프로그램을 보기 적절치 않을 수도 있다. 만일 구독 연령층을 20대 이상으로 잡는다면 이러한 상황이 나쁘지 않겠으나, 그게 아니라 전 연령층으로 생각한다면 줄타기를 하듯 어린아이들에게 해가 되지 않는 면모와 어른들이 원하는 자극적인 면모에 균형을 잘 맞춰야 한다.
다행인 점은 금일 올라온 영상에서 뚝딱이의 ‘꼰대’스러운 말투에 대해 짚고 넘어갔다는 점이다. 뚝딱이의 아빠가 직접 나타나 펭수만큼 뚝딱이의 행태가 옳지 않다고 말하자 뚝딱이는 외로워서 그랬다고 말한다. 어릴 적 자신과 같이 놀았던 친구들이 이제는 20대, 30대가 되어 대학 생활을 하고, 일하고, 아이를 기르느라 바빠서 외로워 관심이 받고 싶었다는 것이다. 뚝딱이의 아빠는 이제 다른 사람들과 싸우지 말고 사이 좋게 지내며,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는 말과 함께 사라진다. 뚝딱이의 외롭다는 말이 어릴 적 뚝딱이와 함께 온갖 사고를 치고 지냈던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이 영상은 제작진이 뚝딱이의 행실이 조금은 과했다는 사실을 인지했기에 올렸다고 볼 수 있다.
아이만 성장하는 것은 아니다. 어른도 펭귄도 프로그램도 성장한다. 언제나 교육적인 면모만 보여줬던 EBS에서 이렇게 재미나고 신나며 추억에 퐁당 빠져들 수 있는 채널을 만들 수 있을 거라곤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걱정되는 부분은 수정하고 재미있는 부분은 좀 더 늘리다 보면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랑을 받는 펭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남녀노소 누구나 사랑하는 펭귄으로 성장해나갈 펭수의 행보가 기대된다.
무엇보다, 어린아이를 대상으로 잡은 영원한 적이자 동지 뽀로로와 달리 펭수는 전 국민을 타겟으로 노리고 있기 때문에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더욱 다양하다. 펭통령이 되는 날도 멀지 않아 보인다.
김혜원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