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유머를 더하다, 에르번 부름
사회나 인간의 존재에 대해서 항상 진지하게 접근할 필요는 없다.
미술관에 있는 수많은 작품들 속 유난히 눈길을 끄는 작품이 있다. 괜히 한 번 더 살펴보고 싶고, 카메라에 저장하고 싶은 욕구가 드는 그런 작품들 말이다.
사람마다 좋아하는 작품의 결은 다 다르겠지만, 최근 나의 눈길을 사로잡은 작품은 '유머'를 담은 조각품이었다. 최근, 오스트리아에 있는 알베르티나 미술관에 갔었다. 마지막 전시관에선 현대미술작품 전시가 진행중이었는데, 실험적이고 멋진 작품들이 많이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 관이라 그런지 나에겐 모든 작품들을 관심있게 살펴볼 에너지가 없었다.
그런데 그 수많은 작품들 속에서 지친 나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작품을 하나 발견했다. 웃음이 터져나왔다. 최근 본 작품 중 가장 '웃긴' 작품이었다. 이 작품에는 지친 사람의 발걸음도 멈추게 하는 힘이 있었다. 진지하고 심오한 예술작품들 속에서 이렇게 귀여운 작품을 보게 되니 더 신선했다.
이런 매력적인 작품을 만든 아티스트가 누굴까 궁금했다. 작가는 오스트리아 출신 현대미술작가, Erwin Wurm (에르번 부름)이었다. 그의 또 다른 작품들도 굉장히 신선하고 재미있는 것들이 많았다. 그의 작품을 보면서 심오하고 어렵게 느껴졌었던 예술의 세계가 친근하게 느껴졌고, 사람들에게 웃음과 활력을 주는 '유머'의 힘을 다시금 실감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내가 그의 작품을 통해 느꼈던 것처럼,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오래 기억에 남는 전시를 구성하기 위해선 '지친 사람들을 사로잡을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1분만에 작품을 만든다는 아이디어, 'One Miniute Sculp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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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리즈는 'One Miniute Sculptures'라는 타이틀대로 모델들이 주위에서 볼법한 평범한 물건을 가지고 1분동안 포즈를 취하며 몸으로 조각품을 표현한 것을 에르번 부름이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한 것이다.
일상적인 오브젝을 가지고 일분동안 저런 포즈를 취한다는 것이 쉬워보이지는 않는다. '1분이라는 정말 짧은 시간동안, 가장 빠른 방법으로 조각품을 만든다.'는 그의 아이디어는 그 과정이 단순할수도, 짧을수도, 웃길수도 있지만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조각품이란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물질만능주의를 향한 비판, 뚱뚱한 차
뚱뚱한 차, 뚱뚱한 집. 정말 귀엽고 재미난 발상이다. 사실 에르빈 부름 작품엔 'Fat'을 주제로 한 것들이 많다. Fat Car Series 같은 경우도, 실제 차 사이즈와 동일하지만, 폴리우레탄 폼과 스티로폼을 재료로 부풀고 뚱뚱한 모양으로 변형시켜 만들어낸 것이다.
그는 이 'Fat Series'를 통해 사람들이언제나 새로운 것, 보다 큰 것을 찾는 현대 소비사회와, 인간의 끝없는 욕망, 공허함을 은유적으로 비판하면서, 사회나 인간의 존재에 대해서 항상 진지하게 접근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말하는 듯 하다.
가끔은 이렇게 좀 어이없어도 재미있는 발상이 우리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주기도 한다. 재미있기 때문에, 웃기기 때문에 더 기억에 남는 작품이 되는 것 같다. 그의 작품은 엽기적으로 보여도, '유머'를 담고 있고, 그 유머는 그의 철학을 담고 있다.
나는 우리 주변에 좀 더 재미있는 것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정형화된 틀에 갖혀 한계를 염두해두는 것이 아닌,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더 자유롭게 사고하고, 삶의 순간순간의 '재미'를 느끼며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조어진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