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몸으로 가을 맞기
여름마다 늘 힘들지만 이번 여름은 특히나 힘들었다. 단순히 '더워서'라는 날씨 핑계를 대기에는 가슴 아픈 일들이 꽤 많았다. 에어컨이 신 처럼 받아들여지던 두 달 동안 무더위 속에서 한없이 비참하게 여겨지기도 했고ㅡ한결같이 더운 여름이 날마다 적응되지 않을수 있음에 진저리를 치기도 했다. 나만의 일이 아닐거였으리라 생각한다. 일기예보를 탓해보면서 내일은, 오늘은, 모레는 '더위가 물러날거야'라는 바램을 절반만큼만 믿어보면서 어느덧 우리앞에는 당황스러우리만큼 당당하고도 담담한 가을이 다가왔다.
반갑지만 아직은 낯설고, 낯설어서 조금은 어설프게 대하고 있는 가을에 관련된 그림을 조금 들여다보며ㅡ작년 가을 이맘때쯤에는 '나 뭐하고 있었지?'하며 다가온 가을만큼 낯설어진 자기 모습을 돌아보기도 하고, 앞으로 있을 내 삶 속 가을에 대해 생각해 보기도 하는 시간을 조금 가져봤으면 한다.
"Allotment with Sunflower Paris", 1887,Vincent van Gogh. |
반 고흐의 작품은 대다수 가을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 많다. 많은 작품들이 있었지만, 이 작품은 왠지 여름과 가을이 맞닿아있는 지점 속에서 그린 그림인것만 같다. 나이든 노인이 얼굴을 떨구고 있으며, 그 앞에는 커다란 해바라기가 고개를 떨구고 있다. 해질녘 노을빛이 적색빛을 띄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 해질녘의 끝 무리 같아 보인다. 쓸쓸한 풍경 속에서 늙은 여성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생각해보게 된다.
"No.5 no.22" ,Mark Rothko. |
추상화가들의 그림속에서 내가 아는 대상을 떠올리며 그림을 보는 것이 즐거울 때가 있다. 마크 로스코의 많은 멀티폼(Multi-form)의 겹 속에서 가을을 찾아내본다. 그의 네모 속 네모들과 그 네모들이 가지고 있는 속성들은 결코 단절되어있지 않다. 실제 로스코의 그림에서 느껴지는 에너지는 그가 말했던 작품의 유기성, 살아움직이는 듯 작품과 관객이 말을 주고 받는 듯한 에너지가 강하게 느껴진다.
Pablo Picasso , The Harvesters, 1907 |
추수를 하는 여자들과 남자들의 모습이 대단히 분주하고 바빠보인다. 옆에서 일을 도우고 있는 소들의 모습이 역동적이고 선이 제법 굵다. 남자의 겉선, 소의 겉 선과 같은 인물과 배경을 구분짓는 배경선은 파란색을 사용한 것이 나에게는 제법 특징적이게 느껴진다. 가을이 되니까 더 바빠질거야, 라는 선전포고 같기도 한 재미있는 그림이다. 담을 건 담아야하고, 버릴 건 버려야 하는ㅡ눈 크게 뜨고 맛있게 담가야 할 것을 스스로 챙겨야 할 시절임을 이야기한다.
그림에서 사진으로 넘어가, 좀더 생동감 넘치는 가을을 맞이해보자. 라이언 맥긴리의 사진은 아이슬란드 밴드인 sigur ros의 앨범표지로도 유명하다. 2013년도 우리나라에서 사진전이 열렸던 바도 있으며, 비교적 20-30대 젊은 층이라면 그의 사진이 익숙할 것 같다.
그의 사진에는 늘 사람들이 등장한다. '사람들'이라는 그룹단위의 사람들보다는 늘 한명 혹은 두명으로 배경과 사람 둘다 집중할 수 있는 여지를 두고 있다. 게다가 가장 눈에 띄는 건, 나체(naked)의 사람. 그리고 자연 속에서 마구 흐드러져 피어있는 사람의 모습이다. 그의 사진 속에서는 사람이 옷을 입지 않아도 어색하지 않다. 마치 다른 세계의 에덴을 표현한 것 같기도 하다. 가을이라서 가을을 느끼고 있는것이 아니라, 이미 다가온 가을에 내가 차츰 젖어들어가는 모습이다. 사진 속 사람은 가을을 온몸으로 맞아들이고 있다.
'가을 탄다' 는 말을 참 좋아한다. 가을을 말을 타듯, 어떤 것의 등에 올라타듯이 내 무게를 실어 탄다는 뜻으로 생각될 수도 있고 가을이 재가 되어 연기를 뿜듯 타게 된다는 말로 생각될 때도 있다. 가끔은 음료수에 설탕을 타듯이, 가을이라는 것 속에 나를 녹여내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여러모로 중의적인 이야기가 많아지는 로맨틱한 문장이다. 그래서 나는 가을타는 것을 격하게 찬성한다. 도로 위에 나무가 붉어오는 것도 쳐다보고, 하늘이 높아지고 구름이 자박거리는 것도 보고, 헤어진 연인처럼 하루아침사이에 낯설어져 버린 아침바람 밤바람을 쐬기도 하면서. 여름을 잘 이겨 내었으니, 우리는 충분히 가을을 잘 탈 수 있다.
[박유민 에디터 dbals454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