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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가미 나오코가 보여주는 슬로우 라이프

일본영화는 일본영화답게 특별하다.

 

일본 영화 중에는 특유의 힐링을 주는 영화들이 있다. 그런 힐링 무비를 만드는 일본 감독 중 한 사람을 소개하고자 한다. 바로 ‘오기가미 나오코’다. 오기가미 감독은 카모메 식당, 안경 등과 같은 슬로우 라이프를 내건 영화들을 만들어 왔다. 일본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오기가미 나오코의 영화를 한 번쯤은 봤으리라. 음식과 사소한 소품들이 영화 속에 비춰지며 보는 이에게 힐링과 편안함을 주는 영화들이다. 액션이나, 사건 같은 것들은 딱히 없다. 어쩔 수 없는 약간의 지루함도 존재한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기가미 감독의 영화는 더 의미 있다. 지루한 부분은 잠깐 졸다 봐도 괜찮다. 자다 일어나서 봐도 괜찮다. 바로 그것이 이 영화들이 말하고 있는 ‘슬로우 라이프’이기 때문이다. 다음은 그녀의 영화 다섯 작품 중 네 작품에 대한 필자의 소개이다.

카모메 식당

오기가미 나오코가 보여주는 슬로우 라

필자에게 가장 꿈과 같은 공간을 꼽으라 한다면, 바로 이 식당이라 하겠다. 카모메 식당! 영화 카모메 식당은 헬싱키에서 오니기리(일본식 주먹밥)을 연 사치에와 무작정 일본을 떠나온 미도리, 헬싱키로 오면서 짐을 분실한 마사코, 그리고 헬싱키에 사는(혹은 머무는) 손님들의 이야기다.

 

영화는 별다른 사건 없이 술술 넘어가는데, 누군가는 지루할지도 모르지만 필자에게는 오히려 편안함을 안겨줬다. 세상이 너무나도 각박하게 느껴질 때, 밥 먹는 것조차 기운나지 않을 때, 이 영화가 딱이다. 영화를 보면 지난 시간 느꼈던 무력함이 어색해질 정도로, 옛 만화영화가 그립고, 평범하지만 특별한 음식들이 그립고, 지금 살고 있는 곳이 아닌 장소에서 새 출발을 해보고도 싶을 것이다. 장황하게 여러 말을 하는 것보다, 색다른 스타일로 우리에게 여운을 남기는 영화다. 아래는 영화에 나왔던 대사 중 일부다.

하고 싶었던 일을 해서 좋은 게 아니라, 단지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을 뿐이죠.

매일 공장에서 찍어낸 것 같은 하루에 머물고 있다고 느껴진다면, 이 영화를 보고 기운을 되찾길 바란다.

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

오기가미 나오코가 보여주는 슬로우 라

‘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는 가장 최근에 나온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영화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관객들에게 아주 딱인 영화다. 이상하리만큼 고양이에게 인기 있는 주인공 사요코라는 인물이 외로운 사람들을 대상으로 고양이를 빌려주는 사업을 하는 내용이다. ‘빌려준다’라는 개념 자체가 고양이를 사물이나, 인간이 소유 가능한 존재로 본다는 점에서 매우 인간중심적이다. 때문에 ‘고양이를 외로움을 채워준다’는 생각보다 ‘서로를 채워준다’는 생각으로 보아야 가장 기분 좋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외롭고 무기력하다면, 외롭고 무기력하게 한 번쯤 볼 만한 영화다.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외로운 사람이 아주 많다. 구원받지 못한 슬픔이 아주 많다. 그래서 오늘도 외로운 사람에게 고양이를 빌려준다. 마음 속 구멍을 채우기 위해.

안경

오기가미 나오코가 보여주는 슬로우 라

안경은 카모메 식당 이후 오기가미 나오코가 두 번째로 선보인 슬로우 라이프 영화다. 카모메 식당과 같이 고바야시 사토미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타에코(고바야시 사토미)가 남쪽 바다의 마을 하마다로 여행을 떠나며 겪는 일들이 주 스토리다. 이 영화의 키워드는 ‘휴식’과 ‘사색’.

 

도시 속 사람들은 언제나 각박하게, 찡그리는 표정으로 매일을 살아간다. 일을 하는 매일과 하기 싫은 공부를 억지로 하는 1분 1초를 보내기도 한다. 가끔 딴 생각을 하는 자신을 발견할 때면 이를 사색이라 여기지 않고 ‘잡생각’이라는 말을 붙여 본인을 호되게 혼낸다. ‘놀다’라는 말은 사실 즐거운 순간을 가리키는 말인데, 어느새 우리에게 ‘놀다’는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하다’라는 뜻으로 쓰고 있다. 우리는 각박한 세상을 살면서 휴식은 부럽고, 사치로 여기면서, 편하게 사색하거나 노는 것은 낭비라고 생각하는 사고를 터득해버렸다. 그러나 휴식이라는 것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다. 사색하고, 맛있는 것을 먹고, 놀면 된다. 이는 나쁜 것이 전혀 아니다. 이 영화는 그런 것을 알려주는 영화다. 편히 사색하고, 휴식하라고 말하고 있는 영화. 그것이 바로 ‘슬로우 라이프’! 아래는 극 중 오묘기의 대사다.

우연히도 인간이라 불리며 이곳에 있는 나,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가? 무엇과 싸워 왔는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짐을 내려놓을 즈음, 좀 더 힘을, 부드러워질 수 있는 힘을. 무엇이 자유인지 알고 있다.

토일렛

오기가미 나오코가 보여주는 슬로우 라

토일렛 역시도 오기가미 나오코 특유의 잔잔한 힐링이 묻어있다. 영화는 주인공 레이가 화재로 인해, 영어를 할 줄 모르는 일본인 할머니, 공황장애를 가진 형 모리, 드세고 제멋대로인 동생 리사와 함께 살게 되며 시작된다.

 

영화는 가족의 사랑을 말하고 있는 것 같지만, 실은 우리 사회 전체에 통용 가능한 교훈을 가져오고 있다. 서로 달라도, 서로의 이유를 알지 못해도, 서로를 이해할 수 없어도, 심지어 언어조차 통하지 않아도, 우리는 반언어적, 비언어적 요소로도 충분히 이야기 나눌 수 있고, 서로를 사랑할 수 있고, 그리고 함께 살아갈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토일렛이 말하려던 것은 이해가 필요없는 사랑과 공존이 아닐까 싶다. 굳이 서로를 전부 알지 못해도, 이해 받을 필요 없이 서로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랑과 공존의 힘을 믿고 싶다면, 영화 토일렛을 보는 것을 추천한다.

 

일본영화의 잔잔함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특이한 사건도, 흥미로운 액션이나 소재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자는 지루해도 따뜻한 일본영화가 좋다. 특이한 사건이 없기 때문에, 흥미로운 액션이나 소재가 없기 때문에 일본영화는 일본영화답게 특별하다.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영화가 특히 그러하다. 판타지도 없고, 블록버스터도 없다. 다만 일상의 아기자기함만이 남아있다. 음식, 반려동물, 여행, 휴식, 가족…. 분명 일상이지만, 일상에서는 보기 힘들어진 일상이다. 조용하고 부드러운 영상들은 우리에게 일상의 소중함을 찾게 해준다. 그렇기 때문에 분명, 누군가에게 오기가미 나오코의 영화는 감동적이고, 재미있다. 일상의 소중함과 슬로우 라이프를 찾고 있는 독자라면, 지금 당장 이 영화들을 보기 바란다. 팝콘과 콜라보다 커피 한잔과 함께라면 더 좋을 것이다.

 

이주현 에디터 2juhyeons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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