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일까 범죄일까
Graffiti
그라피티
벽이나 그 밖의 화면에 낙서처럼 긁거나 스프레이 페인트를 이용해 그리는 그림.
그라피티, 스프레이 페인트를 이용해 건물의 벽 등에 그리는 그림. 흥미롭지만 평소 큰 관심을 가지고 있던 분야는 아니었다. 그라피티는 한국에서는 아직 생소한 분야이지만 외국에서는 하나의 거리예술로 인정을 받고 있다고 한다. 물론, 한국에서도 종종 홍대나 한강 근처에서 형형색색의 스프레이로 그려진 그라피티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아직 국내에서는 그라피티가 공공물을 훼손하는 낙서인지 예술의 한 장르인지에 대한 논란이 분분하다.
예술인가 범죄인가
특히, 최근 그라피티와 관련해 큰 논란을 일으킨 사건이 발생했다. "히드 아이즈"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는 그라피티 아티스트가 독일이 한국에 기증한 베를린 장벽에 스프레이로 그림을 그린 것이다. 그는 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을 담아 시민들이 그린 그림이 가득했던 서독 쪽 벽면에는 색색깔의 스프레이와 독특한 기호들을 그려 넣었고 탈출에 대한 감시가 심해 깨끗했던 동독 쪽 벽면에는 "날 비추는 새로운 빛을 보았습니다. 내 눈을 반짝여줄 빛인지"라는 문구를 써넣었다. 그는 직접 SNS에 작업물 사진을 게시하였고 분단국가인 한국의 현재와 미래를 위한 메시지를 표현했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이후 그의 활동은 큰 이슈가 되었다. 그는 자신의 행동을 예술이라고 표현했지만 베를린 장벽을 관리하던 중구청은 그를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은 그를 공용물건손상 혐의로 불구속 입건하였다. 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의견 또한 분분했다. 누군가는 그의 행위가 중요한 의미를 담은 역사적 유물을 훼손한 범죄라고 이야기했다. 한편, 누군가는 그라피티라는 장르가 가지는 특성을 들며 이 또한 하나의 예술행위라고 이야기했다. 예술과 범죄. 과연 그의 행위는 예술일까 범죄일까.
입장 1. 예술이다
2005년, 독일로부터 기증을 받은 베를린 장벽의 일부는 이후 서울 중구청이 관리를 하며 청계천에 전시되었다. 그러나 히드 아이즈의 활동으로 논란이 있기 전까지는 조금은 기괴해 보이는 돌덩어리 3개가 사실은 베를린 장벽이라는 것, 이는 분단의 아픔을 딛고 일어난 독일이 남북통일의 염원을 담아 기증한 것임이 사실상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한 사물이 매우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해도 이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면 과연 이를 전시하는 것을 예술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러나, 이번 사건은 분명 사람들의 관심 밖에 존재했던, 청계천에 전시되었지만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베를린 장벽의 존재와 의미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히드 아이즈의 행위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사람들이 이에 대해 관심을 갖도록 만들었고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었다. 어쩌면 기억 한편으로 밀려나 잊혀 있던 베를린 장벽을 다시금 사람들의 관심과 사유의 대상으로 끌어왔다는 것. 그것만 본다면 분명 히드 아이즈의 행위는 예술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입장 2. 범죄이다
베를린 장벽은 분명 '장벽'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서독 쪽 벽에 가득한 그림들과 그에 반해 붓 자국 하나 없이 깨끗한 동독 쪽 벽의 극명한 대비는 예술을 넘어서서 당시의 대비되는 사회적 분위기를 보여주는 역사적 상징물이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적 의미를 하나도 고려하지 않고 히드 아이즈는 자신의 생각을 보여주기 위해 서독 쪽 벽 그림들은 형형색색의 스프레이로 뒤덮어버렸고 깨끗했던 동쪽 벽에도 자신의 필명과 "날 비추는 새로운 빛을 보았습니다. 내 눈을 반짝여줄 빛인지"라는 문구를 그려 넣었다.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자유를 중시하고 사회에 메시지를 던지는 예술의 역할을 인지하고 있던 사람이라면 이를 표현하기 이전에 상징물이 가지고 있던 기존의 의미와 가치를 존중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새로운 메시지로 그 위를 덧칠하여 기존의 의미와 가치를 훼손시켰다. 의도가 어찌 되었든 콘크리트로 흡수된 스프레이로 인해 베를린 장벽은 복원도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다. 그냥 벽도 아닌 깊은 의미를 지닌 상징물을 스프레이로 덮어버린 것. 이는 분명 소중한 문화재를 훼손한 범죄 행위이다.
예술, 그리고 범죄
사실, 필자는 두 입장 모두에 어느 정도 동의하는 바이다. 히드 아이즈의 그라피티를 예술이라고 부르지 않을 수는 없지만 분명 동시에 그것은 불편함을 준다. 그렇기에 그의 행위를 예술과 범죄, 둘 중 하나라고 단언할 수가 없을 것 같다. 그저, 서울에 베를린 장벽이 있다는 것도 몰랐다는 필자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이를 알게 되어 조금 놀라웠고 이제는 그 옛 모습을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생각에 조금 서글픈 감정이 들었다.
이영진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