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의미를 새기다 : 타투
타투 : 살갗을 바늘로 찔러서 먹물 등의 물감으로 글씨, 그림, 무늬 따위를 새기는 행위
1.
스무 살이 되자마자 첫 타투를 했다. 머리를 묶고 다니던 나는, 단순히 잘 보일 것 같다는 이유로 귀 뒤에 타투를 하기로 결정했다. 사람들은 영원히 몸에 남는 것이니 신중하게 결정해야한다 말하지만, 나는 생각보다 쿨하게 결정했다. 친오빠가 좋아하는 문구로 레터링 타투를 하기로 계획했고 곧바로 친구의 지인에게 달려가 작업을 받았다.
‘지이잉-’ 진동과 함께 울리는 타투머신의 소리에 한껏 긴장됐다. 그냥 작업을 받지 말고 뛰쳐나갈까 생각도 했다. 돌이키기엔 이미 늦어버려서, 반쯤 넋이 나간 상태로 작업을 받기 시작했다. 아팠다. 하지만 생각보다 참을 만했다. 긴장이 풀린 나는 어느새 ‘있다가 뭐먹지.’, ‘빨리 집 가서 과제해야지.’따위의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살성이 완전 타투에 잘 맞네. 붓지도 않고. 그냥 온 몸에 다 해.” 마침 내 살은 타투에 잘 맞았다. 타투이스트 분은 우스갯소리로 온몸에 타투를 하라고 말씀하셨다. 불과 몇 분 전까지 두려움에 벌벌 떨던 나는 결심했다. 또 해야지.
2.
두 번째 타투는 쇄골에 받았다. 어쩌다 쇄골에 하게 됐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큰 타투를 하기엔 겁이 나서, 크기가 작은 타투를 하기로 결정했다. 과하게 겁을 먹었던 탓일까, 계획보다 훨씬 더 작은 사이즈로 작업을 하게 되었고, 그 결과 타투가 너무 작아서 눈에 잘 띄지 않았다. 결국 나는 추가적인 작업을 받기로 결정했다.
사실 맨 처음에 도안을 정할때 아무 생각이 없었다. 이유 없이 꽃에 꽂혀서, 그냥 꽃을 새겼다. 아무래도 의미가 더해지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추가적인 작업을 받을 때는 나름의 의미를 담았다. 친오빠의 탄생화인 겹벚꽃과, 나의 탄생화인 국화를 섞은 도안으로 새롭게 작업을 받았다. 덕분에 더 애착이 가는,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얻을 수 있었다.
쇄골에 받은 첫 작업 (이미지 출처 - instagram @moossang_tat) |
추가 작업을 받은 후 (이미지 출처 - instagram @moossang_tat) |
3.
가장 최근에 한 타투는 화이트 타투였다. 계획에 있던 것은 아니었다. 타투이스트인 친구의 작업실에 놀러갔다가 즉흥적으로 하게 되었다.
화이트 타투는 기존에 흔히 쓰이는 검정색 잉크가 아닌 흰색 잉크를 사용한 타투이다. 타투 머신을 쓰지 않고 직접 손으로 작업하는 핸드포크 방식으로 진행했다. 바늘 끝에 잉크를 묻힌 후 콕콕 찔러 작업하는 식이다. 그냥 간단하게 작은 십자가를 새겼다. (당시에 친구와 같은 위치에 같은 모양으로 타투를 했다. 타투이스트인 친구는 직접 자신의 손가락을 바늘로 찔러 작업했는데, 그 장면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묘했다.) 언뜻 보면 상처 같아 보이는데, 그것이 화이트 타투의 묘미가 아닐까 생각한다.
핸드포크 방식으로 작업한 화이트타투 (이미지 출처 - instagram @moossang_tat) |
지금은 네 번째 타투를 계획하고 있다. 내가 직접 그린 도안을 손목에 새길까 생각중이다. 장기적인 목표는(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고등학교때 함께 미술을 전공했던 소중한 친구들의 그림을 하나씩 팔에 새기는 것이다. 내 계획을 들은 친구들은 장난삼아 ‘그 타투들 때문에 늙을 때까지 계속 만나야겠네.’라 말했다. 그렇게 되면 좋을 것 같다-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만나진 못하더라도 계속해서 그 친구들을 기억할 수 있지 않을까.
[오혁이 좋아하는 거, 타투] (영상 출처 - 유튜브 채널 '딩고뮤직') |
가수 ‘오혁’은 스스로 무언가를 찾아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타투가 의미 있다 말한다.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의미를 담아 ‘직접’ 도안을 정해 타투를 몸에 새긴다. 이는 개성의 표현이며 주체적인 결정의 흔적이다.
위 영상 속에는 벌칙으로 타투를 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타투에 대한 인식이 과거와 얼마나 달라졌는지 알 수 있다. 이전까지는 타투, 문신은 조폭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질 나쁜 조폭들의 몸에 용과 잉어 따위의 문신이 빽빽하게 채워져 있는 모습이, 아마 ‘문신’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일 것이다. 때문에 타투나 문신에 대한 인식은 부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가수 서사무엘의 타투 (이미지 출처 - 크래프트앤준) |
가수 이효리의 타투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이미지) |
아이돌 가수 현아의 타투 (이미지 출처 - 큐브엔터테인먼트) |
하지만 미디어의 영향 때문인지 이제는 패션이나 개성의 표현 정도로 여겨진다. 대세 래퍼들, 배우들, 심지어 아이돌들의 몸에도 타투가 새겨져 있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이제 타투는 몸에 아름다운 흔적을 남기는 예술로서의 의미를 갖게 되었다.
타투의 역사를 살펴보면 꽤 흥미롭다. 정확히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6천 년 전부터 자신의 세력을 과시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기록에 따르면 이집트에서부터 시작되었으며 전 세계로 전파되며 종교적 의식의 일환, 신분과 계급의 표시, 부족을 나타내는 수단 등 다양한 형태로 발전해왔다.
우리나라의 경우엔 일본의 영향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신분과 계급을 표시하는 방편으로 사용되었으며, 고려, 조선시대에는 범죄자임을 알리기 위한 수단으로서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렇듯 타투는 정체성을 나타내기 위한 수단으로서 존재해왔고, 오랜 시간을 거쳐 예술로서의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부모님의 사진을 토대로 작업한 타투이스트 '도기'(이미지 출처 - instagram @tattooer_dogy) |
반려견의 사진을 토대로 작업한 타투이스트 '도기'(이미지 출처 - instagram @tattooer_dogy) |
꽃을 주요 소재로 작업하는 타투이스트 지화 (이미지 출처 - instagram @zihwa_tattooer) |
사진 속에 담긴 소중한 존재와 시간, 기억과 추억을 그려내는 타투이스트 도기, 꽃을 주 소재로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내는 타투이스트 지화 등 수많은 현대의 타투이스트들을 보면, 확실히 타투는 예술로서의 역할을 해내고 있는 것 같다. 이제는 타투를 하나의 예술작품이라 봐도 무방하다.
타투이스트 무쌍 (@moossang_tat)
예술로서의 타투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한 타투이스트와 인터뷰 아닌 인터뷰를 진행해 보았다. 사실 그녀는 필자의 친구이며, 나의 두 번째, 세 번째 타투를 작업해준 타투이스트이기도 하다. 홍익대에서 회화를 전공하고 있는 그녀는, 나를 처음 만난 17살, 아니 그보다 훨씬 전부터 예술을 항상 곁에 두고 지냈다. 계속해서 그림을 그리며 작품 활동을 하던 그녀는 대학 입학 후 타투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매번 만날 때마다 작업에 대한 열의와 애정을 보여준 그녀와 타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Q. 닉네임 ‘무쌍’의 의미는?
A :본명을 걸고 작업하고자 했으나 본명이 너무 흔한 관계로... 이름과 다를 바 없는, 나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하는 것 중 하나(無쌍커풀)를 택했다. 그만큼 속임 없이, 꾸밈없이 솔직하게 작업하겠다는 뜻을 담았다.
Q. 타투를 하게된 계기는?
A : 막연히 어렸을 때부터 관심이 있던 분야이기도 했지만,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또 다른 ‘매체’를 새로 알게 되었다는 점에 사로잡혔던 것 같다. 처음 머신을 잡았을 때 머신을 너무 못 다뤄서 망친 그림을 보고 충격과 희열을 동시에 느꼈던 기억이 난다. (신생아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Q. 어떤 스타일을 추구하는가?
A : 그림을 그릴 때 연필의 느낌을 너무 좋아해서 스케치북에 드로잉하는 것을 즐겨했었는데, 드로잉한 느낌 그대로 작업하는 것을 추구한다. 선명한 잉크로 확실한 선을 긋는 것이 아니라, 흐리면서도 힘이 있는 연필의 매력을 타투로 옮겨보고 싶다.
드림캐쳐 (이미지 출처 - instagram @moossang_tat) |
마이클 잭슨 (이미지 출처 - instagram @moossang_tat) |
가족사진 (이미지 출처 - instagram @moossang_tat) |
Q. 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은?
A : 한 가지를 꼽기 어렵지만, 처음으로 도안제작을 맡겨주셨던 손님분이 떠오른다. 그 무렵 나는 영화나 시, 음악 등을 도안으로 커스텀 (손님의 요구에 맞게 새로 도안을 짜는 것) 하는 것에 매료되어있었는데, 그 손님은 나에게 'always summer, always alone' 이라는 대사와 몇몇 소재만을 말씀해주셨을 뿐, 전체적인 도안의 구성은 나에게 전적으로 맡겨 주셨다. 정말 감사하고, 어렵고, 매력적인 작업이었다.
'always summer, always alone' (이미지 출처 - instagram @moossang_tat) |
Q. 본인에게 타투란?
A : 앞으로 정말 잘 해내고 싶은 열정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학교를 다니면서 권태에 빠져 있던 나에게 타투를 시작한 것은 아주 큰 전환점이었다.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을 꼽으라면 이 일을 시작한 것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한편으로 아직까지 사람들이 타투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아직까지도 마냥 지하세계의 문화취급을 당하고 있다는 것이 아쉽다. 우선적으로 적절한 수료과정을 만들어 합법적으로 만드는 것이 가장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된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타투를 했으면 좋겠다.
그녀는 타투에 대해서 예술과 일맥상통하는 철학을 갖고 있는 듯 보였다. 미술작품을 그리던 때와 같이 계속해서 생각하고 고민하며 자신만의 철학과 스타일을 담아 타투 작업을 하고 있었다. 종이 위에 연필로, 캔버스 위에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던 그녀는, 타투 머신을 잡고 몸 위에 예술을 담아내고 있었다. 확신이 들었다. 타투는 '예술'이다.
혹자는 타투를 '자유의 무늬를 새기는 것'이라 말한다. 스타일로서의 타투로, 혹은 소중한 것의 영원한 기억으로서 우리는 스스로 몸에 흔적을 남기게 된 것이다. 아직까지 타투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가득한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타투는 과거와 다르게 다양한 시간과 존재, 의미와 메시지를 담아내는 작품이 되었다. 이제는 타투를 통해 아름다움과 감동, 소중한 것의 의미를 향유할 수 있게 되었다. 예술로서의 타투로, 인식의 변화가 필요한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김수민 에디터 soooooooooomi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