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오세요, '카모메 식당'에
코피 루왁.
오늘의 필름 한 입 <카모메 식당>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우리는 참 빠른 것을 좋아한다. 빠르게 할 수 있는 것들. 빠르게 지나가는 것들. 그 모든 것을 선호한다. 그렇게 재빠르게 움직이는 매일을 살면서도, 정작 일상을 ‘지루하다'고 말한다. 그럴만하다. 지도 어플을 통해 제일 빠르고 가까운 길을 찾아가느라 우리는 주변 경치도 둘러보지 못하니까. 심지어 본인이 무얼 하고 싶은지, 무엇이 하기 싫은지 구별조차 하지 못한 상태로 떠맡겨진 매일을 살곤하니까. 빠르면서도 지루한 하루를 사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어느 것 하나 움켜잡지 못한 채로 흘려보낸 매일 속에서, 우리는 정작 소중한 것들을 놓친다. 특별한 날짜, 감사함, 건강하고 풍족한 음식, 여유, 좋은 날씨. 그런 것들. 충분히 누릴 수 있는 매일의 소중함말이다.
여기, 그런 매일을 사는 이들에게 충고 아닌 충고를 날리는 영화가 있다. 슬로우 라이프를 가르쳐주는 영화, <카모메 식당>이다. <카모메 식당>은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슬로우 무비 1탄으로, 핀란드 헬싱키에서 오니기리 식당을 경영하는 사치에와 그 친구들의 이야기다. 카모메 식당의 처음은 그리 요란하지 않았다. 무려 한 달 동안 손님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카모메 식당의 첫 손님이 찾아온다. 바로 일본 마니아 토미. 토미는 대뜸 사치에에게 갓챠맨의 주제가를 불러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기억이 나지 않던 사치에는 고민 끝에 난생 처음 보는 미도리에게 갓챠맨의 주제가를 알려달라 한다. 그들의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하고 싶었던 일을 해서 좋은 게 아니라, 단지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을 뿐이죠.
사치에는 매일 부지런히 가게를 준비한다. 손님이 없어도 음식을 만들고 커피를 내린다. 접시를 닦으며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눈인사를 하는가 하면, 처음으로 온 손님이라는 이유로 토미에게 커피를 끊임없이 무상으로 제공하기도 한다. 현실 감각이 없어 보이는 그녀지만, 손님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 우리는 단호함과 따스함을 찾는다. 사치에를 향해 대단하다는 말에 그녀는 이런 대답을 남긴다.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을 뿐이라고. 당연한 말임에도 불구하고 참 어려운 말이다. 특히 지루한 매일을 빠르게 달리는 오늘날의 우리에게는.
그들의 카모메 식당은 어떤 화려함이나 새로움도 없다. 화려함이나 새로운 것이 아니어도 그대로가 괜찮기 때문이다. 익숙한 것들, 그리고 여유로운 것들. 카모메 식당은 이 것들을 매우 넉넉하게 지키고 있었다. 일본 여행객을 타겟으로 한 광고도, 핀란드 사람들의 입맛에 맞는 오니기리도 필요 없었다. 애초에 그런 조급함은 카모메 식당과 어울리지 않으니까.
카모메 식당과 어울리는 것은 바로 지금. 여기다. 이 문장을 딱 설명해줄 수 있는 손님이 있다. 바로 마사코다. 사람들은 매일 각기 다른 고역을 짊어지고 산다. 마사코는 그런 인물 중 하나다. 그녀의 소개를 아주 잠시 하자면, 그녀는 아주 긴 시간동안 가족을 돌보며 살아온 사람이다. 가족 모두를 떠나보내고, 무슨 이유에서인지 헬싱키를 방문한 마사코는 항공사의 실수로 짐을 잃어버리고야 만다. 문제는 짐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중요한 것이 있었는지 영 기억이 나지 않는 것. 중요한 것들을 기억하지 못하는 마사코의 모습은, 사실 매일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모습과 같다.
매일 짐을 쫒으며 살던 마사코는, 핀란드에 숲이 유명하다는 토미의 말을 듣고 숲을 찾아간다. 그 곳에서 버섯을 한아름 딴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지, 뒤늦게 찾은 마사코의 짐 속은 그 버섯들로 온통 차있다. 이미 마사코의 ‘중요한 무언가'는 과거의 무게가 아닌, 현재의 소중함-예를 들자면 핀란드의 멋진 숲-으로 가득차게 된 것이다. 황당하고 번뜩이는 마사코의 매 장면 장면은, 갈 길 잃은 자들의 예측 불가능한 카툰 같다. 결국에는 지금의 소중함을 깨달으며 끝나는 감동적인 결말을 안고 있는 카툰. 그 결말을 향한 이정표가 바로 카모메 식당이다. 어쩌면 잠시 쉬어가는 쉼터일수도 있겠다. 여기 머물러도 된다고, 과거를 더 이상 돌아보지 않아도 된다고. 바뀌어도 충분히 괜찮다고 말해주는.
하지만 카모메 식당이라고 해서 이 기구한 인생을 부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말하길, 세상 어디에 있어도 슬픈 사람은 슬프고 외로운 사람은 외로우며, 세상엔 아직 모르는 것이 많다. 또 모든 것은 언젠가 변하기 마련이며, 누구든지 변한다. 여전히 인생은 기구하다. 그렇기에 카모메 식당은 이렇게 말한다. 괜찮다. 괜찮을 것이다, 라고. 괜찮다. 여전히 인생은 기구하기에.
영화를 보고 나면 참 맛있는 것이 먹고 싶어진다. 다 괜찮을 것이니 소박한 음식이라도 차려두고 맛있게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딱 한 가지 더 있다. 바로 좋은 사람들이다. 그들과 우스운 이야기들을 하며, 여유롭고 느긋하게 먹는 식사, 어떤 진수성찬도 부럽지 않을 것이다. 아, 좋은 요리사가 있다면 더더욱 좋겠다. 모든 음식은 다른 사람이 해주는 것이 제일 맛있기 때문이다. 비법은 요리 속에 요리한 사람의 정성과 마음이다. 그만큼 배부르고 맛있는 것이 없다.
헬싱키라는 곳에서 ‘뭐든 잘 될 것'이라는 낙천적인 마인드로 가게를 오픈한 사치에. 무턱대고 떠나야겠다는 생각으로 눈을 감고 지도를 찍어 헬싱키로 온 미도리. 어떤 이유에서인지 헬싱키에 왔지만 가방을 잃어버린 마사코. 세 일본 여성이 이 영화의 중심이다. 그들의 조합은 다소 난해하고 독특하다. 그러나 그들의 말 한 마디 한 마디 사건 하나 하나가 보는 이의 마음을 알게 모르게 달래준다.
만약 내일 세상이 끝난다면, 마지막에 뭘 할 거에요?
엄청 맛있는 걸 먹고 죽을거에요.
역시! 저도 세상이 끝나는 날엔 꼭 맛있는 걸 먹을거에요.
좋은 재료를 써서 잔뜩 만들고 좋은 사람만 초대해서 술도 한 잔 하면서 느긋하게 식사를 즐기는 거죠.
저기, 저도 불러주실 건가요?
갓챠맨 노래를 아는 사람은 대 환영이에요.
예상 가능한 각박한 매일보다, 나는 이들의 여유로운 세상 그 마지막 날이 참 좋다. 현대인이라는 명찰을 달고 거리를 헤매는 삶보다 이 영화를 보며 조금씩 웃음을 터트리는 순간이 더 행복한 이유다. 가끔은 이들의 삶이 ‘환상의 커피'처럼 불가능한 처사라고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오늘도 ‘코피 루왁’. 작은 주문을 외워본다. 매일이 이들의 삶처럼 맛있어지라고.
이주현 에디터 2juhyeons2@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