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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미나리'를 보지 않은 사람들이 '미나리'를 봐야 하는 이유

[Opinion] [영화 한 편, 노래 한 곡 #3]

이 글은 영화 '미나리'의

결말에 대한 스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나는 사실 세계적으로, 그리고 대중적으로 너무 유명한 영화는 이상하게 잘 안 보게 된다. 봉준호 감독의 '옥자'는 봤어도 '설국열차'나 누구나 다 안다는 '기생충'은 아직까지도 보지 않았다. 심지어 '옥자'도 영화관에서 본 것이 아니다. 최근에야 알게 됐는데, 나는 차라리 독립영화를 더 사랑하는 듯하다. 그래서 미나리는 이미 입소문을 타고 유명해지긴 했어도 언젠간 한 번쯤 보고 싶었던 영화다. 그러나 계속 봐야지, 하면서 미뤄만 오다가 이번에 피처렛이 개봉했다는 소식을 듣고 극장을 찾았다.



'피처렛(featurette)'은 특작 단편 영화라는 뜻으로, CGV '2021 아카데미 기획전'에서 진행하는 이번 미나리 피처렛에는 13분 분량의 감독, 배우, 제작진의 인터뷰와 메이킹 영상이 추가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보고 온 결과, 메이킹 영상보다는 메이킹 영상과 영화 장면을 번갈아 보여주면서 감독의 제작 의도, 제작 비하인드, 그리고 배우의 연기에 대한 이야기, 배우들의 인터뷰 등이 주로 추가되었다.

왓챠피디아.jpg

내가 '왓챠피디아'라는 애플리케이션에서 평가한 영화들 중 5점을 준 영화들이다. 주로 영화를 보면서 '와 사람이 어떻게 영화를 이렇게 만들지'라고 생각이 드는 영화들만 모아두었다. 그만큼 잘 봤던 영화이기에, 아직 미나리를 보지 않은 분들이 있다면 피처렛도 개봉한 김에 가서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영화 '미나리'를 보면서 좋았던 점들을 소개하는 글을 써보려 한다.



섬세한 인물 묘사


개인적으로 영화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은 스티븐 연이 맡은 '제이콥'과 한예리가 맡은 '모니카', 이들 부부의 대립이었다. 제이콥은 똑똑하고 야망 있고, 그 야망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불편함도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는 사람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가족을 만들고, 그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자신이 잘하는 일인 병아리 감별사 일을 10년간 해서 가족들을 먹여살렸다. 이제 자신의 꿈을 키우기 위해 아칸소 주로 이사하여, 전기도 물도 공급이 어려운 트레일러 같은 집에 살면서 큰 농장을 일궈보려 하지만 잘 되질 않는다.



모니카는 예민하고 겁이 많다. 영화에서는 제이콥이 모니카에게 '그래, 너는 서울 여자라 이거지.'라고 말하는 대사가 나온다. 모니카는 깔끔하고 편의성이 갖추어진 도시를 선호한다. 더욱이 아픈 아이와 엄마를 부양해야 하는 입장에서, 가족들이 아프면 언제든 병원에 갈 수 있는 대도시에서 살기를 원한다. 겁이 많고 불안하기 때문에 안정적인 면을 좋아한다. 제이콥만큼 큰 야망은 없지만,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을 묵묵히 해 나가며 자신이 잘 하는 일로 만들고야 만다.



그렇다. 두 사람은 서로 반대라고 해도 될 만큼 너무 다르다. 그런데 그렇게 달라서 서로를 사랑했다. 영화에서는 둘이 어떻게 만나 결혼했는지 그 전사는 나오지 않지만, 나는 분명 두 사람이 서로 다른 모습에 끌려 상대방과의 미래를 그렸다고 생각한다. 너와 나는 다르니까, 그 다른 점을 잘 이용해서 우리는 서로를 구원해 주자고. 하지만 '서로 다르다'는 것은 그들을 결국 갈등으로 치닫게 하는 요소가 된다.



영화에서는 지속적으로 여러 대사, 연출,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를 통해 인물들을 섬세하게 묘사한다. 그런 요소들을 영화에서 찾아내며 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미국 정서와 한국 정서의 혼합


미나리는 한국에서도 인기가 많았지만, 제작사가 미국인 미국 영화라고 볼 수 있다. 정이삭 감독과 다수의 배우들 그리고 다수의 스태프들까지 한국계 미국인이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는 미국 것도 한국 것도 아닌 느낌이 들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할리우드 영화를 보는 것 같으면서도 한 편의 한국 영화를 보는 기분도 들었다. 그야말로 미국의 정서와 한국의 정서가 '혼합'된 영화였던 것이다. 어릴 적 미국으로 이주해 미나리라는 식물을 처음 보고 이 세상 것이 아닌 새로운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던 정이삭 감독처럼, 나 또한 이 영화를 보면서 이 영화 역시 그러한 '새로운 것'이라는 신선한 느낌을 받았다.



또 한 가지 좋았던 점은, 이 영화를 감상한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정'을 소개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역할은 데이빗의 외할머니인 '순자'로 등장하는 윤여정 배우의 연기가 큰 몫을 톡톡히 했다. 사실 할머니와의 유대관계가 비교적 끈끈하지 않은 내가 보아도 눈물이 나는 장면이 있었을 만큼, 영화를 보는 외국인들은 이것이 'Korean Grandmother'이구나,라는 생각을 했을 것 같다. 외할머니를 처음 본 데이빗이 처음에는 할머니를 부담스러워하다가 점점 할머니에게 정이 들었듯이, 영화를 보는 외국인들도 '한국 할머니'에 푹 빠져들었을 것이다.



깔끔한 연출, 아름다운 영상미, 흠잡을 데 없는 연기


글을 쓸 때 내가 항상 고민하는 것이 있다. '어떻게 하면 해당 작품을 보지 않은 사람도 내 글을 이해할 수 있게 쓸 것인가.' 영화를 제작하는 제작자의 입장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는 영화를 보기 전에 사전 정보 없이 처음 영화를 맞닥뜨릴 때 드는 날것의 감상을 좋아하는데, 그래서인지 나에게 '잘 만들어진 영화'란 사전 내용을 모르고 처음 영화를 보러 온 사람도 직관적으로 내용을 이해하고 파악할 수 있는 영화를 의미한다. 한 가지 더, 작품에서 전하려는 한 가지의 주제가 있고 영화 내용이 그 주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군더더기 없이 메시지를 전할 때, 연출이 깔끔하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이 영화가 그랬다.

 

피처렛에서는 '촬영감독이 영화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다, 천재 같다.'라는 평이 나온다. 미나리는 시골을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아름다운 자연환경이 많이 나온다. 그리고 그 자연 풍경을 담아내는 촬영감독의 영상미가 뛰어나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자연의 아름다움을 담은 영상미를 좋아하는 편이라, 영화에서 답답한 현실 상황이 나오다가도 화면에서 자연을 보여주는 부분이 나오면 힐링이 되었다.



그리고 극중 데이빗 가족의 집은 실제로 조그마한 트레일러 안에서 촬영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촬영감독은 그 공간이 마냥 좁아 보이기만 한 공간으로 보이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촬영했다고 한다. 그 덕에, 실제로 영화를 볼 때는 집이 작다는 생각은 전혀 안 들고 좀 허름하지만 내부가 빈티지하고 느낌 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배우들의 연기 또한 흠잡을 데 없이 훌륭했다. 사실 성인 배우들은 이미 연기력을 검증받은 사람들이고 많은 화제가 되었으니 이 글에선 생략하도록 하겠다. 나는 개인적으로 '앤'을 연기한 노엘 조와, '데이빗'을 연기한 앨런 김, 이렇게 아역 배우들의 연기도 좋았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 이야기는 가족 이야기이기 때문에 제이콥과 모니카의 갈등선도 많이 부각되지만, 그만큼 중점적인 것이 할머니인 '순자'와 손자인 '데이빗'의 이야기이다. 순자 역할의 윤여정 배우가 주목을 받은 데에는 이를 잘 받쳐준 데이빗 역의 앨런 김의 연기도 한몫했다고 본다. 피처렛에 따르면, 앨런 김은 데이빗 역 오디션을 보러 온 배우 중 가장 어린 나이였지만, 데이빗 그 자체의 모습을 보여주어 캐스팅되었다고 한다. 첫 주연을 맡은 미나리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주고 상까지 받은 이 배우의 앞으로가 더 기대된다.



우리의 삶을 보여주는 이야기


피처렛에서 윤여정 배우는 이 영화가 '문화나 언어, 인종이 달라도 우리는 결국 같은 인간이라는 점이 드러나서 좋았다'라고 했다. 나와는 다른 사람을 만나서 서로 끌리게 되고, 희망을 품고 함께 미래를 계획하고, 잘 살아보려는 시도를 하면서 아등바등 대다가 한 번쯤 실패를 맛보는 일들. 이러한 일련의 일들은 우리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이다. 조직폭력배와 형사가 등장하는 범죄 영화나, 말도 안 되는 사랑 얘기를 담은 로맨스 영화보다는 이런 영화가 훨씬 더 우리 삶 가까이에 있다. 사실, 이런 부분 때문에 현실에서 일탈하기 위해서 영화를 보는 분들에게는 잘 맞지 않을 수도 있는 영화이다.



피처렛 추가


아직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도, 이미 영화를 본 사람도 피처렛을 보면 영화의 제작 의도와 내용에 대해서 조금 더 풍부한 이해를 할 수 있게 된다.



피처렛 내용을 다 말할 순 없겠지만 소개하고 싶은 두 가지 내용이 있다. 알고 영화를 보면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소개하려고 한다. 우선 이미 알고 있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영화 '미나리'는 정이삭 감독이 어렸을 적 실화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내용이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를 보는 내내 실제 우리 옆의 어떠한 사람, 혹은 지인의 얘기를 생생하게 듣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영화의 내용을 딱딱 떨어지게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우리네처럼 살아가는 사람 중 한 명의 '이야기'를 스토리텔링해 주는구나 생각하고 본다면 편할 것이다.



두 번째로는 현실적인 영화인만큼, 한국인의 문화와 정서 등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소품이나 연출 면에서 굉장히 많은 조사를 하고 공을 들였다고 한다. 이를 알고 보면 영화에서 이런 부분들을 확인하는 묘미가 있을 것이다. 예컨대, 영화에서 모니카가 이사 간 뒤 서랍장에 종이를 까는 모습이 나온다. 80년대 이후에 태어난 분들이나 한국의 정서를 잘 모르는 외국인의 입장에서는 별 의미 없이 지나쳤을 수도 있는 장면이다. 그러나 해당 장면은 80년대에 이사를 다닐 때 감독님의 어머니가 슈퍼에서 받은 달력으로 서랍 안을 덧댄 경험을 살린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극 중에서 데이빗이 입고 있는 노란 옷이 있다. 여기에는 이주민의 특성상 돈이 많지 않은데, 그래서 데이빗이 누나인 앤의 옷을 물려받은 것이라는 디테일이 숨어있다.



이 영화를 추천하는 사람과 추천하지 않는 사람


미나리의 피처렛이 개봉했다는 것을 알리고 개인적으로 미나리를 감상하며 좋았던 점을 전달하는 글이지만, 이 영화는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있다. 그래서 모두에게 피처렛이 개봉했으니 영화를 보라고, 혹은 N차 관람을 하라고 권할 수는 없다. 그래서 이번에는 이 영화를 보면 잘 맞을 것 같아서 영화를 추천할 사람과, 이 영화와 잘 맞지 않을 것 같을 것 같아서 영화를 추천하지 않을 사람을 나눠보기로 했다.


이 영화를 추천하는 사람


-영화 '미나리'를 이미 관람했고 이 영화를 너무 사랑해서 N차 관람하고 싶은 사람

아직 '미나리'를 관람하지 않은 사람 중

-영화의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궁금한 사람

-한 편의 이야기 같은 스토리텔링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

-영상미가 아름다운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

-80년대 미국으로 이주한 한인들의 삶을 엿보고 싶은 사람

-미국이나 다른 지역으로 이주한 한국인으로서, 공감을 느끼며 보고 싶은 사람

-잔잔한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

-우리의 인생과 닮아있는 현실적인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



이 영화를 추천하지 않는 사람


아직 '미나리'를 관람하지 않은 사람 중 

-한 편의 이야기 같은 스토리텔링 영화를 싫어하는 사람

-꽉 닫힌 해피엔딩이 아니면 싫은 사람

-미국이나 다른 지역으로 이주해 본 경험이 없어서 공감이 느껴지지 않을 것 같은 사람

-사람들이 많이 본 것 같으니 나도 이 영화나 볼까 싶어서 큰 기대를 갖고 영화를 시도해 볼 사람

-잔잔한 영화를 싫어하는 사람

-그렇다고 이 영화가 힐링 영화일 거라고 착각하는 사람

-영화가 너무 현실적이면 부담스러운 사람



마지막 부분은 어쩌면 독립영화의 핵심이기도 하다. 상업영화는 어쨌든 잘 팔리는 영화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진입장벽이 낮고 재밌는 영화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독립영화는 자본의 영향을 덜 받아 감독이 원하는 이야기를 비교적 자유롭게 풀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불편해하는 현실적인 이야기라든가, 지금까지 시도해보지 않은 스타일이라든가,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올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독립영화나 뒤에서 소개할 인디음악을 사랑하는 이유이다. '자신만의 무언가를 해보고 싶은 당신, 당신도 해볼 수 있다.'라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 앞으로 더 많은 독립영화와 인디음악들을 사랑하고 응원해야겠다.




영화를 보고 생각난 노래 한 곡



*

결말스포 주의

삶은 누구에게나 실험이고 중독의 연속이다.

그 중독으로부터 조금 멀어지는 실험을 해보자.

무언가를 깨트리는 것은 경계를 부풀리는 새로움을 전해줄 것이다.

익숙함으로부터 멀리 벗어나는 건 쉽지 않겠지만, 인정하자.

살아가며 우리가 배운 건 영원한 것은 없다는 거, 아닌가?



우리는

서로를 비춰봐

우리는

끝이 없을 거야

우리는

끝이 없을 거야

우리는

끝이 없을 거야



♪ 보수동쿨러 - 0308





누군가는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뭐야, 영화의 끝이 왜 이래. 그래서 뭐 어쩌자는 거야. 결론이 뭐고 메시지가 뭔데?' 어쩌면 당연한 생각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아무래도 한 편의 '이야기'라는 느낌이 강하다. 누군가가 자신의 어린 시절을 도란도란 들려주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은 우리들의 '인생 이야기'이다. 우리들은 인생을 살며 모니카와 제이콥처럼 '서로를 비춰보며' 자신과 다른 모습을 가진 사람과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그러한 사람과 갈등하기도 한다. 새로이 농장을 가꿔보려는 제이콥의 시도는 실험이고, 익숙한 도시를 벗어나 살아야 하는 모니카는 '그 익숙함으로부터 멀리 벗어나기 쉽지 않지만', 시골에서도 어떻게든 적응하며 살아가려 나름의 방식으로 노력하고 결국에는 자신들의 농장을 지켜내려고 한다. 제이콥의 농장은 영원히 잘 되지도 영원히 망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고 모두들 이미 알다시피, 인생에는 '끝이 없다'. 그래서 나는 영화의 현실적 결말이 마음에 들었다. 미나리를 캔 이후 데이빗의 가족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어떻게 되었을지는 여러분들이 자유롭게 상상해보았으면 좋겠다. 그것이 열린 결말의 묘미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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