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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영화 <말모이>를 보고

말모이 : ‘말을 모으다’/우리나라 최초의 국어사전

‘말모이’. 생소한 단어이다. 처음 이 단어를 들었을 때 ‘말을 모은다’와 ‘말의 모이’라는 두 가지 의미가 동시에 떠올랐는데, 사실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해리포터의 말포이였다. 실제로 네이버 영화 명대사 섹션에 ‘입 닥쳐 말모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는 것을 보면 나만 그런 건 아닌가보다.

 

영화는 포스터에도 적나라하게 나와 있듯이 일제강점기 시대 조선어학회를 배경으로 한다. 일제강점기를 그린 영화는 많고 많지만, 이 영화의 주인공은 총칼을 쥐지 않는다. 영화 <동주>의 윤동주가 총칼 대신 펜을 쥐었듯, <말모이>의 주인공들은 피를 흘리는 대신 말을 지켰다. 일제의 탄압에 하나둘씩 사라져가는 우리말, ‘조선말’을.

“사람이 모이면 말이 모이고 말이 모이면 뜻이 모인다”

누군가는 그들의 행동을 일제에 대한 ‘간접적인’ 저항이라고 평가절하할지도 모르겠다. 겉보기에는 물론 그럴 수 있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애신이 직접 손에 총을 쥐고 일본군과 그 앞잡이를 제거함으로써 독립의 뜻을 펼쳤던 것에 반해, 보이지 않는 저항인 말과 글은 총과 칼에 비해 그 힘이 약해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 총칼을 쥐게 만드는 힘, 나라를 되찾겠다는 염원을 만드는 것이 바로 ‘정신’이고, 그 정신을 지탱하는 것이 ‘말’이다. 일제는 그것을 모르지 않았다. 일제강점기말 창씨개명, 조선어금지 등 이른바 ‘민족말살정책’의 궁극적인 목적은 ‘조선인 정신’을 없애버리는 것이었고, 이는 모두 조선말과 글의 탄압으로 이어졌다.

 

왜 이런 쓸데없는 일을 하느냐는 질문에 그들은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잖아요”라고 답한다. 맞는 말임을 알면서도 그 ‘누군가’가 되기는 참으로 어렵다. 때때로 친구와 농담으로 하는 말처럼 내가 그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친일파까지는 아니어도 결코 독립투사가 되지는 못했을 것 같다. 총칼은커녕 말을 모으는 것조차 일제의 탄압에 즉각 포기하지 않았을까.

“민들레가 왜 민들레인지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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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군가’가 되어주었던 그분들 덕분에 지킬 수 있었던 소중한 ‘우리말’들. 개인적으로 한국어의 매력은 ‘빨갛다’를 새빨갛다, 시뻘겋다, 붉다, 불그스름하다, 발갛다 등 미묘한 느낌의 차이에 따라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라 여긴다. 만약 ‘말모이’가 없었더라면 이런 다양한 어휘는 물론이고 내가 아직도 못 고친 사투리도 남지 못했겠지.

 

당시 교육과정에서 조선어는 ‘조선어’이지, ‘국어’가 아니었다. 조선 땅임에도 불구하고 ‘국어’는 당연히 일본어가 되었다. 나는 수능을 칠 때도 ‘국어’를 치렀고, 지금은 ‘국어국문학과’에 재학 중인데 그 모든 국어가 일본어가 될 수도 있었다니,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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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가 수업시수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외고를 다니면서도 단지 우리말이 좋아서, 글 쓰는 게 좋아서 고민 없이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했다. 늘 힘들어했던 어학은 여전히 어렵지만, 한글 문학을 읽을 때는 영어 원서를 읽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매력이 있다. 미처 몰랐던 고유어를 새롭게 알게 될 때에는 우리말이 참 예쁘다는 걸 뜬금없이 느끼기도 한다.

 

요즘 유행하는 줄임말, 험한 말 등을 이제 자제해야겠다는 후기를 많이 보았다. 당연하고, 또 바람직한 말이다. 물론 ‘띵곡’, ‘머가리’, ‘할말하않’ 같은 급식체 혹은 유행어 등은 새로운 재미난 현상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래도 분명한 선은 존재해야 한다. 그것에는 때와 장소에 맞지 않는 무분별한 사용을 막는 우리의 ‘의식’이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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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교양시간에 교수님이 조선의 법전이었던 <경국대전>을 두고 난산(難産)이라고 표현하신 적 있다. 수많은 교정 끝에 어렵사리 탄생하였다는 뜻인데, 조선어학회의 <조선말큰사전>도 이와 만만찮은, 어쩌면 더한 난산을 겪고 세상에 등장했다.

 

이토록 어렵게 지킨 소중한 우리말, 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할 일은 그것을 유지하는 일이다. 평소에 바른 말 고운 말을 쓰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물론 때때로 험한 말을 내뱉는 경우도 있겠지만, ‘정신’을 잃지 않는 것, 그 마음만은 영원하기를 바란다.

 

주혜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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