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거장의 작품이 쓰레기로? 해운대구의 만행
백남준의 작품이 해외에서 고장이 났다는 이유로 통보도 없이 폐기된다면 우리나라 언론은 난리가 나지 않을까. 감히 세계적인 거장의 작품을! 우리나라나 유족들의 허락도 없이! 손보거나 전시 중지도 아니고 아예 고철 처리해서 폐기를 시키다니!
그런데 이게 현실로 일어났다. 다만 백남준이 아닌 20세기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현대미술의 거장, 데니스 오펜하임의 작품이었다는 점과 주동자가 바로 우리나라 해운대구라는 점이 다르다. 그리고 그게 가장 큰 문제다.
데니스 오펜하임 1938.9.6~2011.1.21 |
사건의 발단은 7~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0년, 데니스 오펜하임은 부산비엔날레에 참가했다가 그곳에서 열리는 공모전에서 수상을 하게 된다. 그 공모전은 부산 해운대구에서 '해변 포토존 사업'의 일환으로 해운대에 설치할 예술작품을 비엔날레 측에 의뢰하며 열렸다. 당시 선택된 데니스 오펜하임의 '챔버 Chamber'는 꽃잎과 그 안에 둘러싸인 꽃술을 금속으로 형상화한 작품으로, 설치하는 데만 8억이 든 규모가 큰 프로젝트였다. 하지만 1938년생으로 꽤 고령이었던 작가는 작품이 설치되는 도중 고인이 되어 공교롭게도 이 작품이 유작이 되었다. 유작이라는 이유로 미국인인 그의 가족들이 설치 직후 부산까지 찾아와서 보고 갔다고 한다.
이제 더 이상 볼 수 없는 데니스 오펜하임의 '챔버 Chamber' |
그런데 그런 작품을, 해운대구는 바닷바람과 태풍에 손상되어 전시를 하기 힘들 지경이었다며 유족들이나 비엔날레 관계자들에게 일언반구도 없이 산업폐기물로 처분해버렸다.(2017년 12월) 멋대로 수리를 하는 것도 기함할 지경인데 그냥 고철 쓰레기로 분류하여 버린 용기에 도대체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까. 이 완벽한 무식의 작태라니.
해풍에 훼손되어 철거했다는 변명은 즉, 관리와 유지 보수에 부실했단 소리다. 애초에 바닷가에 설치하기 부적절할 수 있는 작품임을 고려하지 않고 안이하게 공공미술 사업을 진행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해운대구는 부산비엔날레 측이 꾸준한 관리를 해줬어야 하는데 사후관리에 소홀했다며 공공기관의 전형적인 책임회피까지 알차게 하고 있는 중이다.
유족 측에서 소송을 거느니 마느니 법적인 문제는 다 차치하고서라도, 얼마나 보여주기식 행정에 급급했으면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혈세 낭비는 물론이고 말이다. 이럴 거면 거장들의 작품이 차라리 우리나라에 들어오지 않는 게 작품을 위한 길이겠다는 극단적인 생각이 들다가도, 이번 일로 인해 앞으로 국내 관객들이 좋은 작품을 접할 기회가 정말 줄어들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너무 아찔하다.
애석하고, 안타깝고, 부끄럽고, 속상하고. 이 소식을 듣고 겪을 수 있는 '경악'류의 감정은 다 느꼈는데, 그만큼 두 번도 듣고 싶지 않은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세계적인 거장의 작품도 이렇게 취급당하는 판국에 무명 예술가들은 얼마나 서럽고 고된 일이 많았을까. 부디 이번 일을 타산지석 삼아 반성하고 각성하며 예술에 대한 처우와 인식이 개선되어 나갔으면 좋겠다.
이미지출처: ARTVIATIC
참고기사: http://bit.ly/2FNElFf
윤단아 에디터 1229yoon@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