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기만 해도 포근한 그림, 질 바클렘
천장까지 채워져 있는 단지들, 귀가 튀어나온 모자를 쓴 들쥐들, 이 곳 저 곳 늘어져 있는 꽃과 과일, 따뜻한 색감들. 사랑스러운 그림동화를 떠올리면 시골 깊숙이 어딘가 살고 있을 것만 같은 동물들의 행복하고 포근한 초상들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분명 질 바클렘의 ‘찔레꽃 울타리’ 때문일 것이다. 아기자기하면서도 편안한 다음의 삽화는 질 바클렘의 작품들이다. 정말 ‘사랑스럽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위와 같은 삽화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질 바클렘의 작품은 그만큼 유명하기 때문이다. 위에서 얘기했던 ‘찔레꽃 울타리’가 특히 그러하다. 원작의 제목은 ‘brambly hedge’로 그녀에게 명성을, 그리고 우리에게 행복을 안겨준 작품이다. 책뿐만이 아니다. 질 바클렘의 그림은 접시나 그릇 등에서도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었을 것이다.
질 바클렘은 영국을 대표하는, 그러면서 그림동화 작가를 대표하는 자연주의 일러스트레이터이다. 그녀는 동물들의 모습, 시골의 모습, 자연의 모습 등을 서정적으로 재현해낸 천재 작가다. 들쥐들의 모습을 수채화로 담아낸 삽화들은 주로 꽃, 음식, 과일 등의 모습을 그려내며 우리에게 사랑스러움을 느끼게 해준다. 심지어 들쥐들의 침실, 욕실에서도 독자들은 포근함을 느낀다. 창이 넓은 욕실, 푹신해 보이는 침대, 늘어진 커튼, 천장까지 쌓여있는 주방의 음식들, 바닥 곳곳 널려 있는 바구니, 활활 타오르는 벽난로. 어느 것 하나 사랑스럽지 않은 것이 없다.
그녀의 작품이 더 섬세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책 한 권을 준비하는데 2년 이상의 기간이 걸릴 정도로 자연에 대한 연구와 시골 풍경에 대한 깊은 관찰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속적인 연구와 관찰로 그녀의 작품 세계는 더욱 더 풍부해졌다. 이렇듯 섬세하고 풍부한 질 바클렘의 작품은 자연과 멀어지는 현대의 어린이들에게 자연의 아름다움과 이치를 전달한다.
덧붙여 설명하자면, 그녀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이름은 대부분 꽃이나 과일의 이름을 가졌다-역자의 설정인지 작가의 설정인지는 원문으로 읽어보지 않아 모르겠다. 15년 전쯤의 내가 읽었을 가을 이야기의 주인공 ‘앵초’ 역시 꽃 이름이었고, 봄 이야기에서 생일을 맞이했던 주인공 역시 이름이 ‘머위’였다. 문득 ‘사과’라는 이름을 가진 할아버지도 등장했던 것이 기억난다.
질 바클렘이 ‘찔레꽃 울타리’ 마을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하는 것은 삽화의 아름다움만이 아니다. 마을의 들쥐들은 현시대를 살아가는 인간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자급자족하고, 서로에게 친절하며, 자연과 어우러지며 살아간다. 이들의 모습은 삭막한 도시 속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새로운 가치를 시사한다. 욕심으로 인해 잊고 살았던 사랑과 우정, 협동, 그리고 자연의 소중함 등을 말이다.
영국에서만 500만부, 전 세계 16개국에서 300만부 이상이 팔리며, 세계 곳곳의 어린이들, 그리고 동화를 사랑하는 어른들에게 행복과 포근함을 안겨준 질 바클렘. 어렸을 적 나에게 소중한 이야기, 소중한 그림들을 안겨줬던 질 바클렘은 지난 11월 15일, 세상을 떠났다. 그녀가 어린 나에게 남겨준 추억이 얼마나 따뜻했는지, 직접 전할 방법은 없지만, 오피니언을 통해 작품을 회고하며 다시 한 번 감사함을 말하고 싶었다. 보기만 해도 포근한, 보기만 해도 따뜻한, 보기만 해도 행복해지는 그녀의 그림은 어느덧 어른이 된 나에게도 커다란 위로가 된다.
이주현 에디터 2juhyeons2@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