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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시혁의 졸업축사와 꿈이라는 신화

나는 자기계발서를 싫어한다. 전부 결과론적인 이야기라는 생각 때문에 삐딱하게 바라보게 되고, 작가가 성공의 비결이라 외치는 것에 자꾸만 반박하고 싶어진다. 실패하는 사람들도 분명 똑같은 노력을 기울였을 것으로 생각하면서. 동영상으로 보는 강연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매체의 특성상 집중도 잘 안 될 뿐더러, 나와는 아무런 접점도 없는 남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웬만하면 성공 비결에 관한 이야기나 강연은 현장에서 들으려고 한다. 수업뿐만 아니라, 나의 앞에서 말하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는 더 인상적으로, 가까이 다가온다. 어쨌든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만으로 나와 접점이 생겼다고 느끼며, 그들의 가르침을 최대한 내 것으로 만들려고 노력한다.

 

가히 돌풍에 가까운 한류를 일으키고 있는 방탄소년단을 탄생시킨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의 프로듀서 방시혁 씨가 서울대학교 졸업식에 등장해 화제가 되었다. 그의 축사 또한 ‘꿈을 찾으라’는 지겨운 내용 대신 ‘꿈 없이 살아도 괜찮다’는 파격적인 내용으로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었다. 안타깝게도 나는 서울대학교의 졸업생이 아니라, 그 현장에서 방시혁 씨의 강연을 들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방탄소년단과 그들의 음악에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온 사람으로서, 불편을 감수하고라도 꼭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앞서 밝혔듯이 직접 강연을 듣는 것보다 동영상으로 강연을 시청하는 것이 더 불편하다) 그래서 결국 18분이라는 나름대로 긴 시간을 들여 영상을 시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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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시혁의 졸업축사와 꿈이라는 신화

사진출처

내가 이제껏 들어왔던 ‘꿈의 신화’는 이런 것이었다. 꿈이 없는 삶은 불행한 삶이며 현실에 안주하는 삶이다. 그러나 꿈이 있으면 하루하루가 활기차고 행복하다. 꿈은 행동으로 이어지고, 행동은 꿈으로 다가가는 발걸음이 될 것이다. 생생한 꿈은 현실이 된다. Reality = Vivid Dream이라는, 문과생인 나에게는 더없이 멋져 보였던 이 공식은 수많은 학생에게 꿈을 강요했다. 그렇다면 꿈이나 목표가 없으면 어떻게 될까?

 

자기소개서에는 마치 확고한 꿈을 가진 양 포장하지만, 학교라는 울타리에서만 직업인들을 바라보았을 고등학생들에게 꿈에 대한 확신이 있을 가능성은 적다. 당연히 청소년기의 꿈을 평생 간직하며 그것을 이루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당장 꿈에 그리던 대학교에 들어가자 목표를 잃었다며 허무해 하는 학생이 얼마나 많은지만 보더라도, 꿈을 강요한 결과가 결코 긍정적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혹은 꿈꾸던 직업의 현실을 보게 되고, 허무함에 방황하기도 한다. 그리고 어릴 때부터 꾸준히 주입받아왔던 ‘꿈의 신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꿈이 없는 자신이 비참하다고 느낀다.

방시혁의 졸업축사와 꿈이라는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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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여러 분야의 문화산업 전문가들의 특강을 듣는 강의를 수강했다. 흔히 문화산업이라고 하면 영화감독, 배우, 작곡가, 드라마 작가 등 창작 분야에 해당하는 전문가들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사실 창작자는 몇 분 안 계셨고, 문화 ‘산업’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창작자와 소비자를 매개하는 일을 하시는 분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문화 콘텐츠를 누리기까지 상상하지도 못할 수많은 직업인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강의의 이야기를 갑자기 꺼낸 이유는, 이 성공한 직업인들이 자신이 그 직업을 갖게 된 이유를 이야기할 때 방시혁 씨와 비슷한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다. 어떤 대단한 소명 의식이나 꿈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어쩌다 보니 이 일을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다른 직종보다도 더 많은 창의성과 열정을 필요로 하므로 확고한 꿈을 가지고 있을 법한 사람들인데, 어쩌다 보니 라니.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그 이야기를 공통으로 하자, 나는 ‘꿈의 신화’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흐르는 대로 살다 보니 이 직업을 갖게 되었다는 문화산업 전문가들의 이야기는 산업적인 특성이 원인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어릴 때 창작에 대한 꿈을 막연하게나마 품고 있었던 사람들이 ‘어쩌다 보니’ 창작 대신 경영이나 평론, 편집 등의 일들을 할 수도 있다. 아쉬워도 어쨌든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가까이 지내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혹은 이것도 하나의 결과론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꿈이 없이 살아도 잘 되는 사람도 있고, 안 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방시혁의 졸업축사와 꿈이라는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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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시혁 대표도 꿈이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예정이라고는 했지만, 사실 강연을 들어보면 그에게 꿈이라고 할만한 것이 전혀 없어 보이지는 않는다. 졸업생들에게 자신만의 ‘행복한 상태’를 정의하고, 그것을 방해하는 것들에 맞서라고 하면서, 그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것을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그의 경우 음악 산업의 부조리에 맞서고, 예술가와 팬들이 정당하게 권리를 찾는 것, 그리고 자신의 회사와 소속 예술가가 사회에 바람직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 자신을 행복하게 한다고 했다.

 

성공의 동력과 그 원천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과거에서 벗어나는 것, 현재의 행복을 유지하는 것, 미래의 이상을 실현하는 것. 어떤 것에 무게를 두는가는 자유다. 대부분의 자기계발서에서는 미래를 이야기하지만, 방시혁 씨는 현재를 택했다. 그러나 자기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 현 상태에 안주하지 않는 사람이 성공하는 것은 분명하다.

 

방탄소년단이 탑 소셜 아티스트 상을 받은 후, 그래미에서 상을 받는 것이 최종 목표라고 말했다. 아직 수상하지는 못했으나 그래미 시상식에 참석한 것을 보면, 머지않아 대한민국 아이돌 최초로 그래미 상을 받게 될 것으로 생각한다. 순식간에 인기를 얻은 그들, 그리고 빅히트 엔터테인먼트가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 이후의 삶에는 내리막길만 있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을까, 대입 이후 목표를 잃은 나처럼 방황하게 되지는 않을까. 그러나 이번 연설을 보며 그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들은 자신의 성공뿐만이 아니라, 끊임없이 사회를 나은 방향으로 이끌겠다는 비전이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자신들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인지하고 있다는 점이 그들을 정글 같은 연예계에서 살아남게 한 이유다.

 

대학교 3학년.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학점에만 목을 맸던 시기가 지나고, 이제는 졸업 후의 거취를 본격적으로 고민해 볼 때다. 방시혁 대표처럼 꿈이 없는 삶을 굳이 살려고 노력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고정된 형태의 꿈이 없어도 예전만큼 불안해하지 않을 것이다. 또 어떤 방법이 되든 나의 길뿐만 아니라, 후속 세대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김채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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