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의 새로운 시도, 입체파가 궁금하다면 '피카소와 큐비즘'
Review
0. 전시를 보기 전
이번 피카소와 큐비즘 전시는 미술을 잘 아는 사람이 보아도 아마 조금은 어려운 전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큐비즘이라는 정의를 알고 보아도 어려운 개념이기 때문에 모르고 보는 사람들이라면 아마도 더 어렵고 난해하다는 생각이 드는 전시 같습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정리가 되어 있기 때문에 어떻게 생성이 되고 어떻게 사라졌는지에 대한 흐름의 이해는 무척이나 좋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피카소라는 인물을 메인으로 정해서 걸어 놓았기 때문에 피카소라는 인물에 대해 알고 싶어 하시는 분들이 보기에는 조금 내용이 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도 메인은 큐비즘이고 큐비즘의 대표적인 인물인 피카소를 내세워 큐비즘의 이해를 더욱 주려고 한 것으로 저는 느꼈습니다.
우선 저는 오후 일정이 있어서 도슨트 투어를 듣지 못했습니다. 흐름에 따라서 정확한 순서를 알고 싶었는데 그게 조금 아쉬웠어요. 아침 일찍 가게 되었는데 그때는 11시 30분에 어린이 도슨트가 진행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살짝 들어 보았지만 확실히 어린이들이 이해가 되기 쉽게 설명을 하셔 서서 어른들이 듣기에는 조금 유치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던 분도 전시를 가셨는데 도슨트 투어가 썩 좋지 않았다고 이야기를 들어서 투어를 포기하고 오디오 가이드를 대여하기로 마음먹고 대여를 하게 되었습니다.
전시 작품은 5관 외에는 전부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아마도 저작권 관련 문제로 안 하는 것 같으니 잘 모르시는 분들이 가실 땐 참고하시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1. 입체주의 기원 : 세잔과 원시미술
전시는 입체주의의 탄생과 소멸에 이르는 연대기적인 전시 구성으로 되어 있습니다. 우선 근대 회화의 아버지로 불리는 폴 세잔, 폴 세잔은 후기 인상주의 화가로서 인상주의라 함은 사진 기술의 등장으로 빛과 색채를 과학적 연구를 통해 분석하여 대상을 표현함으로써 주관적 관점을 많이 담아낸 작품으로 특히 세잔은 자연 대상을 해체하고 기본적 형태로 집약 한 작품으로 조형적 질서를 중시하던 입체주의로 발전을 하게 됩니다.
이런 세잔의 영향으로 20세기 현대 미술의 거장인 파블로 피카소와 피카소와 함께 입체주의를 창시한 조르주 브라크에게 영향을 주게 되는데요, 우선 첫 번째 공간에서는 세잔과 원시 미술이라는 주제로 입체주의의 기원을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초기에는 순수 원시 미술 작품을 관람할 수 있었는데 예전에 모리스 드 블라맹크 전시를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도 그 작가의 작품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작가의 작품으로 당시 입체주의나 인상주의 등의 모습이 문득 떠올라 재미있었던 기억이 나요.
하지만 아는 작가보다는 모르는 작가의 작품들이 워낙 많았고 전체적으로는 작가만의 특징이 분명 존재하지만 입체주의 작품 자체가 형태를 확실하게 알아볼 수 없는 그림이다 보니 대표적으로 큰 특징이나 이야기가 담겨있는 등 기억나는 작품이 별로 없다는 게 좀 아쉽긴 했습니다. 하지만 주로 원시미술 분야에는 자연이나 도심 등이 주로 표현이 되어 있던 느낌이 나기 때문에 큰 틀이 없더라도 자연을 표현하고자 하는 작가의 느낌 그대로를 받을 수 있는 것 같아서 그림을 보는 재미는 있었습니다.
후에 입체파 연보가 한 가벽에 쭉 적혀 있는데 총정리를 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기도 하지만 이해를 하면서 읽기에는 그 양이 조금 방대한 감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그래서 좀 더 깔끔하게 정리를 했다면 더욱 좋지 않았을까 생각을 해 봅니다.
2. 입체주의 발명 : 피카소와 브라크
(좌)Pablo Picasso, Tête d’homme, 1912 © 2018 – Succession Pablo Picasso – SACK (Korea), (우)Georges Braque, Tête de femme, 1909 © Georges Braque / ADAGP, Paris - SACK, Seoul, 2018 |
입체주의는 세잔에 의해 등장을 했다고 했는데 이는 원시주의 미술과 만남뿐만이 아니라 모자이크와도 같은 풍경, 대상을 왜곡하는 상징주의 방법이나 화면을 재배치하는 방법 외에도 단순하면서도 특징을 정확하게 강조하는 원시미술이나 조각과 결합하여 면의 분할과 조합이라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는데 르네상스 시대에는 원근법이나, 공간, 빛을 중요시 여겼다면 인상주의 화가들로 인해 점차 파괴되어 가던 시점에 과학이 발달을 하며 자신이 사는 공간이 해석에 따라 다양해지고 불확실해지기는 것을 사물을 다양한 시각으로 해석하여 공간에 배치해 시공간을 넘나드는 작품으로 등장을 하게 됩니다. 이는 후기에 추상미술에 영향을 준다고 하는데 특히 피카소와 브라크는 초기 입체주의 화가로서 대상의 철저한 분해와 재구성을 하고 원근법을 무시하며 평면화된 화면, 다양한 시각과 무채색과 어두운색을 사용하던 분석적 입체주의입니다.
그래서 주로 선으로 분할된 공간과 그 공간 속에 시공간을 넘나드는 작품들을 주로 보았던 것 같습니다. 대표적으로는 조르주 브라크의 여인의 두상이나 피카소의 남자의 두상 등 대표적인 작품들로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입체파는 제1차 세계 대전과 함께 막을 내리게 됩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사진 기술이 발달하기 전 그림은 지금의 사진과도 같이 당시 모습을 담아내려는 사실주의적 그림들을 많이 그리는데 이젠 사진이 이를 대신해주다 보니 그림의 형식이 과학의 발전과 함께 변화한 것으로 봅니다. 입체파의 탄생은 항상 같은 그림만 그려 오던 화가들에게 시공간의 개념을 넘어선 새로운 형태를 창조해내는 엄청난 혁명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3. 섹시옹도르(황금분할파)와 들로네의 오르피즘
Robert Delaunay, Tour Eiffel, 1926 © Musée d'art moderne de la Ville de Paris |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마음에 들었던 사조 가운데 하나입니다. 우선 이런 입체주의는 다양한 화가들에게 영향을 주게 되는데요, 이런 영향을 받은 화가는 여러 운동을 통해 미술 사조가 갈리게 됩니다. 그중에서도 저는 프랑스에 들로네 로베르가 추상적 색채 리듬을 강조했던 오르피즘 운동을 하게 되는데 피카소와 브라크가 고전적 형태를 발전시켰다면 다양한 오브제나 색채의 사용, 선처리 등으로 인해 좀 더 자유로운 방식의 입체주의인 황금 분할파 그룹이 탄생하게 되죠.
섹시옹 도르 전시회에 불참했던 예술가인 들로네는 색과 구성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전에 보던 입체주의는 원이나 기둥 등 입체를 통해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제 생각엔 이 색채주의였던 오르피즘은 색을 통해 형태를 구성해 낸 작품처럼 느껴졌습니다. 입체주의처럼 정확한 선으로 나누어져 있진 않지만 형태와 색의 조화로 인해 밝고 투명한 것 같기도 한 새로운 색채를 선보인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의 눈에는 각자 전부 다른 시세포들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사람뿐만이 아니라 동물들의 눈에 따라서 그 사람들이 보는 색채는 전부 다르다고 하는데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이 들로네가 그렸던 그림이 마치 시세포가 가득한 사람이 색을 바라보는 화려한 시각을 직접 눈으로 보는듯한 기분이 들어서 무척 즐거웠습니다.
4. 1-2차 세계 대전 사이 입체주의
(좌)Fernand Léger, L’homme à la pipe, 1920 © Musée d'art moderne de la Ville de Paris, (우)Pablo Picasso, La Danse, 1975 © 2018 – Succession Pablo Picasso – SACK (Korea) |
전쟁은 어찌 보면 굉장히 좋지 않은 일이지만 전쟁으로 인해 소멸되는 것도 있지만 다시 재 탄생되는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전쟁이라는 암울하고 음울한 그 당시 시대적 상황으로 인해 어두운 당시 시대를 그림이나 여러 작품을 통해서도 알아볼 수 있습니다. 많은 예술가들은 원치 않게 전쟁에 참여해야 했고 그리하여 작품 활동은 멈춰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때 많은 예술가들이 죽기도 하고 다치기도 하죠. 하지만 종전 후 다시 돌아온 예술가들은 다시금 입체주의를 일으키려고 많은 노력을 합니다. 그렇지만 입체주의 부흥은 결국 실패로 끝나 버리게 되죠.
이곳에서는 피카소의 태피스트리 작품을 볼 수 있었습니다. 무용이라는 유화 작품을 태피스트리로 만들었는데 피카소는 사실 아내가 있었지만 바람둥이 기질로 인해 당시 이혼을 하는 시가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튀틀린 여인의 모습이나 암울해 보이는 얼굴 등이 아마 당시 상황을 그려낸 작품으로 봅니다. 검은 실루엣의 남자는 친구 라몬 피쇼의 죽음으로 제작한 작품이라는 말을 했다 하니 우정과 사랑 등을 볼 수 있는 작품으로 보입니다.
그 외에도 파이프를 들고 있는 남자라는 작품 속에 원기둥 모양처럼 차갑게 표현 한 남자는 차가운 인간성을 묘사하고 있다고도 하니 당시 전쟁 후의 차갑고 냉랭한 당시 사회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 같았습니다.
5. 대형 장식화
(좌)Robert Delaunay, Rythme n°1, (우)Robert Delaunay, Rythme n°2 décoration pour le Salon des Tuileries, 1938 © Musée d'art moderne de la Ville de Paris |
사실상 이번 전시 가운데 가장 메인 작품 중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엄청난 규모의 그림들이 총 4개가 있습니다. 이 그림은 80년 만에 해외로 반출하는 초대형 작품들이라고 하는데요 로베르와 소니아 들로네는 무채색이 특징이던 입체파에 색채를 넣은 작가들로 튀르리 살롱전에 이 부부가 6미터가 넘는 초대형 작품을 그려냈다고 합니다. 압도적인 크기는 당시에도 드물었다고 하고 하니 그 규모가 어마어마 했던 것을 알 수 있는 거 같아요.
우선 이 대형 장식화는 등장은 시대적으로 본다면 종전 후, 예술가들에게 후원을 해주던 화랑이 파산을 하고 수집가들이나 갤러리 주인들과의 관계가 깨지게 됩니다. 하지만 정부나 공공기관이 작품을 주문하여 예술가들이 팀을 이루어 응하게 함으로서 후원금을 팀에게 지급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이런 대형 작업 의뢰가 자주 이루어지게 되어 이런 초대형 작품들이 탄생했다고 하니 당시 입체파들은 사라졌지만 그들이 남긴 것은 후에 다양한 예술이 되어 새로운 혁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6. 마지막으로
마지막 공간에는 입체주의에 관한 글이 하나 있는데 인감은 감성의 동물이다 보니 자유분방하고 무질서하지만 감정만큼은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예술이라는 것은 인간의 감정의 산물로 본다고 합니다. 아비뇽의 처녀를 본 거트루드 스타인은 모든 걸작은 세상에 선보일 때 언제나 추한 모습을 하고 있다는 말을 남겼는데 새로운 미술은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낯설고 거부감이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미적 아름다움이 아닌 보이지 않은 예술을 담아내는 방법이라 하니 결코 미의 본질은 무시하는 게 아니라고 하는데 따지고 본다면 사람이 태어나는 경의로운 순간 또한 아름답지만 처음 보는 사람에겐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생명의 탄생이라는 본질은 변하지 않는 것처럼 우리는 새로운 미술의 탄생의 본질을 한번 깊게 생각해 보면서 전시를 관람하게 된다면 아마 그 탄생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새로운 사조들이 생겨나고 사라지고 현대 미술이 어떻게 나타나게 된 건지 알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 아닐까 합니다. 시각적 아름다움뿐만이 아는 내면의 본질을 알아볼 수 있던 즐거운 시간으로 보며 다시금 입체주의에 대한 생각을 바로잡아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박은희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