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위 치열한 신의 존재 증명, 연극 '라스트 세션'
"난 도발적인 토론을 즐기는 거요. 지금 우리처럼"
신의 존재 증명, 정확한 답을 내릴 수 없는 토론의 시작
스무 살, 처음으로 대학에 가서 들었던 입문 수업 중 하나가 '철학 입문'이었다. 그리고 한 학기 내내 '신의 존재 증명'에 대한 토론을 계속했다. 강의 중 토론은 2인 1조로 각각 원하는 존재 증명 논리를 발표로 준비해서 신이 존재한다,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의 입장으로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는 방식이었다.
물론, 그날 발표조가 아닌 친구들도 함께 왜 신이 존재하는지, 왜 신이 존재하지 않는지에 대한 논리에 빈틈을 파고드는 시간이 주어졌다. 그리고 그 강의의 끝에는 결국 결론은 없었다. 그저 계속된 생각들만 가득했다. 그 강의 전까지 그렇게까지 기독교적 신에 대해 생각할 일이 없었다. 개인적으로 불교 신자이며, 무신론에 가깝기 때문이다.
예수, 석가모니, 공자, 소크라테스를 세계 4대 성인으로 생각하는 편으로, 그분들의 말씀은 마치 신의 계시보다는 수많은 탐구로 인해 얻어낸 진리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에 의미가 있지 않나 싶다. 어쩌면 그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 강의를 통해 수많은 가능성과 그 논리들이 신의 존재 증명을 위해 존재한다는 건 꽤나 재밌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됐다.
“시대를 초월한 최대의 미스터리를 하루아침에 풀어 보겠다고 생각하는 건 미친 짓이죠.”
“딱 하나 더 미친 짓이 있지. 그렇다고 생각을 접어버리는 거.”
강의 자체는 쉽지 않았으나, 다양한 생각들을 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나와 다른 사람들과의 토론으로 내가 넓어지는 느낌. 본 연극 <라스트 세션>도 처음 신의 존재 증명을 맞이한 분들께 그런 작품이 되길 바란다. 신의 존재 증명이 개인적으로 매력적인 이유는 하나였다. 신이라는 존재가 참으로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 누구도 확실한 증거를 가져올 수 없다. 너무나도 선량한 사람의 예기치 못한 죽음 또한 운명인지, 신이 있다면 이렇게 기구한 삶을 만들어도 되는지, 전쟁이라는 악이 왜 존재하는지, 이는 신이 인간에게 내린 자유의지의 산물인지, 우리가 신에게 모든 결정권을 맡겼다가도 동시에 신이 아니라 인간의 결정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그 치열한 공방전은 신의 존재 증명을 흥미롭게 만든다.
그렇게 생각함으로 인해 인간의 이성은 발달했다고 본다. 철학에서의 신의 존재 증명은 인간에게는 수많은 생각이 열리는 시발점이었다. 그리고 정말 어쩌면 이렇게 생각하는 행동은 신이 인간에게 준 선물일지도 모르겠다.
라스트 세션, 마지막까지 그들은 계속 생각한다.
프로이트와 루이스, 실제로는 만난 적 없는 두 실존 인물을 무대 위에 올린 것 자체가 신의 존재 증명에 대한 끝없는 토론을 말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신론자 프로이트와 무신론자였다가 유신론자가 된 루이스, 실제로는 없었던 단 하루의 라스트 세션은 그 자체로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그 대가들의 토론에서도 역시나 끝낼 수 없는 결론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절대적인 존재라 생각되는 신에 대한 도발적인 이슈들은 핑퐁처럼 왔다 갔다 움직인다.
그리고 그 핑퐁 속에서 인물들 역시 확답을 내리다가도 '그 말도 일리가 있네'와 같이 밀당을 주고받는다. 그렇지만 결론은 역시나 미정이다. 이러한 혼란은 제2차 세계 대전이라는 시대적 배경과 합쳐져 더 확실히 혼란함을 전해준다. 전쟁의 존재는 가장 신의 존재를 의심케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정말 가장 초월 선의 신이 있다면 이러한 악행을 막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러한 생각이 들 때쯤, 이는 신이 인간에게 준 선물인 자유의지로 벌어진 결과일 뿐이라는 답이 날라온다. 정말 신의 깊은 마음은 인간이 모두 헤아리기엔 너무 큰 것일까. 관객인 나 역시 핑퐁 된다.
더불어 본 연극은 배경지식이 없더라도 이해할 수 있도록 친절하다. 아무리 어려운 주제라도 토론이라는 형식을 띄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럴 것이다. 자고로 토론이란 입장 뒤에 근거가 붙어야 하니 말이다. (하지만 이 부분에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더욱 이해가 잘 되는 극임에는 확실하다.) 그리고 중간중간 두 인물의 인간적인 면모를 통해 극의 이완을 준다. 극 자체가 밀당을 잘하는 극이라 생각이 들었다. 작품 자체도 그렇겠지만, 배우들의 연기도 한몫했다.
이번 초연에 참여한 배우들의 캐스팅은 놀랍다. 이번 한국 초연에는 실제로 신앙생활을 해본 적 없는 신구와 현재 신앙이 없는 남명렬이 무신론을 대변하는 ‘프로이트’ 역을, 독실한 신앙인 이석준과 모태신앙으로 알려진 이상윤이 대표적인 유신론자 ‘루이스’ 역을 맡았다. 이렇게 찰떡같은 캐스팅이 보여주는 배우들의 연기 합은 놀랍다.
직접 공연을 보고 온 페어는 '신구' 배우님, '이석준' 배우님으로 두 분의 연기는 90분의 시간이 전혀 지겹게 느껴지지 않았다. 정말 두 배우의 목소리만으로 꽉 채웠다. 공연장 공기의 흐름이 무대로 바뀌는 순간, 90분 동안 매료될 수밖에 없었다.
라스트 세션(Freud's Last Session)
- 일자 : 2020.07.10 ~ 2020.09.13
- 시간
- 화, 수, 금 오후 8시
- 목 오후 4시
- 토 오후 3시, 6시
- 일 오후 2시, 5시
- 월 공연 없음
- 08/09,16,23,30 일요일 2시 공연만 있음
- 장소 : 예스24스테이지 3관
- 티켓가격 : 전석 55,000원
- 주최/기획 : (주)파크컴퍼니
- 관람연령 : 14세 이상 관람가
- 공연시간 : 90분
고혜원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