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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여성에게 용기와 힘을

젠틸레스키의 작품을 통해 만나는 이야기


17세기, 여성 예술가로 살아남기 어렵던 시기에 ‘최초의 페미니스트 화가’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화가가 있다. 바로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Artemisia Gentileschi) ’이다.


이탈리아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그녀는 역사화와 종교화에서 강점을 보였으며, 카라바조 화풍의 영향을 받은 화가들 중 가장 뛰어나다고 알려져 있다. 작가의 예술성과 더불어 가치관을 주목할 필요성이 있음을 느꼈다. 젠틸레스키의 작품으로부터 더 많은 이야기를 들어보도록 하자.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젠틸레스키는 로마에서 태어나 화가인 아버지 오라치오 젠틸레스키의 영향을 받아 화가의 길로 접어들었다. 화풍 또한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나, 자신만의 표현 방식을 갖추어 나갔다. 그렇게 그녀는 화가로서 주체적인 연구를 거듭하며 유망한 예술가로 성장해 나갔다.


그러던 그녀의 삶을 할퀴어 놓은 사건이 벌어지게 된다. 젠틸레스키는 17세에 아버지의 동료이자 선생이었던 아고스티노 타시에게 성폭력을 당했고 수십 번의 힘겨운 재판을 받게 된다.


당시에는 여성이 법정에 직접 고발할 수도 없었고, 순결의 여부가 아주 중요했으며, 여성의 주장이 진실임을 밝히기 위해 고문까지 벌어졌던 비상식적인 시대였다. 이는 여성의 위치를 숨김없이 보여주는 사건이 되었다.


이후 젠틸레스키의 그림을 살펴보면 이 사태의 본질이 담겨 있다. 작품을 보면 인물들이 불완전하고 폭력적인 구도를 있기 때문이다. 또한 여성의 모습의 모습에서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듯 강하고 굳건한 모습이 담겨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젠틸레스키의 일생과 그녀의 작품은 여성 화가들 뿐 아니라 여성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주는 존재가 되었다.

수잔나와 두 장로, 1610

이 작품은 젠틸레스키가 17세에 그린 첫 작품이다. 이 작품은 여러 화가들에 의해 그려진 유명한 소재이다. 두 장로가 수잔나에게 잠자리를 요청하지만 거절당해 수잔나를 음해한다. 하지만 결국은 진실이 밝혀져 장로들은 벌을 받게 된다는 성서 속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주로 남성적인 시각에 의해서만 그려지곤 했다. 눈에 띌만한 수잔나의 모습, 엿보는 두 장로의 탐닉적인 모습이 그 예이다. 하지만 젠틸레스키는 수잔나의 감정에 초점을 맞춰 작품을 그렸다. 수잔나를 캔버스의 중앙에 위치시켜 가장 부각시켰다. 그리고 일그러진 얼굴, 고통을 느끼는 몸짓을 표현했다.


지금껏 한쪽에 편향된 시선의 작품들은 여성을 희롱하는 일을 가볍게 만들었고, 외적으로 출중한 여성에게 이런 일은 빈번한 것임을 무의식적으로 각인시키게 만들었다. 이 작품을 통해 젠틸레스키는 잘 알려진 이야기를 다른 시선에서 바라볼 수 있게 했다. 젠틸레스키의 작품이 주목받아야 하는 이유다.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 1611-12

젠틸레스키의 가장 유명한 작품이다. 유디트는 조국을 구한 유명한 인물이다. 앗시리아의 적장 홀로페르네스를 유혹해 목을 벤 나라를 구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많은 화가들이 유디트를 그렸는데, 젠틸레스키가 표현한 모습과 아주 다른 모습이다. 클림트는 아름다움을 부각시킨 팜므파탈의 모습을, 카라바조는 겁에 질려 망설이는 모습을, 루벤스는 관능적인 모습으로 유디트를 표현했다.


젠틸레스키의 작품 속 유디트는 다르다. 유혹의 모습도, 조바심 내는 모습도, 관능적인 모습도 없다. 망설임 없고 단호한 태도로 적장의 목을 베고 있다. 이들의 모습을 더욱 부각하듯 배경은 검게 처리하고 있으며 오직 인물들에게만 조명이 비춰지고 있다. 사회가 그릇된 시선으로 인식하는 ‘여성’의 모습에만 초점을 둔 것을 과감하게 반박했다.


실제로 젠틸레스키는 이 작품에서 유디트에 자신의 얼굴을 그려 넣었고, 홀로페르네스의 얼굴에는 자신을 성폭행했던 남성을 그려 넣었다고 한다. 젠틸레스키는 작품 활동을 통해 자신의 트라우마를 조금이나마 치유할 수 있었을 것이다. 목을 베는 행위는 홀로페르네스 뿐 아니라 복합적인 이야기, 극복하고 싶은 인식, 사회 구조 등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젠틸레스키의 대표작들을 소개해 보았다. 작품 속에서 젠틸레스키의 예술관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여성의 존재를 수면 위로 올렸고, 여성의 역할을 입증했다. 그리고 사회로부터 억압된 목소리와 트라우마를 극복하고자한 그녀의 노력은 많은 여성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과거부터 몇 백년이 지난 지금까지 말이다.


만약 젠틸레스키에게 말을 전할 수 있다면, 여성 인권이 고려되지 않았던 17세기에도 굴하지 않고 소신이 담긴 작품을 남겼다는 것에 감사함을 표하고 싶다. 젠틸레스키는 많은 여성들에게 든든함과 용기를 준 위대한 화가이다.


고지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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