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향한 로맨티스트, 키스 해링
Review
동대문 DDP, 모두를 위한 예술가 <키스 해링 展>
누군가 그랬다. ‘똑똑한데 냉소적이지 않기란 쉽지 않다’고 말이다. 모르는 상태에서 무언가를 사랑하는 것은 쉽다. 그것이 사람이든 꿈이든 세상이든, 무엇이 되었건 간에 말이다. 하지만 알 것 다 알면서도 긍정하기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사랑을 ‘그래서’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로 넘겨가는 것은 어렵고, 본인의 능력이 미진함을 알면서도 꿈을 꾸는 것은 대단하며, 온갖 추악한 일들을 직시하면서도 세상을 사랑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키스 해링의 작품과 세계관을 만나면서, 저 말이 떠올랐다. 그는 똑똑함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나는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처럼 살아간다.
나는 삶을 사랑한다.
나는 아기를, 어린아이를 사랑한다.
몇몇 사람, 대부분의 사람
아니, 대부분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사랑한다.
그는 세상을 사랑했다. 감상적이고 낭만적이기만 한 휴머니스트가 아니었다. 자신의 믿음을 실천으로 옮길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유명세를 얻은 후에도 공공장소와 어린이 병원에 많은 작품들을 기증했다. 베를린 장벽에 그림을 그릴 때는 수많은 아이들의 손에 직접 붓을 들려주며 ‘아이들이 자유를 꿈꿀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에이즈를 진단받아 고작 1년의 생이 남았음을 알게 되자 ‘키스 해링 재단’을 설립했고, 이는 28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이어져 전 세계 불우한 어린이들의 교육을 후원하고 있다.
그는 신념만 번지르르한 예술가가 아니었다. 그의 신념은 진심에서 우러나왔고, 그의 작품과 행적까지 그대로 연결되었다.
사랑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세상의 어두움에 대해서는 고개를 돌릴 법도 하건만 키스 해링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인종 차별과 마약, 전쟁 등 다소 낭만적이지 않은 세상의 요소들에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이를 본인만의 장난스러우면서도 대중적인 스타일로 표현해냈다.
전시에서 가장 나의 시선을 잡아끈 작품은 이 작품이었다. ‘에이즈 예방’이라는, 어떻게 보면 다소 낯부끄러운 주제를 이렇게 귀엽게 표현해내다니! 어렵고 무겁고 철학적인 것을 모두의 것으로 만드는 것. 그것이 예술의 여러 가지 역할 중 하나는 아닐까, 싶은 생각이 키스 해링의 작품을 보며 들었다.
‘모두를 향한 예술’. 이것이 바로 키스 해링의 예술관이다. 그가 사랑했던 대상은 그의 작품을 거금에 구매할 수 있는, 경제력을 지닌 소수의 상위계층이 아니었다. 그는 그의 작품을 모두에게 선보이고 싶어 했고, 해서 모두에게 향유될 수 있도록 이해하기 쉽고 해석의 여지가 다양한 본인만의 스타일을 만들어냈다.
‘대중을 향한 예술’이라는 유사한 예술관을 가졌다는 점에서 키스 해링과 팝 아트의 대가, 앤디 워홀은 친구가 된다. 워홀의 영향으로 해링은 ‘보드카 광고’ 작업을 하는 등 상업적인 예술표현에 있어서도 거부감이 없었다. 워홀과 해링의 교류 끝에 탄생한 이 작품 역시 나의 눈길을 끌었다. 이름 하여 ‘앤디워홀 마우스’! 모두를 향한 예술을 꿈꿨던 두 남자는 그렇게 서로가 서로의 뮤즈(?)가 되었다.
나는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이 경험하고 탐구하는 예술을 만들어가고 싶다. 내가 창조해낸 작품은 나를 비롯해 다른 사람의 생각과 만날 때야 완성되는 것이다.
대중예술은 많은 사람에게 향유된다는 점에서 종종 격하된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키스 해링의 모든 작품에 걸쳐 나타난 뚜렷한 신념을 근거로, 나는 말하고 싶다. 대중예술은 더욱 많은 사람들에 의해 향유되는 만큼 더욱 많은 담론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해서 대중예술은 제 스스로 높은 진입장벽을 세우는 예술보다 더욱 다채로울 수 있다고 말이다.
마지막으로 키스 해링의 작품들을 보며 나의 소망을 다시금 되새겼다. 난 이야기꾼이 되고 싶다. 삶과 사람과 사랑을 담은 이야기를 하고 싶고, 그것이 많은 사람에게 향유될 수 있도록 즐겁게, 하지만 따듯한 끝맛이 남게 표현하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모두를 향한 예술을 꿈꾸었던 키스 해링은 나의 소망이 충분히품을 만한 가치가 있음을 확신시켜 주는 선구자이다.
키스해링 - 모두를 위한 예술을 꿈꾸다 -
- 일자 : 2018.11.24 ~ 2019.03.17
- 시간 : 10:00~20:00 (19:00 입장마감)
- 장소 : DDP 동대문디자인플라자
- 티켓가격 : 성인 13,000원 / 청소년 11,000원 / 어린이 9,000원
- 주최 : 키스 해링 재단, 나카무라 키스 해링 미술관, 서울디자인재단, ㈜지엔씨미디어
- 관람연령 : 전체관람가
박민재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