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의 영화, '비포 선라이즈'
대화의 영화, 비포 선라이즈
의사소통이란 무엇인가? 사전적 정의로, 의사소통이란, 최소한 두 사람 이상이 서로 관계를 맺으며 언어적 행위를 함께 나누는 과정이다. 더불어 상대와 협력적으로 의미를 구성하고 이를 공유해 나가는 과정이다.
그렇다면 좋은 의사소통이란 무엇인가? 바로 ‘상호적 의사소통’이다. 누군가의 말솜씨로 커버되는 대화가 아닌, 서로 통하는 대화 말이다. 한 명의 훌륭한 의사소통 능력으로 커버 가능한 대화는 '소통'이라는 말 자체의 모순이다. 물론 아주 기본적이고, 당연한 것이지만, 우리는 좋은 의사소통을 말하며 실수하곤 하는 부분이다.
영화 ‘비포 선라이즈’는 그러한 ‘좋은 의사소통’ 즉, ‘상호적 의사소통’을 잘 보여주고 있는 영화다. 이 영화는 서로에 대해 전혀 모르는 두 사람이 만나 단 하루동안 수평적이고, 상호적인 대화를 나누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그 대화가 매우 인상적인데, '대화의 영화'라고 불릴 정도로 좋은 대화를 집약적으로 담고 있는 영화다.
영화 ‘비포 선라이즈’ 줄거리
유럽을 지나는 한 기차 안, 한 독일인 부부가 큰 소리로 말싸움을 시작한다. 옆 자리에 탄 셀린은 그 소리를 듣고 짐을 챙겨 뒷자리로 옮긴다. 뒷자리에는 한 남자, 제시가 책을 읽고 있다. 제시가 먼저 말을 걸어온다. "저 두 사람 왜 싸우는지 알아요?" 두 사람은 독일인 부부의 싸움에 대한 공감으로 처음 대화를 트기 시작한다. 이 두 사람은 얘기를 나누다 휴게실로 가 얘기를 나누기로 한다.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 두 사람은 서로의 대화가 매우 잘 통한다는 것을 느끼고, 제시는 파리까지 가는 셀린에게 비엔나에서 함께 내리자고 설득한다. 셀린은 제시의 말에 설득당해 내리고, 둘은 비엔나 시내를 거닐며 하루를 보내게 된다. 이 하루 동안 두 사람은 정말 많은 대화를 나눈다. 그 대화 안에는 서로의 이야기에 대한 공감도 있고, 토론도 있고, 서로의 감정에 대한 고백도 있다.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 더 모르기 때문에, 관계의 수립을 위해, 협력적으로 의미를 구성하기 위해 끊임없이 소통한다.
두 사람의 의사소통은 특히 경험의 공유로 이루어진다. 여러 주제를 주로 본인들의 경험을 들어 서로의 생각을 설명한다. 두 사람이 기차에서 긴밀하게 나누었던 대화 중, 부모님에 대한 대화는 ‘부모’라는 존재가 어떻게 ‘자식’을 침범하고 상관하는지에 대한 대화는 각자의 경험으로 이루어져 있다. 셀린이 먼저 본인의 이야기를 하자, 제시 역시 부모님이 자신을 믿어주지 않았을 때의 이야기를 나눈다. 이때의 경험 공유를 통한 동의는 서로의 긴밀한 공감을 이끌어낸다.
물론, 설명에 대한 대답은 무조건적인 동의가 아니다. 반론하기도 한다. 놀이기구가 있는 공원에서 ‘적에 관한 본인의 의견을 말하는 셀린’에게 제시는 자신의 성장 배경을 얘기하며 반론을 든다. “난 적이라는 것이 있는지 잘 모르겠어.”. 하지만 경험의 공유를 통한 반론은 말싸움보다는 다른 경험에 대한 이해, 서로에 대한 이해를 이끌어온다. 이러한 공감과 이해는 더 나은 주제 선택이나 리액션을 이끌어오는데, 두 사람의 의사소통은 이러한 경험의 공유로 계속 반복된다. 더 공유하면 공유할 수록, 두 사람의 관계는 깊어진다.
한편, 그들의 대화를 논하면서 ‘전화 장면’을 빼놓을 수 없다. 대화를 나누며 생긴 서로에 대한 호감을 표현하는 장면이다. 셀린은 이 호감을 전달하기 위해 재밌는 대화 방법을 채택한다. 바로 “전화 걸기”다. 제시에게 자신의 절친한 친구라는 역할을 주고, 대신 전화를 받게 한다. 이 방법을 오늘 처음 만난 두 사람인 만큼, 가볍게 자신의 호감을 전달할 수 있게 돕는다. 본인의 걱정을 알리고, 마치 조언을 듣는 것처럼 제시의 마음을 확인하기도 한다.
제시의 리액션 역시 빠질 수 없다. 전화를 받아 불어를 하는 셀린에게 자연스럽게 영어 회화를 공부 중이니 영어로 대화하자는 말을 던지는 대사는 그의 재치를 알 수 있다. 무엇보다 이 장면에서 빛이 나는 것은 솔직한 두 남녀의 리액션이다. 물론, 두 사람의 리액션은 전화 장면 외에서도 계속 눈에 들어온다. 서로의 발화, 발화에 대한 적절한 리액션, 시선 맞추기, 확인 대답하기, 웃기, 그리고 가끔은 침묵을 통해 본인이 상대의 말에 깊게 공감하고 있음을 보여주기. 이들의 대화는 비엔나를 더 아름답게 만든다.
하지만, 그들의 대화가 가장 와닿은 이유는 진정성에 있다. 오늘 처음 본 두 사람의 대화가 아름다운 이유, 바로 오늘 만났기 때문에. 짧은 시간 내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공유하고자 하는 진정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셀린은 존재에 대한 질문을 하는 제시에게 이런 말을 남긴다.
“이 세상에 만약 신이 있다면 그 신은 너나 나, 우리 '안'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 우리 '사이'에 존재한다고 믿어. 이 세상에 마술이란 게 있다면 그건, 상대를 이해하고 함께 나누려는 시도 안에 존재할거야.”
우리는 개인을 더 내세우는 대화를 이따금, 어쩌면 아주 자주 하게 된다. 하지만 대화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서로를 이으려하는 진정성이다. 상대를 이해하고 함께 나누려는 시도, 그것이 셀린과 제시의 대화가 아름다운 이유다. 대화가 더 많은 것을 가져다줄 거라는 믿음. 영화 ‘비포 선라이즈’가 여전히 우리 곁에 대화의 영화로 남아있을 수 있는, 일종의 교훈이다. 한편으로는, 이런 질문에 대한 아쉬움이다.
‘우리가 살면서 앞으로, 어느 기차-기차가 아니더라도 어디에서든- 제시와 셀린과 같은 사이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까?’라는 질문.
[이주현 에디터 2juhyeons2@naver.com]